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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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
10,000년 전, 인간은 앉았다. 2020년에도 앉는다. 앉는다는 행위는 계속되었지만 앉기 위한 사물은 달라져왔다.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은 돌, 앉는 부분과 등받이 부분이 연결된 나무와 사출 금형으로 제작된 플라스틱. 이 모든 사물은 ‘의자’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앉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물은 만들어진 것에서 제 역할을 끝내지 않았다. 어떤 의자에 어떻게 앉을 것인지, 태초의 앉는다는 행위로부터 출발된 사물의 변주는 10,0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채로운 사물은 인간의 삶을 확장하며 인간을 만들어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 전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에서는 핀란드 디자인의 역사를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역사의 흐름을 시간의 순서대로 또는 일련의 기준을 가지고 분류된 내용에 따라 바라보았었다. 위 전시에서는 인간이 물질에 대해 탐구하고 물질을 변형해 사물을 만들며 그 사물이 인간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물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지 아주 본질적인 고민을 남긴다.
핀란드 사비타이팔레 지역에서 출토된 나무 스툴 © 국립중앙박물관
사물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위로부터 사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작자가 사물의 형태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뭇가지가 뻗은 형태를 그대로 사용한 위의 의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
미국의 건축가인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의 유명한 격언이다. 이는 사물의 형태가 그저 아름다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이유나 기능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위 의자의 다리 형태는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자연에 있던 것을 발견했다고 함이 맞을 것이다. 의자는 인간이 의자에 앉았을 때의 무게를 버텨야 하며, 위 의자는 그 기능을 위한 형태를 자연에서 찾아낸 것이다.
stool 60 © Alvar Aalto Museum
자연에서 발견된 것을 그대로 사물로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물과는 다르다. 핀란드 사람들은 숲에서 발견한 자작나무껍질을 엮어 병이나 가방 같은 사물들을 만들어냈다. 자작나무껍질은 핀란드 사람들이 그들 주위의 자연에서 발견한 물질이다. 그 물질을 사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자작나무껍질을 엮는 기술을 고안해냈다. 즉, 기술을 사용해 물질을 변형했을 때 비로소 사물은 기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핀란드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의자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알바 알토가 개발한 이 기술은 자작나무를 L자 형태로 만들어 의자의 다리로 사용한다. 기술의 목적이 사물을 만들어가는 창조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형태가 기능을 따르며,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은 창조의 과정을 따름을 보았다. 그렇다면 창조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전시는 창조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꿀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창조란 인간이 자연과 환경을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만든다는 것을 무(無)에서 출발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창조는 시작부터 난제 그 자체가 된다. 그러나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환경에서 인간의 필요에 따른 요소를 발견하고 거기에 제작자만의 해석을 부여하는 순간, 창조는 시작된다.
[조예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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