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섹슈얼리티의 억압과 해방, "야한 영화의 정치학"

100년 '야한' 영화사를 통해 보는 우리 사회의 섹슈얼리티
글 입력 2020.01.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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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 ‘야하다’라는 단어는 '천하게 아리땁다.'라는 의미와 '깊숙하지 못하고 되바라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름답지만 그 깊이가 얕으며 천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와는 달리 '야함'이란 여러 이데올로기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복잡한 관념적 개념이다.

 

‘야함’의 문제는 결국엔 성, 즉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는 개별 인간의 성별뿐만 아니라 성적 정체성, 욕망, 관행등을 모두 일컫는다. 또한, 이것은 고정된 본질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처한 사회관계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구성되는 유동적인 것이다. 섹슈얼리티의 정의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정체성', '욕망', '관행', '사회',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아주 커다란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는 사회의 규범과 문화의 한 가운데에 단단히 얽혀있는 중심이기도 하고 동시에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을 엮어주는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은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나의 일상 생활부터 사회 전반까지 거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을 인식하기 위한 시도는 곧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검토하고 전복함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을 재현하는 매체인 영화를 통해 그 사회가 인식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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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야한 영화의 정치학>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발전한 영화라는 예술 매체를 통해 성의 현대사를 분석한다. 가장 일상적인 것도 정치적인 것이라는 젠더학에 따르면 어떤 영화이든 섹슈얼리티의 정치학이 함의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야한 영화', 즉 에로틱 하위 장르에선 섹슈얼리티가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구현된다.

 

본 도서에서는 이러한 영화들에서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재현되는 지에 초점을 맞추지만 동시에 어떤 것을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때로는 어떤 것을 드러났느냐보다 어떤 것이 은폐되었느냐가 더 중요한 진실을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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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표현이 전면적으로 터부시되었던 1910-1950년대의 영화들은 여러 상징을 통해 섹슈얼리티를 재현하거나, 하나의 도전으로서 그것을 드러내어 금기에 반기를 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십년 동안 영화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그려내는 섹슈얼리티를 재현하는 역할을 해왔다.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활용함으로써 유지된다. 여성은 '성녀 혹은 창녀'라는 폭력적 이분법 속에서 정체화된다. 어머니의 이미지로 그려지곤 하는 성녀와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서 창녀는 결국 실제 여성이 아니라 남성을 위한 기표로서 표현된 것이다. 결국 영화에서 표현되는 섹슈얼리티 정치학의 역사란 곧 여성의 성과 신체에 대한 타자화, 대상화, 식민화의 역사와 다름 없다.

 

이러한 억압적 섹슈얼리티는 1970-1980년대 유행한 장르인 호스티스 영화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들은 강간이나 성 노동이라는 문제적 접근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조명하고 상업화한다. 다시 말해 남성을 강간의 가해자 혹은 소비하는 주체로 설정하면서 남성의 성적 욕망은 능동적이고 극대화 되어 표현될 수 있는 명분을 갖는 반면 여성의 욕망과 내면은 생략되거나 왜곡된다. 그런 점에서 호스티스 영화들 속의 여성은 남성의 욕망이 발현 혹은 실현되는 육체로만 기능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 <야한 영화의 정치학> 86p


 

섹슈얼리티가 가진 능동적 힘은 거시적 담론을 삼켜 혁명적 역할로 기능하기도 한다. 5장에 소개되는 2000년대 이후의 영화들이 그러하다. 프랑스 68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껴안은 <몽상가들>, 종교적 금기에 대한 도전인 <박쥐>등 2000년대 이후부터는 섹스가 곧 혁명으로서 기능하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는 <피의 연대기>라는 생리에 대한 장편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며 영화를 통한 여성의 연대를 보여주며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은 연대기적인 구성으로 ‘야한 영화’에서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드러내주는 역할을 할 뿐, 앞으로의 영화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기적 흐름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는지 보여주며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도 암묵적으로 제시해주는 듯 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과거 수강했던 여성학 강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1990년대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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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안토니아라는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수평적인 모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섹슈얼리티는 아주 넘치게 재현된다. 하지만 안토니스 라인에서 구현되는 성관계 장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 영화들처럼 포르노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는 <안토니아스 라인>의 사랑과 섹슈얼리티가 ‘개인의 건강한 욕망’에 초점을 맞추어 그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인물들의 섹슈얼리티를 능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여성뿐만 아니라 어떤 누구도 대상화되거나 타자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인간 사회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폭력과 억압의 역사를 뒤로하고 섹슈얼리티로 하여금 개별 인간의 주체적 실존과 평등한 관계의 근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본 도서를 읽으면, 최근 10년 동안의 변화가 이전 90년에 비해 속도도 빠르고 성격도 굉장히 급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작년은 한국 영화 100주년이자, 여성 감독과 여성 중심 서사의 영화들이 전례없는 주목을 받은 해이다. 어쩌면 우리는 변곡점의 시기를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을 재현하는 매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인식에 영향을 주고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매체이기도 하다. 현재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와 영화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며 새로운 '야한 영화의 정치학'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야한 영화의 정치학
영화사에서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가?


지은이
김효정

출판사 : 카모마일북스

분야
페미니즘
영화평론

규격
152mm * 225mm

쪽 수 : 248쪽

발행일
2019년 12월 18일

정가 : 22,000원

ISBN
978-89-98204-70-9 (9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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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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