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주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갈릴레이 [공연 예술]

글 입력 2020.02.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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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연극론에서 연극은 시대의 화두를 다루는 사회적 공론의 장이다. 그는 기존의 감정이입에 치중한 전통극과는 달리 관객의 이성을 일깨워 무대 사건을 통해 시대를 성찰하고 잘못된 낡은 체제를 개혁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생소화 효과 등을 통해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를 기반한 국립극단에서 재탄생한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이성열 연출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브레히트의 의도를 반영하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그 만의 문제의식과 방식으로 <갈릴레이의 생애>를 재연했다. 과거 브레히트가 세웠던 연극론을 현대의 연출가가 어떻게 재연하는 가를 살펴보는 것은 연극사적인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창작자들은 연극사의 통시적 흐름 속에 자신이 위치한 자리를 자각하게 되며 선행 작가들이 걸어간 길에서 창조적 화두를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 에서는 브레히트의 연극론을 현대의 창작자인 이성열 연출이 어떻게 재해석하고 구성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도록 하겠다.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근저에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인간은 ‘익숙한 것’, 즉 이미 알려져 있거나 당연하게 여기지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파고들어 생각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익숙한 것’은 대게 잘못된 지배 질서를 변화시키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낡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관객의 특성을 타파하여 그들의 이성을 깨우기 위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위한 ‘생소화 기법’을 사용한다. 그의 생소화 효과는 기존의 전통극이 강조한 ‘감정이입’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포기하면, 그들의 이성이 되살아나 작품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를 되찾게 되고 이것이 비판적인 시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이러한 생소화 기법의 방법으로는 극 중 합창이나 노래를 도입, 배우들이 비판적인 태도, 3인칭 화법 이용, 관객을 향해 하는 대사나 장면요약 등이 있다.  이러한 기법을 포함한 서사극은 동화, 감정이입 등 수동적인 반응이 아닌 이화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며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행동을 요구한다.

 

 
이성열 연출의 <갈릴레이의 생애>

 

먼저, 브레히트와 이성열 감독의 의도가 일치하는 부분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성열 연출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나 생소화 효과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가 연출한 <갈릴레이의 생애>에도 몇 가지 생소화 기법이 사용된다. ‘노래’와 ‘코러스’가 그 역할을 한다. 이성열 연출의 <갈릴레이의 생애>에는 노래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이 연출은 생소화 기법을 염두에 두고 노래 요소를 넣었기 보다는 대사가 많은 작품이다 보니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것 같아 대중적인 요소를 넣은 것이라 했지만, 그의 의도가 어떻든 노래 요소가 관객에게 생소화 효과를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노래는 관객이 배우의 대사와 극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극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며 관객이 끊임없이 무대위의 사건을 단지 ‘연극’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또한, 거리 악사와 거리 악사 부인이 장면 전환 때 나와 관객들을 향한 대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생소화 기법의 한가지 이자, 고대 그리스 연극의 코러스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이들은 관객의 반응(reaction)을 미리 하면서 여론을 조성하거나 사건을 요약, 정리하고 교훈을 전달한다. 이는 노래요소와 마찬가지로 관객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연극’으로 인식하고 연극으로부터 이화하여 현재 자신의 사회를 돌아보게끔 해준다. 특히, 이 코러스들은 현대적인 복장을 입고 있는데, 이는 관객이 현재 우리 사회와 갈릴레이 시대의 일이 분리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하여, 극 중에서 제시되는 ‘낡은 것’을 우리 사회 안에서 찾아볼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성열 감독에 의해 새롭게 제기되거나 강조된 부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브레히트는 미국 판본과 베를린 판본에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강조하며 갈릴레이의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성열 감독은 오늘날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은 이미 익숙한 논제이기 때문에 특별히 강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윤색 과정에서 해당 부분의 비중을 줄였다고 밝히며 과학자로서 책임보다는 갈릴레이가 진실을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더 강조하려 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연출의 <갈릴레이의 생애>에는 갈릴레이가 자신의 학설을 철회한 이후의 장면보다 갈릴레이가 추기경과 교황청의 저지에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을 담은 장면의 비율이 더 많다. 또한, 갈릴레이가 안드레아에게 디스코르시를 건네주며 자기 비하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디스코르시는 안드레아에 의해 국경을 넘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임을 부각하였다.

