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 가면을 쓴다 "아이언 마스크"

당신의 가면은 무엇인가요
글 입력 2020.01.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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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하는 떠오르는 공연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오랜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다. 줄리엣과 줄리엣이든 R&J든 고전 그대로를 연출하든 가면을 정말 쓰든 쓰지 않든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하는 극에는 가면무도회가 나올 수밖에 없다. 로맨스의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게 느려지고 오직 단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숨 막히는 시간.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사랑에 빠진 둘은 서로가 오랜 시간 사이가 나쁘던 가문의 자녀인 줄도 모른 채 파멸이 기다리는 끝으로 달려간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은 천사의 도움으로 노래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크리스틴이 천사라고 부르는 자는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끔찍한 얼굴을 가리기 위함이다. 오페라의 유령 넘버 중 masquerade (가면무도회)라는 제목이 존재할 만큼 이 공연에서도 가면은 큰 존재감을 보인다. 넘버에서 앙상블과 주연 캐릭터는 이런 말을 한다. 가면무도회에서 얼굴을 숨기면 누구도 당신을 찾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당신 뒤에 또 다른 가면이 있으며, 숨어도 계속 쫓아올 것이다. 최고 중에서도 최고가 모인 모든 이들이 그들을 보는 당신을 보고 있다.

이렇듯 가면은 주로 무언가를 숨기거나 변모하는 것을 상징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사이가 나쁜 두 가문의 자녀임을 숨기는 장치로 사용된다. 반대로 겉모습을 숨겨 진실한 사랑을 드러내는 용도로도 쓰인다.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팬텀의 추악한 모습을 숨겨 천사로 변모시키는 장치로 사용된다. 마지막 장면, 팬텀이 얼굴을 드러냈음에도 거리낌 없이 입 맞추는 크리스틴은 가면 속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든 진실한 사랑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하다. 팬텀을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고 보면 스위니 토드에도 짧게 나온다. 한 여인을 윤간하는 장면을 은유적으로 보여줄 때, 귀족은 가면을 쓰고 있다. 꼴에 윤간이 부끄럽다는 사실은 아는 모양이다. 여기서도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욕망과 쾌락만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가면이라는 게 그렇다. 얼굴을 가리면 익명만이 남아 무슨 짓을 해도 모른다.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 유일하게 그런 익명만 모일 수 있던 자리가 바로 가면무도회다.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는 이름에 ‘가면’이 들어가는 만큼 극 내내 가면이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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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쌍둥이 왕자가 태어나면 그중 한 명에게 철 가면을 씌워 지하에 가두는 법도가 있다.
 
폭군 루이가 프랑스를 지배하던 시대다. 백성은 굶주린다. 그나마 받은 식품도 이미 다 썩어빠진 것 천지이다. 백성은 혁명을 부르짖는다. 한편 루이왕이 총사 중 한 명인 라울을 죽이고 그의 연인 크리스틴을 빼앗으려는 계략을 꾸미고, 실행한다. 라울의 아버지이자 이전 작품 삼총사의 주인공 중 한 명이던 아토스는 큰 분노를 표한다. 삼총사는 다시 뭉쳐 반역을 꾀한다.
 
계획은 간단하다. 지하에 갇혀 철 가면을 쓰고 고통받는 쌍둥이 왕자를 왕과 바꿔치기하자는 내용이다. 달타냥이 개인적인 이유로 거절을 하나 결국 계획대로 진행된다. 삼총사는 쌍둥이 왕자 필립을 구출하고, 그에게 왕이 배워야 할 덕목을 가르친다. 가면무도회 날, 삼총사는 필립과 루이를 바꿔치기하고, 왕국의 커다란 비밀이 드러난다. 결국 폭군은 지하에 갇히고 필립은 어진 왕이 된다.

