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사회의 무게에 맞선다는 건

영화 '프란시스 하'를 보고
글 입력 2020.02.2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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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 서문 속 구절이다. 하루키는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지만, 사실 자아와 사회의 충돌이라는 것은 비단 사랑에 한정된 이야기 소재라 할 수 없다. 꿈도, 우정도, 사람들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삶은 때때로 지나치게 냉혹하고 잔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시련에서 모두가 살아남지는 않는다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한 진실일 것이다.

 


 

1. 자아의 무게에 맞선다는 것



프란시스 하2.gif



"프란시스 우린 세계를 접수할 거야. 난 출판계에서 먹어주는 거물이 되고 넌 완전 유명한 현대무용수가 되고 난 너에 대한 비싼 책을 낼 거야"

 

주인공 프란시스는 여러모로 봤을 때 괴짜 캐릭터이다. 영화 초반부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남자친구와는 단짝 친구인 소피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다며 헤어진다. 남사친 레프와의 식사 도중에는 식사 비용을 기어코 본인이 내겠다며 식당 밖을 뛰쳐나와 한참을 헤맨 이후에야 돈을 뽑아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인의 소개로 초대된 저녁 식사 모임에서는 분위기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들로 사람들을 언짢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그녀를 주변인들은 undateable(애인 안 생겨요)라 부르며 웃어댄다.


 

프란시스 하3.jpg


"제가 원하는 어떤 순간이 있어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제가 원하는 건데 파티에서 각자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있고 웃고 있는 상황에 눈을 돌리다가 서로에게 시선이 멈추는 거에요. 불순한 의도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이번 생에 그 사람이 내 사람이라서. 언젠가 끝날 인생이라 재밌고 슬프기도 하지만 거기엔 비밀스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어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세계. 쉽게 말해 우리 주변에 수 많은 차원이 존재하는데 우린 그걸 느낄 능력이 없다잖아요. 그게 누군가의 관계에서 제가 원하는 거에요. 인생에서도 그렇고, 사랑에서도 그렇고.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란시스가 그저 괴상한 인물에 불과하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우정의 소중함을, 진실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운명적 사랑을 꿈꿀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속에서도 꿋꿋이 현대 무용가로서의 꿈을 이어나가는 우직함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우둔하고 미련한 성격의 프란시스. 그래도 그녀는 자신만의 꿈과 이상이 있기에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2. 외부 사회의 무게에 맞선다는 것


 

다만 프란시스의 거침없는 자아의식을 모두 받아주기에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호락호락하지 않나 보다. 그녀를 세상 유일하게 온전하게 이해해주던 절친 소피는 남자친구(심지어 프란시스가 극구 반대하던 남자)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소피를 위해 어떻게 보면 본인 삶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헌신했던 프란시스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낄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대했던 크리스마스 무용 공연도 오르지 못하게 된다. 실망하는 프란시스에게 교수는 무용단원이 아닌 사무직으로 보직 이동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지만 그녀는 영 시답지 않을 뿐이다. 


연애도, 우정도, 꿈도 모두 암울하기 그지 없는 상황. 그녀는 마침내 처절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보게 된다. 냉정하게 직시한 현실 속 그녀는 맨발 차림으로 시멘트 같이 차갑고 건조하기 그지 없는 현실 속에서 고독을 들이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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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부사회와 타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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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말에 이르러 프란시스는 결국 평생 꿈꿔왔던 무용수의 길을 포기하고 깔끔한 정장차람의 사무직 안무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한 때 출판계의 거물을 꿈꾸며 프란시스와 함께 세상을 접수하자며 절치부심하던 소피는 그 모든 옛 꿈들을 뒤로한 채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준비한다.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소피와 프란시스는 모두 현실을 택했다. 하루키의 말을 빌리면 자아와 외부 사회의 힘겨루기 속에서 패배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가 곧 퇴보를 의미하지는 않지 않는가.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인생이라는 더 큰 강물의 흐름에 맡겨져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 이에 너무 상심하지 말고 살아갈 필요도 있다라는 것을 어쩌면 이 영화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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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프란시스는 마침내 자립한 아파트 우편함 속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다. Frances Halladay라는 본인의 풀 네임이 너무 길어서였을까. 프란시스는 결국 Frances Ha 까지만 잘린 이름표를 우편함에 끼워 넣으며 영화는 막에 이른다. 자립한 이후 프란시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안무가 삶에 금방 싫증나지는 않았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프란시스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는 점. 부디 프란시스 하에게 앞으로 행복한 일이 가득하길 기도해본다.



[김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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