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서]

장강명 작가의 『산 자들』(2019)과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2019)
글 입력 2020.01.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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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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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이란 단어가 생겼다. 먹고 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경제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봉건 사회는 붕괴되었지만, 돈에 의해 또 다른 ‘계급’이 나뉘고, 계급 사이의 벽은 견고해졌다. ‘갑’과 ‘을’의 세계가 명확하게 보이고, 돈과 권력의 환상적인 이미지가 만연한 사회다. 명확하고 달콤해 보이는, 그리고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계급 사회를 보며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더 높은 계급을 꿈꾸며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고민하다 보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견고한 벽 앞에서 좌절한 개인은 지금의 계급이라도 유지해야겠다는 ‘생존’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잘’ 먹고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게 먹고 살고 싶을 뿐인데, 그것조차 ‘노오력’ 없인 불가능해 보이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내가 먹고 사는 문제’에 치중한다. ‘나’와 ‘우리’라는 경계를 만들고 배척한다. ‘갑’이 아닌 ‘을’ 안에서도 경계를 나누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싸워야 한다. 계급은 촘촘히 나누어져 결국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에 이른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남이 먹고 사는 문제까진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사회 현상들로 나타났다.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은 사회 초년생들의 직장 생활, 연애, 독립 이야기를 그린다. 그들이 겪는 슬프고도 씁쓸한 감정들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다. 사회 초년생들은 사회의 부조리와 자신의 현실을 갑작스레 마주한다. 그 적나라한 모습에 그들은 무력하게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만한 나날’들을 보낸다.


 

“현기증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인식하지도 못했던 광경이 갑자기 빛을 비춘 듯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 『가만한 나날』 p.80

 

 

장강명 작가의 『산 자들』은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등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린다. 너무나도 차갑고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자니,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은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그 구분과 무관하게 소설 속 인물들은 각각의 이야기 안에서 누군가를 자르고, 한 편으로는 버티며, 동시에 치열하게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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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계급과 싸우기


 

『산 자들』의 「공장 밖에서」에서 회사는 위기를 맞는다. 그래서 법원과 경영진의 산수에 따라 해고라는 회생계획을 세웠다.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살인’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걸린 그 산수에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해고자 명단에 오른 ‘죽은 자’와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산 자’로 분류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죽은 자도 산 자도 조금씩 미쳐갔다. 죽은 자는 공장을 점거하면서 해고를 막으려 했고, 산 자는 너희 때문에 우리까지 죽어야 하냐며 불법 파업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투쟁했다. 해고를 결정한 것은 법원과 경영진이었지만, 소설은 죽음과 폭력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생존 싸움으로 끝이 난다.

 

「대외 활동의 신」의 ‘신’은 지방대라는 학벌이 ‘처음부터 반 컵밖에 없는 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외 활동을 죽어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외 활동이 ‘스펙’이라는 명목하에 대학생들의 열정을 착취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단, 더 많은 물을 가진 학생들을 제칠 수 있는 ‘상품성’을 키우는 것이 나았다. 「카메라 테스트」의 아나운서 준비생 지민도 다른 지원자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못한 지원자를 보고는 ‘한 명 제쳤네.’라고 담담하게 생각한다.


『가만한 나날』의 「감정 연습」 속 상미는 동기인 태영과 인턴 기간을 3개월 거친 후 한 사람만 채용한다는 조건으로 입사했다. 회사에서는 두 사람의 경쟁을 부추기며 구경했고, 상미는 대단한 회사도 아니고 싸울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태영의 사소한 습관까지도 미워하게 되었고, 그가 없어지기를 바라며 전쟁터에 나가는 것처럼 출근했다. 그렇게 ‘허우적대는 사람을 미는 손가락 하나’ 같은 작은 싸움 끝에, 상미는 정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맞은편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미안한 감정은 아닌, 무언가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낀다.

 

상미의 회사는 북한과 가까웠다. 그래서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쟁’, ‘폭격’, ‘피난’이라는 단어가 오갔지만, 왠지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흥분을 느낀다. 그리고 상미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큰 재난이 아니라 작은 재난들이다.’라는 글귀를 기억한다. 이제 ‘전쟁’이라는 것이 정말로 두렵지는 않은 상미는 어쩌면 태영의 빈자리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계급 쪼개기, 그리고 공감 없는 혐오


 

이렇게 같은 계급끼리 싸우다 보면 그 안에 또 다른 계급이 생긴다. 『가만한 나날』의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의 ‘나’는 아버지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요양 병원에, 물나들이에 아버지를 홀로 두고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맺은 루미에게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를 주저한다. ‘나’는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루미와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고 느낀다. 은연중에 또 다른 계급의 벽을 느낀 ‘나’는 루미에게도 훗날 버려질까 의심하고 걱정한다.

