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듀랑고로 향하는 뒷좌석에서 나는 어땠을까? 가족 연극 "듀랑고" [공연]

글 입력 2020.01.1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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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시작


 

지난 일요일,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듀랑고’를 보고 왔다. 평소, 영화보다는 연극을 잡 접하지 못했고 코미디의 성격이 강한 연극만 봐왔던 터라 이렇게 우리네 삶을 그려낸 연극을 보는 기회는 늘 새롭게 느껴진다. 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구나, 대학로를 갈 때마다 가득 느끼게 된다. ‘듀랑고’는 재미교포 2세대로 자란 작가 ‘줄리아 조’의 초연작이다. 아직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어 더욱 의미가 있던 자리다. 재미교포로 살아온 작가의 삶이 바탕이 되어 탄생한 연극으로 한국계 이민자 부승과, 두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미교포의 삶, 나는 잘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미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뭐가 다를까? 연극을 보러 가기 전에는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던 것 같다. 특히 듀랑고라는 장소는 나에게 너무나 생소했으니. 그런데 연극 시작과 동시에 여기가 미국인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부승의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그제야 미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달까. 그들이 보여주는 대화와 관계의 모습은 그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접하고 있던 한 가족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승은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정리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두 아들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듀랑고를 향한 여정으로 연극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에게는 아내와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다. 10여 년 전에 하늘로 떠난 아내와 어머니의 부재는 남은 가족 구성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첫째 아이삭은 아버지와 대화를 다정하게 하지 않는다. 부승이 여행을 제안하자 동생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와 부승, 그리고 자신 셋이 떠난 여행의 기억을 떠올린다. 힘들고 독단적이기만 여행 속 아버지의 모습은 다시는 여행을 가고 싶지 않게 했다.

 

더욱이 부승은 평소 두 명의 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그는 생각했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그들을 밀어붙이는 억센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친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지만 기타를 좋아하는 첫째 아이삭, 응원이 아닌 기록을 재기 위해 경기를 관람하러 오는 아버지를 보는 둘째 지미. 하지만 지미는 아버지의 여행 제안에 형을 다독인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라며, 그래도 떠나보자고.

 

그들은 차 하나에 옹기종기 앉아 듀랑고로 떠나기 위한 시동을 건다. 그 속에서 각자의 숨겨둔 이야기를 펼친다. 가족으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그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었을까?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부승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삭과 부승은 계속 마찰을 일으키고 만다. 또한 그동안 아이삭은 하와이에서 의대 면접을 보지 않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지미는 성 정체성의 고민으로 수영을 그만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세 명에게는 각자의 비밀과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온전히 털어놓는 사이가 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듀랑고의 의미와 가족


 


"나는 항상 사막이 위험하면서도 아름답고 또한 매우 고립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내 연극에는 메시지가 있다기보다 일종의 탐험이다. 하지만 확실히 고독이라는 주제가 있다. 사막은 그 고독을 반영한다. 애리조나에서 자란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뉴욕 중앙일보, 2005.06.03.)


 

나는 작가 줄리아 조의 이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작품에서 듀랑고라는 목적지를 가지고 가족의 이야기를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고립’을 향한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단순히 우리네 일상의 가족 이야기를 펼치고 싶었다고 전한다. 한국에서 연극을 보고 있는 우리도 공감이 되는, 그냥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족의 이야기 말이다. ‘고립’은 인간을 본연 그대로를 보여준다. 각자의 사회적 역할과 생활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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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으로서의 이부승, 학생으로서의 아이삭, 수영 챔피언으로서의 지미. 듀랑고로 향하는 여정은 집에서 머물러 대화가 단절된 가족의 모습보다 더 민낯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느껴졌다. 사회적 역할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또한 가족의 아버지이자 아들이라는 구성원 역할로서만 그들을 보여주게 된다. 듀랑고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이부승네 가족만이 보여주는 관계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가족을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단순히 행복하고 돈독한 가족의 관계,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며 눈물을 흘리며 끝나는 연극이었다면 난 이 영화가 진정한 가족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네 일상은 그렇게 단순한 서사가 아니며, 언제나 해피엔딩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가족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듀랑고만의 가족 표현법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삭은 자신의 욕망을 충실히 표현하며 가족 속에서도 자신을 찾기를 원한다.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그다음 단계를 공유한다. 그러나 둘째 지미는 형처럼 선뜻 털어놓지 못한다. 먼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균형을 생각한다. 이 모습은 듀랑고로 여행을 제안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형을 달래는 시작의 모습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고민한다. 아버지 부승은 듀랑고로 향하고자 했던 과거의 자신을 욕망을 계속 지니고 있다.

 

그들은 결국 듀랑고에 가지 못한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된다. 이것은 연극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꽤 허무한 마무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듀랑고라는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의 시간들이 부승네 가족이 서로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의 가족을 생각하게 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은 과연 가족들과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재미 교포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다지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받아들인다. 현실적이고, 얽혀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닐까? 기존의 연극과 같은 확실한 기승전결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 작품들과는 다른 덤덤한, 민낯의 이야기를 통해서 바로 눈앞에 있는 우리 현실의 모습을 생각하게 했다고 느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나는 딸로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때로는 이해하지만 때로는 다투기도 한다. 언제나 행복하고 통쾌한 마무리가 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세계를 반영한 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였다.

 

가족이라는 주제와 익숙한 얼굴의 이대연 배우님, 그리고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신 여러 배우님들의 해석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아빠의 차 뒤편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던가. 결국 예술 작품을 통해 내 삶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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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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