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이제 야한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 도서 "야한 영화의 정치학"

글 입력 2020.01.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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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영화를 안 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작품성만 있으면 선정성 따위 개의치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요즘 들어 무의식적으로 베드신이 들어 있는 영화의 관람이 꺼려지게 되었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관련된 일을 알고 난 뒤부터였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jpg

 

 

프랑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파란 머리의 엠마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에 눈을 뜬 아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나는 이 영화를 참 좋아했다. 사랑을 모르는 한 소녀가 파란색에 물드는 것처럼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3시간이 넘는 긴 러닝 타임을 통해 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한 것만 같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10분의 롱 테이크로 이루어진 성애 장면이다. 동성 간의 베드신이라는 점과 더불어 파격적인 수위 때문이었다. 해당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길게, 이렇게 집요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영화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다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겠는가’ 라는 간단한 결론을 내리고 그 의문을 빠르게 잊어버렸다.

 

영화를 본 이후 한동안 베드신을 보며 느꼈던 의문은 완전히 지워버린 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좋아한다고 밝히며 적극적으로 추천해왔다. 그 의문이 다시 떠오른 건 문화예술계 미투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을 때였다.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 추문을 시작으로 온갖 분야에서 일어난 끔찍한 성범죄가 폭로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를 놀라게 한 건 거의 모든 여배우에게 범죄를 저질렀던 하비 와인스타인의 기사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감독인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성폭행 기사에서 공통으로 언급된 레아 세이두의 발언이었다.

 

레아 세이두는 한 기사에선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강제 키스를 당할 뻔 했다고 말했고, 한 기사에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베드신이 감독의 상식을 넘는 요구가 난무했던 비참한 체험이라고 말했다. 내가 예술이라는 막으로 눈과 귀를 막는 동안 한 배우는 촬영장 밖에서도, 촬영장 안에서도 성적으로 고통 받아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나는 이제 전처럼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을 넘어 여성의 알몸이 드러나는 베드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누군가는 내게 개인의 잘못으로 영화 자체를 판단하는 건 너무 편협한 시각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도 오랜 시간 동안 사람과 예술을 분리해왔었다. 그러나 기사를 접한 뒤 떠올린 영화의 베드신엔 남성주의적인 시선만이 가득했다. 그 시선을 향한 불쾌감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성폭행 장면이 진짜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 뒤 더욱 커졌다.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게 예술이라면 그런 예술 따위 평생 알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지난 일 년간 내가 본 영화에서 적나라한 섹스가 두드러지는 작품은 없었다. 그러다 책 <야한 영화의 정치학>에 관한 정보를 접했을 때, 나의 거부감을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서문이 너무 길었다. 책을 선택한 이유를 알려주려 했을 뿐인데 ‘영화’ ‘여성’ ‘성’을 주제로 삼으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글을 줄일 수 없었다. 그만큼 ‘영화에서 여성의 성은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나의 고민이 복잡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는 그 복잡한 고민을 거쳐 이 책에 당도했다.

 

 

야한 영화의 정치학 입체표지.jpg

 

 

오랜 시간 동안 여자는 성에서 격리되어왔다.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이분법에 의해서 성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여성은 천하다며 멸시받았다. 그와 반면에 사회는 남성의 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지점은 남성의 성에서 여성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된 영화들에는 그런 모순적인 사회의 시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나를 야한 영화에서 멀어지게 한 건 그 ‘시선’이었다. 이전에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영화 속 여성들이 성은 남성이 지닌 욕망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온갖 남성적 판타지를 부어 넣어 완성된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놀랍고 경악스러웠던 건 수많은 영화가 ‘강간’을 성적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이었다.

