[Opinion] 관부연락선에 광막한 인생을 두고 바다로 떠난 두 남녀의 이야기, 뮤지컬 '사의 찬미' [공연예술]

윤심덕과 김우진의 투신 자살은 정말 비극적인 결말이었을까?
글 입력 2020.03.0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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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사의 찬미>를 소개하며


 

뮤지컬 <사의 찬미>는 1920년 식민지 조선 시대에 살았던 신여성이자 조선 최초의 성악가 윤심덕과 연극운동가 김우진의 실종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윤심덕과 김우진은 서로의 뮤즈이자, 예술이 메말랐던 식민지 시대에 대항하던 전우였다.


그런 그들이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관부 연락선에서 유서 하나를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뮤지컬 <사의 찬미>는 이들이 함께 투신한 사건, 관부 연락선에서 재회를 하던 사건, 그보다 더 과거에 함께 어울렸던 사건을 오가며 이들이 유서만을 남기고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풀어나간다.

 


 

뮤지컬 <사의 찬미> 속 현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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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윤심덕 우 김우진



뮤지컬 <사의 찬미> 속 윤심덕과 김우진은 실존하던 인물이다. 윤심덕은 평양시의 넉넉지 않은 평범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개신교 계통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심덕은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서양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도쿄음악대학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에 반해 김우진은 안동 김씨의 후예인 목포의 갑부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뜻에 따라 유학자의 딸과 결혼했다. 그는 개화사상가로 활동하며, 연극연구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여 연극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다. 이렇게 큰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인연은 일본 유학생들이 결성한 순례 극단 동우회에서 시작되어 한국에서 2달여간 순례 공연을 하면서 단단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인연은 그리 로맨틱하거나 긍정적이지 못했다. 1923년 윤심덕은 최초의 음대 유학생이라는 자긍심과 앞으로의 성악가로서의 삶을 기대하며 한국으로 귀화하였지만, 서양만큼 음악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 그녀는 일회성 공연만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형성된 유명세는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생계가 좋지 못한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심덕은 결국 대중가수로의 전향을 결심하고 김우진의 주선으로 1925년 극단 토월회에 입단해 연극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연극 배우라는 직업은 ‘기생이나 하던 천한 일’로 여겨졌기에 윤심덕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좋지 못했고, 심덕은 또 한 번 삶에 대한 좌절을 느꼈다. 그 당시, 김우진 또한 연극 운동가로서 예술에 자신의 삶을 던지고자 했으나, 그의 뜻을 인정해주지 않고 집안의 부를 상속하라는 소명만을 강요하는 아버지로 인해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1926년 7월 윤심덕은 일본의 닛토레코드회사에서 음반 취입 의뢰를 받고 일본으로 향했다. 여기서 그녀는 삶의 허무에 대한 가사로 가득한 <사의 찬미>를 녹음했다. 이보다 앞서 심덕은 김우진에게 오사카로 오라는 전보를 부치며 오지 않는다면 자살하겠다고 덧붙였다. 그후 윤심덕과 김우진은 8월 4일 관부 연락선에서 함께 한해탄으로 몸을 내던졌다.

 


 

뮤지컬 <사의 찬미>가 그리는 심덕과 우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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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과 김우진이 관부 연락선에서 동반 투신을 한 후, 그들에 대한 세간의 집중과 근거 없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소프라노 성악가로 유명했던 윤심덕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과 함께 유부남이었던 김우진과 노처녀였던 윤심덕의 관계에 대한 소문들이 눈덩이를 이루어 그들이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에 한탄해 함께 자살하였다는 설이 유력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윤심덕과 김우진의 동반 자살은 단순히 사랑으로 인해 얼룩진 비극이 아니다. 그들은 여태까지 밖과 단절되어 살았던 조선이 세계라는 무대에 처음 올려진 식민지 시대에 예술로서 열린 세계를 살고자 했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이러한 공통점으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며 정을 쌓았다. 예술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뮤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닫힌 세계에 머물러 있는 조선의 시대 상황은 이들의 목표와 꿈을 무력화 시켰다. 윤심덕과 김우진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삶에 대한 절망을 겪으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결국 이들이 이상을 지키고 함께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 어쩌면 끝없는 깊은 바다가 열린 세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뮤지컬 <사의 찬미>는 이러한 관점에서 심덕과 우진의 만남과 정사,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현실과는 다르게, 뮤지컬에서는 ‘사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사내는 심덕과 우진에게 접근하여 그들을 만나게 하기도 하고, 그들 사이를 갈라 놓기도 하며 두 사람의 삶에 개입한다.