 

「현기증」의 상률과 원희는 원룸에서 동거한다. 그들은 생활패턴의 차이 때문에 투룸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원희는 그것이 동거의 연장이 아닌 결혼과 다름없음을 느낀다. 그들은 가구를 사야 하지만 돈이 없어 ‘거지 같은’ 중고 제품들을 둘러본다. 원희는 완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상률에게 말하지만, 상률은 ‘사람이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며 정신 차리라는 말을 내뱉는다.

 

원희는 대단한 걸 꿈꾼 것도 아닌데 그런 취급을 받는 자신을 돌아보며 비참한 감정을 느낀다. 사람들은 ‘동거’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그 동거에 남성은 없는 것 마냥, ‘여자애가 겁도 없이, 다들 남자랑 동거한다’며 비난과 소문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명백한 권력 차이일 것이다. 원희는 자신이 나약한 아이처럼 느껴지는 것은, 또 상률이 그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상률이 남자고,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드림팀」의 선화는 첫 상사로 은정을 만나고 마치 첫사랑처럼 사회생활의 모든 것을 배운다. 은정은 아이가 하나 있는 ‘워킹맘’이었다. 은정은 아이 때문에 회사 업무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를 의식하며 더욱 열심히 일했다. 은정은 선화가 마치 자기 같다며 그 의식과 금기들을 선화에게 강요한다. ‘한국 사회,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라는 말로 순응하며 사는 은정을 보고 선화는 그처럼 되기 싫어 퇴사한다. 하지만 ‘넌 잘될 수 없을 것’이란 은정의 말을 떨쳐낼 수 없다. 같은 노동자지만 여성과 남성이 처한 상황과 조건은 천지 차이다. 그것은 또 다른 계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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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의 「알바생 자르기」는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생인 혜미의 상사 은영의 시점에서 그려진다. 처음에 은영은 혜미를 불쌍하게 생각했고, ‘알바생 잘라!’라는 사장의 농담에도 속으로 ‘그럴 힘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은가봐’라며 사장에 대해 나쁘게 생각한다.

 

하지만 혜미와 몇 차례 마찰이 있고 연봉 인상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일거수일투족 혜미의 행동을 무시하고 비난한다. 그리고 혜미가 해고 통보서나 퇴직금, 4대 보험을 언급하자,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라더니’라며 분노한다. 은영은 합의금으로 얼마를 요구할지 예상해본다. 500만 원 미만으로 달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처리하고, 그 이상이면 사장님께 보고할 생각을 하고 혜미에게 묻는다. 혜미는 150만 원을 요구한다. 은영은 500만 원을 주식으로 잃은 셈 치고 줘 버릴 수 있지만, 혜미가 고민하고 고민해서 내놓았을 금액은 150만 원뿐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돈의 범위’를 기준으로 은영과 혜미의 계급은 명백하게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은영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된 것이었냐’고 물을 뿐이다. 은영은 혜미를 줄곧 ‘여자아이’라는 호칭으로만 부른다. 은영에게 혜미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관계 맺는 ‘우리’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머리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악한 아이'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몰라 영악한 아이에게 뒷통수를 맞는 약자’다.

 

 

 

‘먹고사니즘’의 붕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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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의 마지막 단편인 「새들은 나는 게 재밌을까」의 ‘나’는 급식 비리를 외면하는 교무 교감과 학생 교감을 날지 않는 새에 비유한다. 많은 새들이 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한정되어 있듯이, 사람의 잠재력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람도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나는…….’이라고 말을 줄이며, 자신이 날아다니는 새인지, 걸어 다니는 새인지 말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현대인 또한 ‘먹고사니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자본과 이기심 앞에 눈이 멀지 않을 자신이 없는 것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산 자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차가운 현실인지 ‘현기증이 날 만큼’ 선명하게 마주하게 하고, 『가만한 나날』은 그런 사회에서 일상을 보내는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묘사를 통해 나와 비슷한 이들의 보편적인 슬픔을 함께 느끼게 한다.


소설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삶을 본다.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져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견고히 쌓았던 ‘우리’의 경계를 넓혀 가기를, 그리고 결국에는 그 경계를 무너뜨리기를 바란다. 그 경계가 사라진다면, ‘먹고사니즘’이 아닌 ‘함께 먹고사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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