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울타리 밖은 전쟁터였다. [사람]

집을 나와 보니 알게된 것들
글 입력 2020.02.24 15:10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자취를 시작했다!

 
드디어 어릴 적부터 자취를 꿈꿔왔던 나는 드디어 나의 꿈을 이룬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가족과 함께 살면 전부 다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상 듣는 잔소리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누가 리모컨을 잡을지 매일 싸우는 것도 버틸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나를 귀찮게 하고, 나는 자유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나 혼자 살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를 얻고, 모든 것을 나에게 투자하면서 멋진 자취 생활을 하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었다. 그런데 작년 11월, 나는 드디어 자취를 시작했다. 내 오랜 꿈을 실현한 것이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자유를 얻어서 너무 행복했다. 나의 자취 로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하고, 모아뒀던 돈으로 턴테이블을 구매했다. 집에서 가져온 커피 머신으로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며 음악을 듣는 삶은 마치 영화 같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나에게 외롭지 않냐고 무섭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는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마침 학교도 방학 했겠다 하루 종일 잠만 자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심심하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매일 파티를 열었다. 마침 자취 방 옆에 대형 마트도 있고, 카페나 음식점도 많아서 매일 장보고 요리해 먹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이게 진정한 자유구나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집에서 가져온 휴지나 칫솔, 반찬, 그리고 통장의 0이 줄어들면서 나는 점점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속박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사실은 속박이 아닌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가족들과 살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것들을 걱정하게 된 나는, 왜 그토록 부모님께서 나에게 잔소리를 하시고, 내가 생각했을 땐 별거 아닌 걸로 고민을 하시는지 알게 되었다.
 
 

990563940_v42Pk6Au_E3858E[1].jpg


 
자취는 현실이었다. 자유를 위해 혼자 살겠다!라고 다짐한 나는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고 항상 통장 잔고를 신경 쓰며 살아야 했다. 가족들과 살면서는 휴지나 칫솔, 치약이 이렇게 비싼지 몰랐다. 휴지도 치약도 왜 항상 대용량으로 파는건지, 그리고 왜 엄마가 그토록 휴지를 한 칸씩 쓰고 거의 없는 치약을 안 나올 때 까지 꽉 짜서 썼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트나 백화점을 갈 때면 항상 장바구니나 가방을 챙기시는 것도,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바로 사지 못하고 몇 군데를 돌고 돌아서 비교하고 그중 가장 나은 것을 고르시는 것도 전부 이해가 됐다. 예전에는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겨우 50원, 100원 정도 하는 봉투 값 내면 되지 왜 귀찮게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는지 몰랐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옷 구경을 할 때도 그냥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사면 되지 왜 고민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자취를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이 넘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엄마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휴지도 한 칸씩만 사용하고, 치약이나 로션은 안이 텅 빌 정도로 짜서 쓰거나 가위로 잘라서 안의 내용물을 전부 다 비운 뒤 새 제품으로 바꾼다. 장을 볼 때는 무조건 할인하거나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사고, 항상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50원,100원도 아깝기 때문에 만약 장바구니를 까먹으면 그냥 손에 들고 간다.
 
예전엔 인터넷을 하면서 맘에 드는 건 다 장바구니에 넣고 바로 결제했는데, 요즘은 옷 한 벌을 살 때, 적어도 20번은 다시 생각하고 구매한다. 내가 이 옷을 자주 입고 다닐지, 가성비는 좋은지, 질이 좋아서 오래 입을 수 있는지, 내가 갖고 있는 옷들과 어울리는지 등등 정말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습관이 있다. 뭔가 지금 사용 안 해도 나중에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고, 나름 물건들과 정이 들었다는 이유로 작은 물건 하나하나 전부 쌓아두는 편인데, 자취를 하고 이 물건들이 짐처럼 느껴져서 거의 다 버리거나 팔아버렸다. 어디서 들었는데 2달 동안 사용 안한 물건은 당장 버리라고 하더라. 2달이나 사용을 안 했으면 거의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는 건데, 우리 집엔 2달을 넘어 2년이 지나도록 안 쓴 물건들이 가득했다. 자취를 하니까 좁은 공간에 물건이 막 늘어져 있으면 정말 지저분해 보인다.
 
전에 부모님과 살 때는 부모님이 치워주셨지만 지금은 뭐든지 스스로 해야 하니 물건도 바로바로 치우고 빨래도 쌓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하는 편이다. 청소기도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돌려야 하고, 제일 싫은 화장실 청소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 한다. 그동안 화장실 청소를 한 번도 안 해봐서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하수구에 껴있는 머리카락을 뗄 때, 변기 주변을 닦을 때 정말 비위가 약한 사람은 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비위가 강한 편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항상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며 집에서 머리를 묶고 있으라고 잔소리 하신것도 이해가 됐다. 생각보다 머리카락이 정말 많이 빠져서 나는 내가 탈모가 아닌가 싶었다. 청소기를 돌리면 바닥에 어찌 그렇게 머리카락이 많은지.
 
또, 집에서는 물에 담가놓는 것 마저 안하고 매일 설거지를 쌓아뒀었는데, 이제는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고 바쁠 땐 꼭 물에 담가놓는다. 저번에 떡볶이를 먹고 물에 안 담가놓았더니 냄비가 거의 떡볶이 색이 되어서 버릴 뻔했다. 그리고 설거지를 쌓아두니까 집에서 이상한 음식물 냄새가 났다. 정말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울타리 안에서 편하게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있을 땐 울타리가 답답하고, 울타리 밖의 세상은 자유로워 무척이나 즐겁고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밖은 정말 살벌한 전쟁터였고, 상처를 입고 넘어진 나는 울타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나왔으니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그동안 나를 그 울타리 안에서 지켜주셨던 부모님을 정말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가족과는 떨어져서 살아야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던데, 나도 정말 공감하는 말이다. 그 말이 나온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 같다. 함께 있을 땐 서로의 소중함보단 불편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만, 떨어져서 살면 그동안 서로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에 자취를 하고 부모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동안 나를 위해 버티셨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마음에 참 죄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나온 이상 다시는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제는 오로지 나의 힘으로 이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동안 나를 막아주던 울타리가 없어져서 무섭고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내가 스스로 나의 울타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조금씩 단단하고 강해지면서 내가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물론 완성되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 하나하나 지어가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점점 성장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윤경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02179
댓글1
  •  
  • 김오늘
    • 아 너무 공감되는 글이네요 ㅠㅠ 저도 자취를 꿈꾸고 있지만 외로움과 부담이 클 것이 두려워서 못하고 있네요~ 그래도 용기내서 울타리를 나오신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ㅎㅎ 이제는 집이 아니라 사회가 에디터님의 따뜻한 울타리가 되기를 바랄게요 :)
    • 0 0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