사내의 계획대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감당하지 못하고 틀어져 서로를 미워하기도 한다. 결국, 사내의 뜻대로 이리저리 끌려갈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은 심덕과 우진은 사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해탄에 몸을 던진다.


필자는 뮤지컬 <사의 찬미>속 사내가 ‘조선 식민지 시대적 상황’의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심덕과 우진이 삶에 대한 절망을 느끼게 만드는 시대적 상황들의 조각조각들을 모아 뮤지컬 <사의 찬미>에서는 사내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심덕과 우진을 엮은 것도, 서로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것도, 정해진 결말 앞에서 절망을 느끼게 만든 것도 사내였고, 그것은 곧 현실에서 조선의 시대적 상황이었다. 결국 뮤지컬 속 심덕과 우진이 사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투신한 것은, 그들이 절망적인 현실에서의 시대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한 것을 의미한다.


뮤지컬 <사의 찬미>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대적 상황의 제약’을 ‘사내’라는 인물로 등장시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관객이 좀 더 생생하게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깊었다.

 


 

뮤지컬 <사의 찬미>속 연출 이야기


 

필자는 뮤지컬 <사의 찬미>가 심덕과 우진의 삶을 절절하게 전달하고, 효과적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뛰어난 연출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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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사의 찬미>는 ‘그림자’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무대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인물들의 서사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조명을 적절히 활용해야 하는데, 뮤지컬 <사의 찬미>는 조명을 이용해 만들어낸 그림자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생생한 장면 구현을 이루어 냈다.

 

특히, 사내가 김우진에게 윤심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이러한 그림자 활용이 두드러졌는데, 사내가 무대 중앙에서 인형극을 하듯 팔을 교차하는 행위로 생기는 그림자가 무대 측면에 서있는 심덕과 우진의 그림자 위에 떨어지면서, 그림자를 보면 사내가 마치 심덕과 우진이라는 인형으로 인형극을 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러한 연출은, 결국 심덕과 우진의 삶에 깊이 개입하며 그들을 파멸로 이르게 숨통을 조이는 사내의 목적과 행적을 예고하며 극의 전반적인 주제의식을 관객들에게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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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사의 찬미>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연출은 수미상관적인 구조였다. 뮤지컬<사의 찬미>는 다친 몸을 이끌고 홀로 등장하여 레코드를 트는 사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레코드에서는 실제 윤심덕이 녹음한 <사의 찬미>가 흘러나오고, 이를 들으며 담배를 빼물은 사내는 심덕과 우진이 함께 동반 투신을 하였다는 전보를 읽는다. 이후, 장면전환이 이루어지며 심덕과 우진의 과거를 보여준다. 이후 그들이 만나고, 함께 미래를 꿈꾸고, 결국 갈라섰다가 관부 연락선에서 다시 만나고, 사내의 목적을 깨닫고 사내에게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장면들의 끝에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오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구성이 뮤지컬 <사의 찬미>의 결말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면서 첫 장면에서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투신 이후의 심덕과 우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내가 레코드를 틀고 담배를 태우며 심덕과 우진의 투신자살에 대한 전보를 태우는 장면을 결말로 제시하면서, 관객들이 투신 이후의 심덕과 우진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필자의 생각에 심덕과 우진이 정말로 바닷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해도, 말 그대로 죽음을 찬송하는 <사의 찬미>라는 곡처럼 죽음을 통해 아이러니하게 열린 세계로 향하고자 했던 이상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뮤지컬 <사의 찬미>로 본 현대


 

연극과 뮤지컬은 항상 필자의 삶과 필자를 둘러싼 시대적 상황을 둘러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뮤지컬 <사의 찬미>를 관람한 후, 필자는 스스로에게 현대에 심덕과 우진이 살았다면 그들은 투신하지 않았을까라는 반문을 해보았다. 필자는 확실치는 않지만 그들의 삶이 현대에 와서도 해피 엔딩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심덕과 우진은 문화예술로서 자신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꿈꿔왔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대의 시대적 상황도 문화예술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자 했던 이들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물론 심덕과 우진이 살았던 조선 식민지 시대보다 문화예술을 펼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향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열려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서 문화예술은 우선순위 뒷전에 자리 잡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로 인해 아직까지 문화예술 확대 정책은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장 시대 상황을 바꾸어 문화예술 확대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필자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사의 찬미>속 시대 상황보다 지금이 나아졌듯이, 꾸준히 시대 상황을 변화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뮤지컬 <사의 찬미>가 우진과 심덕을 비극적으로 몰아갔던, 결국 삶은 허무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시대 상황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관객들에게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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