극 속 가면은 폭군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성군을 숨기는 장치이자, 역으로 성군과 폭군을 바꿔치기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 외에도 2막의 후반, 어떤 인물에게 그 긴 시간 가면을 쓰고 있던 건 자네였군, 하는 말을 통해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위니 토드를 통해 가면을 쓴 사람이 모두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나 이 극에서는 연민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오랫동안 비밀을 지키는 건 힘든 일이긴 할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과 쓰임새가 비슷한지도 모른다. 가면은 중요한 것을 숨기는 수단이자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거름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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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지하에 갇혀있던 필립은 폭군의 쌍둥이로 그와 다르게 어진 왕이 된다. 백성의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위하겠다고 말한다. 하나 더 떠오르는 공연이 있다. 연극 ‘벙커’ 트릴로지 중 ‘맥베스’다.

전쟁 최전선, 군인을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드레이크의 밑에 평민 출신 중위 마크가 있다. 많은 병사가 정의롭고 다정한 마크가 장군이었다면 이런 무의미한 희생이 없을 거라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정작 마크가 임시 장군이 되자, 드레이크와 큰 차이가 없어진다. 임시 장군, 언제고 장군 자리에서 내려갈 수 있다는 걸 아는 마크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해 전쟁을 강행한다. 마크가 장군 자리에 있고 싶은 욕망의 첫 단추는 큰 부나 대단한 명예가 아니었다. 군대에서 쉽게 마실 수 없던 향긋한 홍차를 마실 수 있는 특권이었다.

1막 내내 지하 깊숙한 곳에 무거운 철 가면을 쓰고 고통받던 사람이 겨우 빠져나온다. 그가 처음으로 누리는 어머니의 따스함이나 달콤하고 따뜻한 음식, 화려한 파티와 향락이 빈민의 고통보다 하찮게 느껴질 수 있을까.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의 애정과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다고 해도 지속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범인이 있다면 인재도 있는 법이니 필립의 어진 품성을 마냥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필립이 정의롭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계획인데 그들은 무엇을 믿고 필립을 믿었던 걸지 소소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굶주리고 배고파했던 백성의 입장에선 왕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도 없으니 이미 들끓던 혁명의 분위기가 터져 결국 필립은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와서 따뜻한 음식, 깨끗한 사과를 준다고 상황이 바뀔 만큼 얕은 상처가 아닐 테니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지휘하는 정의가 정말 정의일까. 21세기의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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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의문이 드는 내용을 잠시 미뤄두면 즐거운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앙상블의 호흡은 환상적이라 귀가 호강한다. 노래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또 다른 부분에서 감탄이 나온다. 1막부터 2막까지 꾸준히 보여주는 칼싸움 장면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모든 배우가 합이 잘 맞아 불안한 감정 없이 오직 짜릿함만 남는다.
 
포르토스의 개인사는 괜히 마음을 찡하게 하는 한편, 그에게 애정을 생기게 한다. 캐릭터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몰입력은 이후 관객이 공연을 볼 때 좀 더 감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와 별개로, 다소 투박한 포르토스는 하는 말마다 웃음을 터뜨린다.

무대는 대극장에서 기대하는 화려하고 섬세한 건축물과 거리가 있지만, 대신 조명으로 더욱 현실감 넘치게 표현한다. 성당의 자잘한 소품이 없어도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여주는 식이다. 이 뿐만 아니라 공연을 볼 때 기대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 의상도 즐거움을 안겨준다. 달타냥이 움직일 때마다 흩날리는 자켓은 관객을 설레게 만들며, 왕의 화려한 복장도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가면을 보고 있으면 그 안이 궁금해지는 법이다. 이 공연의 1막은 그야말로 가면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있지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겉면만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2막은 가면을 천천히 벗는다. 필립이 나오고, 극 중 중요하게 표현되는 반전도 드디어 나타난다. 가면 안을 궁금해 한 사람은 이 공연의 끝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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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마스크
- THE MAN IN THE IRON MASK -


일자 : 2019.11.23 ~ 2020.01.26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3시, 7시

일 2시, 6시

윌요일 공연 없음

목요일 4시, 8시


장소 : 광림아트센터 BBCH홀

티켓가격

VIP석 140,000원

R석 120,000원

S석 80,000원

A석 60,000원

 
주최
㈜플레이앤씨

주관
㈜글로벌컨텐츠

제작
㈜메이커스프로덕션

관람연령
만 7세 이상

공연시간
150분
(인터미션 : 15분)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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