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너'와 '나'의 휘장은 찢어질 수 있을까, 연극 "마터"

글 입력 2020.01.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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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_백수광부_마터_홍보사진 (1).jpg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오늘날 들끓는 혐오 이슈에서만 배제의 원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 용어에서 쉽게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고 비참한 기분을 들게 할 수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괴롭히고 싶다면, 아래와 같은 표현을 섞어 이야기하면 된다. '너만', '다들 그러는데', '대부분 그러는데', '너는 왜?'. 이 단어들은 젠더와 같은 성별에 국한되어있는 표현이 아니다.


이 단어들은 장애, 능력, 성취까지 너무 쉽게 적용될 수 있다. 다수의 동의를 끌어들이면, 끌어온 사람은 거대해진다. 거대해진 사람이 내두르는 말의 힘은 너무 쉽게 사람을 상처입힌다. 이 표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용된 그 즉시 두 대상을 분리하고 한 대상을 우월한 위치에 둔다는 것이다. 우주의 확장으로 만들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그 시간에 따라 머리카락이 자라고 살이 여무는 우리는 평등한 존재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대체 너와 나를 고통스럽게 구분했는가?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혐오 이슈는 정치적이고, 정치적이기 전에 심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다가서기 어렵다. 20대 청년이라면 그렇듯, 나도 이 이슈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골머리를 앓아왔다. 혐오를 다루는 방식은 그 탄생만큼이나 다양했다.


사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혐오 자체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자기방어를 위해 사용하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혐오는 근본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 권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 마음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하나의 사상으로 응집되어 점점 하나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혐오는 너무 쉽게 사람들을 집단으로 만들고,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너무 비열하게 많은 공격을 쏟아내 왔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혐오를 단순히 개인 심리적 문제로 남겨둬서는 안된다.


혐오 그 자체이건, 혐오가 도구화되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그것이 점점 이성적인 화합과 멀어지게하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심리적 요인을 하나하나 살필 순 없어도, 적극적으로 하나의 사회적 증상으로써의 혐오를 이야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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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연극 <마터>는 시의적절한 연극이다. <마터>는 근본적으로 혐오 문제를 다루는 연극이다. 연극의 주인공인 벤야민은 수영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영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엄마와 선생님들은 벤야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벤야민의 지도교사이자 과학 선생님인 로트는 벤야민이 심한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이끌어주려 하지만, 하루 종일 성경을 읽는 벤야민의 신념과 반항은 더욱 거세진다. 로트는 벤야민을 상대하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하지만, 벤야민의 반항을 제어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로트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연극 <마터>는 2018년 초연으로 제 6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을 수상한 수상하여 그 작품성과 완성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마터>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주인공인 벤야민이 학교 수영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학교와 가정에서의 갈등이 시작되고 극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된다.


독일연극을 대표하는 젊은 극작가 마이우스 폰 마이엔브루크(Marius Von Mayenburg)가 쓴 희곡인 순교자라는 뜻의 ‘MARTYR 마터’는 자신이 믿는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사건에 혐오와 적대감을 드러내는 벤야민과 그를 지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한 선생님 로트가 역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게 되는 아이러닉한 이야기다.

 

사실 이 짧은 시놉시스로 어떤 혐오 문제를 이야기할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벤야민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가시관을 쓰고있는 포스터를 고려해볼 때, 다수의 신념에 불복하는 벤야민이 순교자로 표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수는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시대에 서로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인간에게 동정을 느껴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죽은 '동정심의 신'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죽었다. 그가 죽었을 때, 신과 인간의 길이 열리기라도 한 듯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 과연 벤야민의 고군분투는 불통화 몰이해의 소통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너'와 '나'의 휘장이 찢어질 수 있을까?

 

 


 

 

2020_백수광부_마터_포스터(최종).jpg

 

 

마터

-MARTYR-


 

일 시 

2020년 1월 29일(수) ~ 2월 16일(일)

 

시간

평일 8시

주말 4시

월 쉼 

 

장 소 

선돌극장

 

주최/기획

극단 백수광부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티켓가격 

전석30,000원

 

공연시간 

100분

 

관람연령 

만16세 이상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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