따라서 이 연출은 이러한 갈릴레이의 긍정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갈릴레이가 현대의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인정하지 않는 세계’를 변화시킬 인물 상이며 이러한 갈릴레이의 면모를 본받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극 중 여성 캐릭터 묘사에 대한 부분도 다르다. 원작인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셍애>에서는 갈릴레이가 비르기니아를 속물적이고 인습에 빠진 아이로만 여겨 비르기니아를 종종 무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비르기니아는 실제로는 갈릴레이의 말년까지 그의 오랜 벗이자 조력자로 실험과 저술을 돕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성열 연출은 비르기니아가 스스로의 욕망이나 사고에 충실하기 보다는 기존의 가치관에 헌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인물은 아니지만, 어쩌면 갈릴레이 보다도 성숙하고 깊은 인가미를 보여주는 인물이며, 그러한 비르기니아의 따듯한 면모를 강조하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극 중 비르기니아는 아버지인 갈릴레이로 인해 약혼이 무산되기도 했지만,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섰을 때 유일하게 그의 생사와 안위를 걱정하고 가택연금이된 상태에서도 그를 보살피는 등 따듯하고 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이성열 연출의 <갈릴레이의 생애>에는 상징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먼저 ‘돌을 떨어뜨리는 행위’는 ‘이성’을 의미하는데, 이는 지동설의 핵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갈릴레이의 사람들이 이성을 사용하여 진실된 사실을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는 안드레아가 국경선에서 만난 어린 소년에게 돌을 건내준 이유이다. 이 돌은 갈릴레이, 안드레아, 어린 소년으로 이어지며 후세에 이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진실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올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추기경의 집 무도회 장면에서, '가면'을 쓴 귀부인들은 '갈릴레이'를 유혹하고 비웃을 뿐만 아니라 갈릴레이는 '이성'은 미흡하고 나약한 것이기에 '종교'를 통해 억누를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추기경의 압박에 놓인다. 이 장면의 첫 부분에서, 추기경을 기다리던 갈릴레이에게 어린 아이들이 장미 꽃을 전해준다. 이 장미꽃은 ‘이성’으로 대변되는데, 귀부인들이 부르는 가사 중 ‘시든다’는 내용의 가사로 보아, 장미꽃으로 대변되는 이성이 갈릴레이의 믿음만큼 피어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렇게 이성열 연출은 상징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극의 전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관객이 그 의미를 추측하게끔 하여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였다.

 

 

 

최종 평



<갈릴레이의 생애>는 현대에 국립극단에서 올라간 이성열 연출의 작품이지만, 브레히트의 원작 <갈릴레이의 생애>에 기반을 둔다는 것으로, 연극론을 배우는 입장에서 분석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분석하면서, 아무것도 모른 체로 극을 감상하였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 극을 감상하였을 때는 러닝 타임이 3시간이 넘어가는데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극이 아니라 매우 지쳤었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극이었고,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매우 방대해서 중간에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었다. 그러나, 작품을 분석해보고 나니, 결국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고, 내가 극을 보면서 갈릴레이 시대의 문제적 상황을 인식하고 그것을 현제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적용하여 생각해 보게끔 하려는 의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러한 의미에서 이성열 감독에 동의한다. 현재에도 진실이 눈앞에 있음에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가 만연해 있다. 그러한 사회에 맞선 갈릴레이처럼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권력에 의해 사라지거나 억압받는다. 갈릴레이가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회는 똑같다. 이 극을 보면서 나는 그러한 현실에 대해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노력해보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이 극은 궁극적으로 브레히트와 이성열 감독의 의도대로 나에게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되돌아보고 행동하려는 의지를 가지게끔 하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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