 

어떤 장면이 나와도 꿋꿋이 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나지만, 강간 장면만은 예외다. 그래서 ‘강간’을 아예 메인 소재로 내세웠던 <엘르>를 보는 내내 영화관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강간당하는 이자벨 위페르를 보여준다. 충격적인 첫 장면 이후에도 영화는 끝날 때까지 ‘강간’이라는 테마를 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그 영화를 끝까지 보고 평가절하하지 않는 이유는 강간을 성이 아닌 폭력으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영자의 전성시대.jpg

 

 

그러나 <영자의 전성시대>로 대표되는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강간은 곧 여성의 성적 타락을 의미했고 여성의 수동적인 면을 강조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사실 호스티스 영화에 대한 글을 너무 많이 써왔지만 매번 줄거리를 쓸 때마다 낯이 뜨거워진다. 줄거리들이 매우 비슷한 것도 그렇거니와 여자들이 죽는 방법(대부분 자살)이나 이유(혹은 사고)들이 뻔뻔할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P.91

 

 

당시 스크린 속 시골 여자들은 하나같이 도시에 올라가 성적 착취를 당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결말을 맞았다. 그녀들의 삶을 결정하는 건 언제나 남성이었다. 나는 이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넘기기엔 여배우들의 현실과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미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그렇기에 타인에 의해 모든 것을 박탈당한 여인의 연대기를 ‘성인영화’로 소비한 세상에 치가 떨렸다.

 

강간을 성으로 소비하는 건 70년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은 5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국가를 넘나들며 여러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데, 줄거리에 여성이 강간당했다는 부분이 들어 있는 영화가 대다수였다. 거기에 자신을 범한 가해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한 영화에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책에서 소개된 모든 영화가 여성의 성을 수동적으로 묘사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수동적이었던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권태로운 삶을 살아가던 여성들은 금지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성적 해방을 이룬다.

 

게다가 어떤 영화에서 성은 단순히 개인적 욕망뿐만 아니라 사회 혁명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가부장제, 독재, 공산주의 등 사회는 언제나 개인을 억압해왔다. 저항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은 억압에 맞서 사랑을 나누었다. 단순히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닌, 전체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가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 말이다.

 

많은 작품이 여성 인물을 ‘성녀 혹은 창녀’라는 이분법에 가둬 묘사했었다. 그 이분법 안에서는 성녀든, 창녀든 성을 앞에 두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누구나 지닐 수 있다.

 

책이 다루는 영화 속 성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책을 읽다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목적지는 영화 <피의 연대기>였다.

 

 

피의 연대기.jpg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생리에 대해 다룬 영화다.

 

 

즉 <피의 연대기>가 공유하는 여성들의 인터뷰들과 각 나라, 혹은 기관에서 진행되는 생리 관련 법안 및 정책은 ‘생리’라는 행위가 더 이상 화장실에 종속되어야 하는 은밀한 행위가 아닌, 사회적 자장 안에서 지지되고 관련한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아젠다임을 제시한다.

 

영화가 이루어내는 가장 큰 성취는 여성들이 생리에 관하여 얼마나 많은 선택들로부터 배제되어 왔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 P.233-234

 

 

인용한 부분에서 ‘생리’라는 단어를 ‘성’으로 바꿔도 말이 된다. 사회는 성을 은밀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성은 은밀한 것을 넘어 비도덕적인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나 역시도 여성들에게 성에 관한 선택지를 배제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아예 야한 영화를 안 보는 것을 선택했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를 향한 작가의 사랑이 느껴졌다. 5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책을 통해 소개되는 많은 양의 영화들이 이를 증명했다. 많은 영화를 다룬 만큼 한 영화에 대한 글이 짧아 아쉬웠지만, 그만큼 성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나도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에 담긴 사람과 삶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여러 명의 삶이 모여 만들어지는 세상을 좋아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세상에 성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한때 나는 영화 속 성을 비판 없이 수용했고, 그 이후엔 부정했다. 이제 난 비판하되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쾌락의 도구로 소비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을 것이다. 한동안 내 감상 목록에 제외되었던 야한 영화를 다시 꺼내올 때가 되었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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