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완벽한 악인도 선인도 없다 -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공연]

갈등하는 인물은 모두 가해자이며 피해자다.
글 입력 2020.02.1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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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제목만 보았을 땐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연극이다. 다소 어색한 느낌의 XXL 사이즈, 레오타드라는 단어의 호응과 안나수이 손거울은 또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제목이다. 포스터에는 빨간 레오타드를 입은 근육질의 남성이 교복 와이셔츠를 벗어 헤친 채 뛰어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시놉시스를 읽으니 레오타드를 입는 것에서 마음을 안정을 찾는 남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연극이라는 간단한 정보만 얻고 서강대학교 메리홀로 향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무대를 철봉으로 20개의 구획으로 나눈 정글짐 형태의 무대 장치를 볼 수 있었다. 이 20개의 구획은 학교 체육관 같은 넓은 공간, 주된 배경을 활용할 땐 전체의 조명을 비추어 모든 공간을 활용하였고 창고 같은 작은 공간을 표현할 때는 1개~4개의 구획만 조명을 비추어 제3의 공간을 연출했다. 무대의 이동이나 변형 없이 기존의 무대 장치와 조명만으로 여러 장소를 구현할 수 있었기에 무대 연출의 기발함에 놀라움을 느꼈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4).jpg

 

 

연극은 희관과 태우의 강렬한 춤으로 포문을 연다. 번쩍이는 조명에 힙합 의상을 입은 두 남학생은 신나는 팝송에 맞추어 커플 댄스를 춘다. 이런 강렬한 퍼포먼스는 해당 극이 톡톡 튀는 10대들의 이야기임을 드러내는 느낌을 주며 이 춤이 추후 연극의 첨예한 갈등을 유발하는 중요한 중심소재였기에 전방에 위치시킨 기분도 들었다.

 

강렬한 춤 한바탕이 끝나자, 등장인물이 하나둘 소개된다. 레오타드를 입는 남학생 준호부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또 다른 주인공 희주, 준호의 여자친구 민지, 준호의 친구들 희관과 태우까지 인물소개가 이어진다.

 

학생회장 같은 의젓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 준호는 해당 작품의 주요 인물이다. 여느 청소년처럼 개구진 모습도 있지만 ‘3단지’라는 중산층의 공간에 살면서 성적과 돈에 따른 가치관을 가진다. 준호는 희관과 자신이 맞지 않은 원인을 희관이 ‘임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빈부 격차에서 오는 계급을 내면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희주는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학업과 병행한다. 이혼가정, 부모의 넉넉지 못한 지원에 희주는 가족에게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상처 가득한 희주는 가시를 세우고 학교를 억척스럽게 다닌다. 체육 특기로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 만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며 빈곤함, 왕따, 부모에 대한 원망까지 모두 감내하고 오늘도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한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 ‘2인 댄스’ 체육 수행평가가 희주 앞에 놓인다. 수행평가 점수는 희주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왕따인 희주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던 와중 준호의 비밀스러운 사진이 담긴 USB를 발견하고 희주는 준호를 이용하려는 마음을 먹는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5).jpg

 

 

연극에서 주된 인물은 빨간 레오타드를 입는 남학생 준호와 왕따를 당하는 희주이지만, 좀 더 자극적인 소재 때문인지 보다 준호에게 몰입해 감상하게 됐다.

 

준호를 중심으로 연극을 감상하면 희주는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다. 엄밀히 따지면 사이버 성범죄에 해당한다. 레오타드만 입은 준호의 사진을 얼굴만 모자이크한 채 학교 사이트에 게시하고 수행평가를 함께 하도록 준호를 협박한다. 준호를 소수자라고 상정하면, 커밍아웃을 볼모로 협박하는 모습이 그려졌기에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준호는 그 사진에 자신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고 생각했기에 화를 내보고 비굴해지기도 하지만 희주는 너무나 당당하게 준호를 협박한다.

 

 

“변태 호모로 소문나서

졸업하고 싶으면 네 마음대로 해”

 

 

준호에 몰입해 희주는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극의 흐름은 준호가 의지와 상관없이 처음으로 치부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희주에게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입은 레오타드를 보여주고 왜 레오타드를 입어야만 하는지 속마음을 나눈다. 자신을 가장 위험으로 몰아간 인물에게 가장 친밀함을 느끼는 아이러니함은 준호가 그간 느꼈을 혼란과 배제에 대한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3).jpg

 

 

연극이 끝나고는 희주에게 몰입해 연극을 돌아봤다. 희주의 물에 침을 뱉는 희관을 방관하고 함께 즐거워하던 준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연극에 그려지진 않았지만, 연극 뒤에서 벌어졌을 희주를 향한 차별과 왕따 속에 과연 준호 또한 완전히 깨끗할 수 있을지, 준호를 그저 소수자라고 상정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게 됐다.

 

연극에서는 완벽한 악인도 완벽한 선인도 없다. 돈과 성적 앞에서 강자였던 준호는 자신이 온전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빨간 레오타드 앞에서 한없이 약자가 된다. 희주 또한 마찬가지다. 삶의 터전인 학교에선 왕따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만, 준호의 약점을 가진 입장에선 악독한 강자로 그려진다.

 

연극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은 모두 상대적인 계급을 가졌다. 그 어떤 인물도 계급 앞에서 무력하다. 연극의 소개 글에는 ‘윗세대의 불평등한 세상을 청소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작품이라 말했지만, 필자는 해당 그런 의도보다 ‘상대적 계급’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기분이다.

 

*

 

어디선가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을’은 또 다른 공간에서 ‘갑’이 된다. 강자와 약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낳는다. 연극은 청소년들을 빌려 또 다른 사회의 병폐를 말하는 것 같았다. 완벽한 강자도 완벽한 약자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연극이었다.

 

 

 

정일송.jpg

 




[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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