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동깡깡이 마을과 작업복

글 입력 2020.02.2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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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 이름을 붙일 때 감각과 관련된 단어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주로 청각을 이용하는데, 가장 단순하게 고양이나 강아지를 뭐라고 부르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대평동의 또 다른 이름, 깡깡이마을도 이런 맥락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이야 그라인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지만, 이곳에는 망치로 선박의 녹슨 부분을 때리던 깡깡이 소리가 대평동을 가득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깡깡이 소리가 증발해버린 대평동을 걷다 보면 이제는 청각이 아니라 시각적 감각이 가득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빼곡한 배들과 함께 이곳의 역사를 가득 안고 있는 ‘ㄷ’자 모양의 포구도 좋고, 깡깡이 예술마을을 대변하는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공장의 벽들도 좋다. 포구를 조금 더 돌아 들어가면 보이는 큰 배와 조선소도 괜찮다. 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것은 이 모든 곳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 남색 작업복들이다.

 

여느 공장단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업복이 깡깡이마을과 더 찰떡같이 달라붙는 건, 이곳의 환경 때문이다. 조선소의 옷, 작업복. 없는 것 빼고 없었다던 영광스런 시절의 이곳, 깡깡이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 시절에 작업복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작업복?


 

앞선 궁금증에 대한 답은 40년째 대평동에서 작업복을 만들어 온 <대성 특수복>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가게를 처음 연 게 76년도에요. 사실 디자인은 그때와 크게 다를 게 없었습니다. 작업복은 작업할 때 편한 것이 제일이니까요. 그래서 디자인도 작업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팔 움직이기 편하게 어깨 부분을 넉넉하게 만들고, 열고 닫기 편하게 지퍼를 사용합니다.”

 

사실 90년대 초반까진 지퍼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퍼가 보편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추로 작업복을 만들었고 입고 벗는데 앞을 여미고 풀고 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무엇보다도 단추를 채웠다가 푸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 것이다. 두꺼운 작업용 장갑을 끼고 있다면 단추는 바짝 깎은 손톱으로 동전집기만큼이나 어렵다. 한 마디로 단추는 효율성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지퍼와 똑딱이 단추가 보편화되고 나서 단추는 없어졌고 효율성이 급격히 상승했다. 하나하나 꿰다가, 아, 하나 잘못 끼웠네 이런 짜증 나는 일없이 그저 쓱 하고 올리거나 톡하고 잠그기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이처럼 작업복은 오로지 효율성이라는 디자인 아래서 발전해왔다.

 

작업복의 소재는 조선소의 작업 환경에 맞게 변했다. 아직 합성섬유가 보편화되기 전, 작업복은 오롯이 면 소재로만 구성되었다. 면은 이론상으론 충분히 좋은 소재였다. 열에 강하며 기름때를 빼기도 쉽고, 부드러우며, 이래저래 실용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이었다. 직접 작업복을 입고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면이 땀을 잘 흡수해 쉽게 무거워졌고, 쉽게 수축하여 틀어지기 일쑤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테트론, 아크릴과 같은 합성섬유가 나오면서 면과 혼용하여 사용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업복에는 합성섬유 중에서도 테트론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테트론은 마모와 열에 강하며 탄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면과의 궁합이 좋다. 면과 테트론의 조화로운 만남은 작업복이 가지고 있던 예의 문제점을 바로 잡고, 일의 효율성을 높였다.

 

 


작업복의 변신


 

이런 작업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범인은 ‘워크웨어, 유틸리티 웨어’였다. 이들은 작업복의 피를 물려 받은 이들이 최근 2, 30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룩티크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워크웨어는 활동성과 내구성을 중시했던 작업복과 같이 편하고 튼튼하여 오랫동안 입을 수 있다. 또한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헤리티지와 시간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넉넉한 작업복은 핏한 옷을 피하는 현 세태의 유행과도 죽이 잘 맞는다.

 

기존의 펑퍼짐한 작업복도 인기가 있지만 맵시를 조금 세련되게 탈바꿈시킨 것들은 조금 더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 워크웨어라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어져버린 데님, 청바지가 그렇다. 최근에는 흔히 멜빵바지라 불리는 오버올도 대중의 영역으로 나왔다. 대평동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상하의가 붙어 있는 점프슈트, 커버올 역시 젊은 세대에게 사랑 받는 워크웨어이다.


이런 외향적인 요소 외에도 워크웨어가 인기 있는 데엔 정신적인 요소도 작용한다.

 

네브래스카대학의 네이슨 파머 교수는 “인간이 오래도록 깊이 새겨온 이상들 중 하나가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것”이라며 잃어버린 땀에 대한 향수와 노동에 대한 경의가 워크웨어의 유행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워크웨어 역시도 입을 때도 심미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와 트렌디함을 과시하려고 롤렉스를 차고 구찌 라이톤을 신는 것처럼, 노동에 가치를 십분 이해하고 동경하는 마음에서 워크웨어를 입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워크웨어, 유틸리티웨어가 인기 있는 데는 단순히 예뻐서, 연예인이 입어서가 아닌 더욱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이렇게 본다면 젊은 세대들이 워크웨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부모 세대들에 대한 감정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을 들으면 당신들은 기름 밥 먹고 어렵게 생활한 결과물이자 자랑할 것 없는 그저 부끄러운 옷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당신들이 땀과 기름에 젖은 작업복으로 만들어 준 발판에 대한 존경과 감사와 노동에 대한 동경이라고 대답할 테지. 이렇게 워크웨어의 수많은 주머니에는 앞선 세대에 대한 경의가 가득 차 있다. 그 시절 대평동을 메우던 깡깡이소리처럼.



 

[전재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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