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투쟁하는 방식, 기억하는 방식 - 졸업 [영화]

글 입력 2020.01.30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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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박정희 정부는 경영이 어렵던 원주대학교에 임시 이사를 파견한다. 김문기씨는 그 임시 이사 중 한 명이었다. 2년 만에 학교를 설립자에게 양도받아 폐교하고 남은 학교 재산으로 상지대학교를 세운다. 그리고 스스로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김문기씨는 대학을 사유재산의 일종인 것처럼 다뤘다. 그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이사회는 한 차례도 소집되지 않았다. 대학의 또 다른 주체인 교직원과 학생들의 의견을 묻거나 수렴하는 일도 없었다. 김문기 씨가 배후로 거론되거나 배후임이 증명된 사학비리가 연달아 발생했다.

 

김문기씨가 대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용공조작사건이다. 김문기씨의 전횡을 규탄하는 농성 현장에 “가자! 북의 낙원으로”라는 내용의 유인물이 발견된다. 비리에 항의하던 학생들은 간첩으로 몰려 경찰에 연행됐다. 수사 결과는 김문기씨의 자작극이었다. 유인물을 유포했던 교직원이 양심선언을 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에게 대학은 교육기관이 아니다. 공공에 기여하는 공간도 아니다. 그가 대학을 세웠으니 대학은 온전히 자기 소유다. 학교의 주인인 본인에게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학생들의 존재는 그의 상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문기씨는 입시 비리의혹과 교수 임용 관련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다. 혐의는 사실로 판명나고 징역형을 받는다.

 

영화 <졸업>은 김문기씨의 복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복귀는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의 결정이었다. 사학비리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노무현 정부 때 수립된 사분위는 정권이 바뀌며 오히려 사학비리를 장려하는 기관이 된다. 배임 행위가 드러난 구 재단의 복귀 명령이 그 예다. 사분위는 상지대 뿐만 아니라 경기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등 사학비리 전적이 있는 대학 재단을 학내 정상화란 명분으로 복귀시킨다.

 

박주환 감독의 애당초 목적은 김문기씨의 이사회 복귀가 소문으로 나돌 당시의 혼란스러운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의 투쟁과 김문기 일가에게 점점 장악돼 가는 학내 모습을 지역방송국에 송출하기까지가 자기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 바뀌는 게 있을 거라 믿었다. 소문이 구체적 실감으로 바뀌고 사분위 결정에 울부짖는 당시 총학생회장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박주환 감독은 좀 더 오랫동안 카메라를 잡는다. 거의 10년을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투신한다.

 

박주환 감독은 씨리얼과의 인터뷰에서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오랫동안 든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학교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학교를 사랑해 본적이 없어요. 그냥 거기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좋아했던 거에요”

 

그 말처럼 박주환 감독은 어쩌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카메라를 든 것일 테다. 전 총학생회장인 명식씨는 교수 회의장에 항의하러 갔을 때 뺨을 맞는다. 총학생회가 김문기 재단의 복귀를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면 대학 본부는 용역업체를 동원해 방해한다. 박주환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기록한다. 이 기록이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 총학생회장이 돼 농성, 시위에 가담하고, 졸업하고도 투쟁의 풍경을 영상에 담은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곁이 되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다. 조금이나마 울타리를 둘러주고 싶다는 의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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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는 어느 한 개인의 영웅서사가 아니다. 몇몇 인물의 희생을 조명한 혁명의 드라마도 아니다. <졸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상지대 민주화 투쟁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는 점 자체다. 총학생회의 임기는 1년이고 투쟁을 주도하는 총학생회장은 매해 바뀌지만 누구도 김문기 재단과 타협하지 않는다. 굴종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쟁의 규모는 해가 지날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학생들 역시 이들을 지지한다.

 

졸업에 나오는 인물들의 투쟁은 내게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은 책임감으로 변모한다. 김문기씨가 총장으로 취임한지 1년째인 2015년 상지대는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D등급을 선고받는다. 학생들은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한다. 학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없다. 대학본부의 어설픈 행정 처리는 학생들의 불이익으로 돌아오고 거기서 책임감을 느끼는 건 김문기 재단이 아니라 투쟁을 주도하는 총학생회단이다. 당시 총학생회장인 종완씨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운다. 재단 퇴진을 이뤄내지 못한 자신들 탓이라고 여겨서다. 이 공간에 함께 선 이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생각에서다.

 

종완씨가 해당 상황에 책임감을 느끼며 옥상 난간에 섰을 때, 제발 한번만 자신들과 대화하자고 호소할 때, 박주환 감독은 카메라를 치우며 종완씨를 설득하고 명식씨는 부총장에게 가서 잘못했으니 한번만 옥상으로 나와 달라고 무릎 꿇고 빈다. 대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종완씨는 겨우 물러난다. 영화에서 종완씨와 감독, 명식씨는 그 때를 책임과 반성의 시간으로 기억하는데, 정작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이들은 변명조차 하지 않고 자기 입지를 공고히 하는데 혈안이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김문기 재단의 명령을 집행하는 이들에게서 종종 비춰지는 맥락이다. 주어진 상황에, 권력에 순응하는 평범한 이들이지만 이들이 거악처럼 느껴지는 건 그 같은 맥락이 어떻게 악행으로 이어지는지 우리의 민주화 역사에서 수도 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의식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사실 <졸업>은 투박하다. 영화의 대부분이 고성과 욕설, 구호를 외치는 등의 시위 기록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돈된 서사의 느낌은 부족하다. 그러나 이 영화엔 진정성이 있다. 투쟁이 몇몇 투사의 혁명정신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당신 역시 당신의 온당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지금도 학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 있다.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는 지난 10월 총장직선제 투표비율을 교수가 결정하는 행태에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황지수씨는 44일동안 총장직선제를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벌였다. 지난해 홍익대, 고려대, 한신대 총학생회는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는 총장직선제를 이룩하기 위해 투쟁했다.

 

나는 우선 <졸업>에 등장한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학내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 이름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우선 혁명에 가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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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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