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것이 허용되는 순간,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는가 -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글 입력 2020.02.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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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는가?

악은 존재하는가?

당신은 자유롭게 존재하는가?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이렇게 묻는다. 상당히 철학적인 난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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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고전 중 최고로 손꼽히는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이야기를 단 100분에 녹여낸다. 원작은 1700여 페이지에 달해 그 방대함으로 유명하기까지 하니, 이 거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할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택과 집중이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오로지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고 관객들이 질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극을 꾸렸다. 살해당한 아버지 표도르, 범인으로 몰린 아들 드미트리,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때 모스크바에 있었던 무신론자 이반, 간헐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스메르쟈코프, 그리고 신앙심 깊은 카톨릭 신자 알료샤까지. 등장인물의 수는 많지 않지만 이들이 가진 이야기는 매우 깊다.


물론 그 탓에 작품의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도입부터 강렬하고 전개와 마무리 역시 강렬하기 때문에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작품이었다. 후반부에는 절정으로 가늠되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해, 오히려 절정다운 절정이 파워가 죽는 듯 했다.


대사 한 줄, 가사 한 마디라도 놓쳤다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버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만큼 텍스트가 알차고 빈틈이 없어 1분1초를 허투루 쓰지 않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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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표도르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으나, 이면으로 들어가면 살인사건보다 훨씬 커다란 메시지와 질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절대악처럼 묘사되던 표도르가 점점 신의 메타포처럼 다가오고, 신앙심이 가장 깊던 알료사가 유일하게 운명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등, 이 작품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루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이반이었다. 이반의 정체성과 신념을 ‘무신론’으로 압축하기에는 비약이 있다. 이반이 거부하는 것은 신의 존재라기보다 아무런 이득 없이도 신앙으로 존재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이 지점에서 알료샤와는 대비된다. 종교인인 알료샤는 이렇다 할 이유 없이도 그리스도를 믿고, 카톨릭의 교리를 따른다.


반면 이반은 이기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단면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이반은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한들, 사람들은 이미 당신 없이 살 수 있는 세계를 구축했으므로 우리 세계에 당신은 이방인이라며 내쫓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원을 구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악에 대해 냉소하는 인물이 바로 이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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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반이 흥미로운 것은, 극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가장 불안해하며 갈등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절대악과 이기심을 통찰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 자신조차 자신의 내면을 신뢰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자신도 사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했고, 물리적인 살인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 욕심과 의지만으로 충분히 유죄가 아닐까 고뇌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며, 따라서 “모든 것은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반의 대척점에 있는 알료샤는 어떨까. 극의 초반부에서 알료샤는 이반과 완전히 다른 인물, 즉 유하고 선한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이반보다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모두가 신과 운명 앞에 무릎을 꿇고, 허용된 모든 것에 백기를 들 때 알료샤 홀로 꼿꼿하게 서서 흰색 로만 칼라를 벗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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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료샤를 지탱하게 해주었던 힘은 신보다도 신앙심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이따금씩 인간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믿음인 것처럼, 알료샤는 악을 의심하고 선을 거부하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에 끝없는 믿음을 보였다. 그렇기에 신을 등지고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을 보러가기 전 가장 기대했던 인물이 스메르쟈코프였다. 역시 기대한 바대로 가장 강렬한 인물 중 하나가 스메르쟈코프였다. 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스메르쟈코프의 발작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이반과 스메르쟈코프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스메르쟈코프의 말대로 이반이 스메르쟈코프에게 살인을 교사한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반의 신념에 절대적 지지를 넘어 동일시까지 이른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이 원했던 일을 자신이 이루었다고 믿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허용된 인간 세계에서는 절대적 악도, 절대적 선도 없고 오로지 자유 의지만 남아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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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고 난 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모순과 악을 접한 느낌이었다. 살인사건 하나로 이렇게나 많은 질문을 도출할 수 있다니, 책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칭송과 사랑을 받는 이유를 어렴풋 알 것도 같았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살인사건이나 범인이 아니다. 러닝타임 동안 계속 반복되는 ‘모든 것은 허용될 수 있다’는 말과 ‘헛소리’라는 말, 이 문장과 단어가 작품의 핵심이다. 종교도 결국 한낱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주의 밑에는,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로 인해 모든 악에 숨결을 불어넣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작품은 묻는다. 이 자유 의지와 악을 마주쳤을 때, 당신은 무릎 꿇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시놉시스


러시아 지방의 지주인 표도르 까라마조프는 평생 방탕하게 욕정을 쫓으며 살아온 호색한이다. 첫 번째 아내로부터 드미트리, 두 번째 아내로부터 이반과 알료샤를 얻었으나, 모두 내팽개치고 자신의 아들로 추정되는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를 하인으로 부리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표도르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다.


표도르와 유산 문제로 다투다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드미트리는 유력한 용의자로 수감되고,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이던 이반, 견습 수도생인 알료샤, 하인 스메르쟈코프까지.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혐오가 있던 네 형제들은 점점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 The Brothers Karamazov -



일자 : 2020.02.07 ~ 2020.05.03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2시, 6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자유극장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주최/기획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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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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