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색이 간절했던 순간 [사람]

생(生)기록의 시작
글 입력 2020.03.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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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남들처럼 바쁘게 대학생활을 보낸 것도 아닌데, 학교에 다니며 주어진 과제들과 시험공부를 한 게 다인데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더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에서 불어난 생각 더미들과 함께 귀국하며 휴학을 결심했다.


지금껏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사색의 시간이 생겼을 때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고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새로운 변명으로 급히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문득 찾아온 공허함. 그때의 나도 원인을 찾으면 기나긴 우울의 끝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똑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책도 읽고, 내가 좋아했던 영화를 보는데 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지 궁금하면서 짜증 났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필요했던 휴학까지 했는데, 뭐가 그리 불만스러워서 주어진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이유를 찾아야 벗어날 수 있는데, 왜 나는 찾을 수 없는 건지. 이 상태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나는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는 건지.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는 불행의 궤도에서 간절히 빠져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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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지는 바닷가 앞에서 좀 더 생각하고 싶었다. 그 앞에 앉아 친구와 해결점이 없는 문제들을 머릿속에서 뱉어내고, 생산적이지 않은, 다소 추상적인 주제로 대화를 채워나갔다. 그러던 와중 친구가 문득 “네가 죽고 나면 세상에 기억되고 싶어 아니면 잊히고 싶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물론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모질게 굴 때마다 자연히 묻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단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었다.

 

하지만 텅 빈 껍데기의 나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다. 한없이 밝았던 사람으로만 각인되고 싶지 않았고, 이런 암울한 고민을 나만 간직한 채로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살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다. 매년 새로운 다이어리를 사곤 했지만 일상을 특별하게 남겨야한다는 부담감에 완전히 솔직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딘가 내 본연의 모습은 남겨야만 했다. 집에 돌아와 쓰다 만 공책에 민망하고 얄미운 그 모든 날 것의 감정들을 적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적어도 자신에게 가장 먼저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됐던 롤러코스터 같은 심경의 변화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점차 내 삶은 안정이라는 것을 되찾기 시작했다. 좋은 추억으로 범벅되어 있는 사진첩을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며 그리워했던 그때에도 나는 똑같이 괴로워했었다. 사진과 달리 글은 망각하고 있던 시절들을 똑바로 직시해줬기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다시금 생각에 잠겨 아무 일도 할 수 없더라도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다시 달릴 수 있다고, 항상 왔다 지나쳐갔던 인생의 한 과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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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냥 고독하고 싶을 때가 있는 거다. 굳이 없는 이유를 찾으려 파고들다 구렁텅이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 사실 2년이 지난 지금, 내가 완전히 그 불행의 궤도에서 빠져나온 지는 모르겠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그때보다는 훨씬 생산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종종 멈춰버린다. 그래도 이제 나는 좀 더 가볍게 생각한다. ‘또 시작이구나 박수정!’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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