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을 파헤치는 색다른 시선 - 심너울 작가의 책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글 입력 2020.03.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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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 작가님의 책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를 읽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심너울 작가님을 떠올리면 농담곰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작가님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이 훌륭해! 라고 외치는 귀염뽀짝한 농담곰이라서. 농담곰을 좋아하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 그렇게 심너울이라는 세 글자 이름은 무해하고 동그란 이미지로 기억됐다. 너울이라는 이름도 꼭 그렇지 않나. 너울너울 어딘가를 자유롭고 유연하게 유영할 듯한 느낌.

 

이번에 작가님을 책으로 새롭게 만나게 되었지만 처음 알게 된 건, 처음 작품을 접했던 건 작년이었다. 알게 됐다고 해야 하나, 팔로우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트위터에서 엄청나게 리트윗되던 글이 있었다. 경의중앙선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을 홍보하는 독자의 글이었다. 나는 가좌역 앞에 산다. 글을 본 후 직관적인 이끌림을 느꼈다. 경의중앙선은 단순히 한 노선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에는 고난과 역경, 수많은 인내의 시간을 견딘 이들의 눈물이 있다.


그 경의중앙선을 제목으로 들이다니. 작가는 분명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을 읽었고, 무릎을 쳤다. 기자인 주인공이 백마역에 갔다가 극악의 배차 간격과 미친 듯한 인구 밀도로 그 장소에 묶여버린 안타까운 영혼들을 만나고 오는 현대 판타지물이다. 장르를 정의하니 엄청나게 거창한 서사가 상상되지만 그보다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사건(사실 그렇게 사소한 일만은 아닌 것이, 매일 경중선을 타다 보면 사람은 미치게 되어있다)을 긴박감 넘치고 스펙타클하게 풀어나가는 아이디어와 필력이 돋보인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바닥을 기어다니며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제 목적지를 외치던 시체같은 사람들. 특히 왕십리에서 다시 분당선을 타야만 하는 야탑역 통근자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야탑역이라니...

 

책의 날개에는 심너울 작가님의 짧은 소개글이 있다.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라고. 당신의 글을 이토록 예리하게 파악하다는 점에서 이미 작가님은 대단한 사람이다. 딱 맞는 말이다. 책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앞서 언급한 단편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를 비롯해 <정적>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신화의 해방자> <최고의 가축>까지 5가지 이야기를 넉넉하게 담아낸다.


지나쳐갈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열어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보여주는 글은 단 한 순간도 막힘없이 읽힌다. 특히 단편집 메인 제목이기도 한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가볍게 읽히는 간결한 설정과 문장의 뉘앙스와는 달리 반전 있는 SF적 상상으로 충격을 가져다줬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생생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심리 묘사와 재치 있는 표현으로, 짧은 호흡을 풍부하게 이끌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민원 담당 공무원 현은 사람들의 불평을 인내해야 하는 매일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매주 그가 살아있는 시간은 오직 금요일 오후 6시부터 일요일 오후 6시까지 정확히 이틀 분량 정도. 그러던 그에게 어느날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자고 일어나도 매번 금요일인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반복되는 건 아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오직 자신이 의식을 가지고 지내는 날은 금요일 단 하루뿐인 것.


사실은 그가 일주일에 하루만 의식을 지닌 채 살기를 원했고, 비밀 연구원이었던 옆자리 동료에 의해 국가 기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 소설 말미에 드러난다. 엄청나게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현의 주말이 유일한 행복이었던 이유는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임이, 결국 인생이란 고통도 기쁨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을 또렷이 짚어내는 관찰력과 위트 넘치는 비유와 감정 묘사가 소설을 지탱해 글을 읽으면 마치 내가 내 생각을 읊는 듯한 기묘한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았단 뜻이다.

 

이 책을 출간한 안전가옥과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창작자와 PD가 협업하여 이야기를 개발하는 스토리 프로덕션 안전가옥. 다채로운 국내 창작자들과 협업해 신선한 작품을 발굴한다 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이야기의 서사적 쾌감을 추구한다는 설명에 바로 납득이 갔다. 쇼-트 시리즈의 근간으로 소개되는 작품은 조예은 작가 단편집 <초대>더라. 이 역시 글을 읽는 순간 놀랍도록 빠져들어 생각을 가볍게 환기할 수 있는 소설일 것이다.


신간이 언제 나올지 주목해야겠다. 또 별개의 이야기이나 책 디자인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출퇴근길에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을 비집고 들어가, 두 다리로 지탱해 서 있을 만큼 좁은 영역이라도 확보함에 감사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한 손에 충분히 잡혀서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 이 책 덕분에 출퇴근길이 행복했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안전가옥 쇼-트 01 -


지은이 : 심너울

출판사 : 안전가옥

분야
장르소설
판타지, SF

규격
100X182mm

쪽 수 : 162쪽

발행일
2020년 01월 20일

정가 : 10,000원

ISBN
979-11-90174-67-1



 


저자 소개

  
심너울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안타깝게도, 바란 바와 달리 그 경험은 자아 탐색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회한이 많아 이불을 자주 찼더니 레그 레이즈만 잘하는 기묘하고 빈약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 별개로,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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