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시력 이야기 [사람]

내 발목을 잡았던 안경과 렌즈, 그리고 습관
글 입력 2020.01.3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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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의 나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약 열흘 전 시력교정술을 통해 좋은 시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길디긴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던,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던 고질적인 문제가 고작 40분 만에 해결되다니 어딘지 모르게 허탈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껏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나쁜 시력에 관한 설움을 토로해 보고자 한다.

 

나는 6살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아 계속해서 교실 앞으로 가서 글자를 확인하는 나를 본 유치원 선생님은 엄마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유치원을 조퇴한 나는 안과와 안경점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당시의 내 눈은 지나치게 심한 난시에 그치지 않고 양쪽 눈의 과도한 시력 차이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비교적 시력이 높은 오른쪽 눈을 가리는 반창고를 붙이기도 했다. 최대한 한쪽 눈만을 활발히 사용해 양안의 시력차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거의 휘발된 유치원생 시절의 기억 중 가장 뚜렷한 것은 눈이 아픈가 싶어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했던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꽤나 큰 유치원에 다녔지만 원생 중에서도 안경을 쓴 아이는 오로지 나 하나였기에, 지나다닐 때마다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이들은 유독 소극적이었던 내게 큰 부담이었다. 나름대로 작지 않은 눈이 2/3 크기로 줄어드는 건 덤이었다. 이 고충은 초등학생이 되자 조금은 옅어졌지만 그럼에도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내 첫인상에 대해 ‘공부 잘할 것 같다.’ ‘박사님 같다.’고 말했다. 나름 칭찬 겸 위로를 의도하며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안경은 항상 내 콤플렉스였던지라 눈이 나빠 안경을 끼는 것이 내 이미지와 직결되는 건 당연히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자 나는 당시 유행했던 큰 뿔테 안경을 끼고 싶었다. 지금이야 안경테가 없다시피 한 동그란 안경이 유행이지만, 그때는 모든 중고등학생들이 하나같이 얼굴의 반을 가리는 뿔테 안경을 낄 때였다. 하지만 안경사 선생님은 시력이 너무 나빠 렌즈가 무거울 테니 알이 큰 안경은 고를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 안경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 한 마디가 서럽기 그지없었다. 우울해 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유전 탓이라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안경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한결 줄어들었다.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데다 안경을 쓴 친구가 쓰지 않은 친구보다 더 많아졌던 터였다. 그래도 수학여행이나 소풍날에는 안경을 벗고 싶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끼자고 렌즈를 구입하는 건 부담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 벗는 정도에 그쳤다. ‘학생답게’ 보이겠답시고 안경을 끼고 찍은 대학원서 사진은 양쪽 눈의 시력 차이 때문에 두 눈의 크기가 확연히 달라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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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성인이 되고 나는 하드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외관상으로는 당연히 더 나았지만 불편함은 비교할 수 없었다. 티끌 하나라도 들어가면 당장 인공눈물을 넣거나 렌즈를 닦은 뒤 다시 껴야 했다. 유독 미세먼지가 심했던 봄철에는 눈에 몹쓸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언젠가는 렌즈를 잃어버려 울며 겨자 먹기로 거금을 주고 한 쪽 렌즈를 다시 맞췄는데, 렌즈가 완성된 불과 다음날 서랍 속에서 잃어버렸던 렌즈를 발견해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드렌즈의 수명인 2년을 꾸역꾸역 채운 뒤 나는 드디어 시력교정술을 통해 렌즈나 안경의 도움 없이도 선명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술 후 눈이 회복되면 그야말로 별천지일 줄 알았는데 아직은 하루에 열 몇 차례씩 안약을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아직은 기대했던 것만큼 신기하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마치 블루투스 이어폰 같았다. 주변에서 온갖 극찬을 들은지라 잔뜩 기대하며 구입했는데, 그 편리함은 예상했던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눈을 얼마나 홀대했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수술을 하고 나니 자외선이나 각종 모니터 빛 등 조심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좋아진 시력을 관리 부족으로 다시 잃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한여름의 해변이 아닌 평범한 길거리에서는 왜인지 머쓱한 선글라스, 앞으로 계속 달고 살아야 할 인공눈물, 그리고 맘 편히 즐길 수 없는 스마트폰과 TV시청 등이 안경과 렌즈 대신 비집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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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지금 지켜야 하는 주의사항들 중 대부분은 수술 전에도 필요했던 것들이었다. 나는 한동안 새로 맞춘 지 서너 해가 흘렀는데도 고집스럽게 낡은 안경을 착용했다. 그 안경은 내 시력과 도수가 맞지 않는 탓에 수업 시간에는 스크린의 강의 내용이 보이지 않아 눈을 찡그리곤 했다. 결국 이 행동은 꾸준한 시력 저하에 영향을 줬다. 그리고 흔들리는 지하철 안이나 캄캄한 방 안에서 밝은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한두 시간을 훌쩍 보내는 습관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차피 나쁜 눈, 이제 와 신경 쓰면 뭐하나 싶어 눈의 휴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알면서도 소홀히 대했던 것은 비단 눈뿐만이 아니었다. 뭔가에 대해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제대로 행동하기까지의 과정에서는 마땅한 구실이 꼭 필요했다. 구실이 없을 때 내 의지는 항상 바닥을 쳤고, 그 목표가 당장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유혹에 더욱 쉽게 무너졌다. 무엇이든 간에 목적을 품은 행동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은 쉬웠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 상황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눈 건강을 이제부턴 신경써야만 하는 지금처럼, 소홀했던 행동은 결국엔 되돌아보아야 할 때를 마주했다. 기왕 교훈을 얻은 만큼, 뒤늦은 다급함보다는 여유로운 습관에 정착하는 한 해를 시작해야 할 듯싶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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