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족, 비밀, 고독. 그래도 결국 가족, 연극 듀랑고 [공연]

글 입력 2020.01.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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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듀랑고 보도자료에서 나의 마음에 꽂힌 문장이자, 어쩌면 듀랑고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문장이 있었다.



연극 <듀랑고>에서 가족들이 여행을 통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일상의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과 장소가 아니라 익숙하게 보이지만 결코 서로에게 친밀하지 않은 가족 각각으로부터 발견하게 되는 ‘낯섦’, 즉 ‘기괴함’의 감정이다. 아버지 부승과 두 아들의 여행은 결국, 다름의 이해와 포용으로 도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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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은 심심찮게 아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가족 여행을 떠난다. 각자의 특징이 있다. 활동적인 아버지는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신다. 찍는 것도 좋아하신다. 감탄사로 숙소나 날씨 상태를 대변하신다. 어머니는 이것저것을 챙기신다. 차 안에서든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든 가족들의 상태를 살피신다. 내 혈육은 왁자지껄 목소리를 높인다. 여행 가서 그와 한 번도 기 싸움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활동적인 성격이 느긋한 내 성격과는 달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막내인 나는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되도록 조용히, 평화롭게. 한 개의 의견이라도 덜어낼 수 있게 말을 줄인다.


날이 서거나 타박해도 이러쿵저러쿵 편을 먹고, 때로는 같이 누군가를(운전을 이상하게 하는 누군가, 음식점에서의 어떤 일 등을) 욕하면서 어찌어찌 여행을 끝마쳤던 내 가족의 모습과 연극 속 가족은, 다른 듯 같았다. 리뷰를 쓰는 나는 이제야 느낀다. ‘소소하고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는 연출의 뜻을. 그리고 ‘이렇게 사는 거지, 그래. 결국, 뭉치는 건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도.


혹여나 이런 생각을 연극이 ‘강요’할까 봐, 혹은 이 생각을 ‘마지못해’ 리뷰에 적어나가게 될까 봐 나는 두려웠다.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참아내야 하는 순간들이 여태껏 많았기 때문에, ‘가족이 대체 뭔데?’ 하는 반항심에 날 세워져 있어서 ‘가족’이라는 단어를 아름답게 포장하기 싫었다. 프리뷰든, 연극의 흐름이든, 이 리뷰든. 그러나 걱정과 달리 연극은 그를 강요하지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연극은 정말 잔잔했다. 그리고 사실적이었다. 그들에게 나를 투영할 수 있었고, 모두가 이해되는 인물들이었다. 연출이 정말 좋았고, 신선했다. 대본이 날 것이라서, 흔히 말하는 억지 신파가 아니어서 좋았다.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내가 몰랐다’, ‘죄송해요, 흑흑’ 하지 않아서 좋았다. 불평과 그들의 비밀, 고독을 싣고 간 채, 돌아올 때도 여전히, 완벽히 풀리지 않는 것으로 끝이 나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자연스럽게 ‘여전히, 산다는 것, 가족, 함께함’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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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결코 서로에게 친밀하지 않은, 가족 각각에게서 느끼는 기괴한 낯섦이라. 다 알고 있다고, 내 아들은 그럴 거라고 단언하듯 말하는 이부승과는 달리 지미와 아이삭은 부승에게 숨긴 비밀이 있었다. 면접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아이삭, 수영을 때려치웠다는 지미.


어렸을 적 나는 부모님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해서.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낀다. 부모님도 나에 대해 100% 알고 계시진 않는다는 것, 나도 부모님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놓고 보면 (익숙하지만 다 알지 못하는) 남인데, ‘가족’이라는 타이틀에 매일 묶인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여태 나는, 가족은 서로를 모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해고당한 부승의 감정을 모르는 아이삭과 지미처럼. 아들들을 속속히 알고 있다 단호하게 소리치며 아이삭을 ‘위하는 일’이 단순히 면접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고, 지미를 ‘위하는 일’이 수영대회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는 부승처럼 말이다.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낯설다. 그래서 고독하다.


듀랑고로 가지 못한 것이, 결국에는 닿지 못한다는 것이, 부승의 가족이 서로를 향해 온전히 닿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삭은 면접 자리에 가 보겠다고 하고, 부승은 아들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기타를 좋아하는 아이삭을 생각했다. 노트에 만화 그리는 취미를 계속하는 지미는 여전히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다.


얄밉고 미운 존재, 속상하게 만드는 존재이면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것. 그게 가족이자, 평범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족이란 존재를 거창한 것으로 생각해 도리어 실망감만 쌓는 것이 아닌(그 전에 내 생각은 그랬다.), 잔잔하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튼튼한 나무처럼 버팀목이 되진 못할지언정 그늘은 되어주는 존재인 것 같다.


튼튼하든 약하든 모양이 못났던 잘났던, 작든 크든 모든 것에는 그늘이 있으니까, 그림자가 있으니까. 각자는 어두운 그림자는 가지고 있지만, 때론 그게 가족에겐 그늘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연극 덕분이다. 정말 뜻깊은, 좋은 극을 봤다.

 





듀랑고
- Durango -


일자 : 2020.01.09 ~ 2020.01.19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한양레퍼토리 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제작

TEAM 돌

 

후원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서휘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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