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련하고 묵묵하게 그리는 배우, 그러나 알 수 없는 건 :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

글 입력 2020.01.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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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이언 마스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련하고 묵묵하게, 이건명


 

볼 때마다 “기복 없이 참 잘한다”는 느낌을 주는 배우들이 있다. 배우에 대한 신뢰는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할 것 없이 서사 콘텐츠에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캐스팅이 더블, 트리플, 쿼드로 꾸려지는 게 예삿일인 공연계에선 배우가 그날의 공연을 볼지 말지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기준을 하나 밝히자면, 어떤 역할이든, 어느 배경에 떨어뜨려 놓든, 캐릭터와 작품의 스타일을 잘 살리는 배우들을 볼 때 그렇게 느낀다. <아이언 마스크>의 배우 이건명도 내겐 그런 배우 중 하나다.


2019년~2020년 라이선스 재연으로 올라온 <아이언 마스크>엔 유독 뮤지컬 <삼총사>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많다. 이건명도 예외는 아니다. <삼총사> 2013, 2014 시즌에 아토스로 분했던 이건명을 비롯해 초연부터 아토스로 다수 참여해온 신성우나, 매 시즌 포르토스로 분해 ‘포르토스 장인’이라 칭해도 좋은 김법래, 2010년 아토스 역의 서범석, 2018년 아토스 역의 김준현, 그리고 콘스탄스와 밀라디로 오랜 기간 참여해온 김아선까지. 다수의 배우들이 그때와 같은 역할, 혹은 아예 달라진 역할을 맡아 17세기 파리에 위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캐스팅은 <삼총사>의 시퀄 분위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작사∙작곡 역시 이런 분위기에 한몫한다. <삼총사>의 음악을 맡았던 마이클 데이비드와 브라이언 아담스가 의기투합, <삼총사>의 핵심 멜로디를 변주하여 <아이언 마스크>에 깔아 두었다.


서사적으로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삼총사>와 <아이언 마스크>는 정의라는 이름의 ‘대의’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것이라는 ‘개인적인 의지’가 네 총사를 움직인다는 점에서 유사한데, 이 네 사람의 결합과 와해가 두 작품 간의 차이를 만든다. <삼총사>가 넷이서 하나가 되는 서사라면 <아이언 마스크>는 달타냥과 삼총사가 뜻을 달리한다는 것을 갈등구조로 가져간다. 그래서 <삼총사>가 다루는 것이 악으로부터 누군가를 구하는 이야기라면, <아이언 마스크>는 악을 비호하는 자와 악을 척결하려는 자 사이에서 갈등 서사를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건, 드러난 루이와 숨겨진 필립처럼 각자의 이면엔 은폐된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아토스는 모호하다). 포르토스는 큰 병을 숨기고 있고, 아라미스는 비밀 결사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달타냥의 비밀은 작품의 ‘키’가 되어, 기존 <삼총사> 시리즈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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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라디오스타> 방송 화면 갈무리.

 


<아이언 마스크>를 통해, 아토스에서 달타냥으로 포지션 변화를 한 배우 이건명은 달타냥으로서 노련하게 작품을 이끌고 나간다. 사실 달타냥은 비밀이 폭로되기 전까진 이해받기 힘든 인물이다. 앤 태후와의 급작스러운 로맨스 장면이나, 끝까지 폭군 루이를 보필하려는 곡절은 관객으로선 물음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달타냥을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까닭은 배우 이건명이 진지함과 묵직함을 실어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어떤 뜻을 가지고 움직이는 달타냥’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핵은 숨겨놓았지만, 그것이 만드는 궤적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달받은 정보 너머의 것을 짐작하게 하는 연기는 달타냥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신뢰감 어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썩은 과일을 받은 백성들을 복잡하게 응시하는 표정을 보면, 그가 비뚤어진 충성심이나 왜곡된 애국심으로 왕을 비호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삼총사>의 가볍고 쾌활한 달타냥과는 다른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차차 특유의 단단한 저음과 "명을 다하지 않는" 묵직한 성대가 신뢰를 만들며, 주인공 달타냥의 사연을 기다릴 수 있게 해준다.


덕분에 작품 특유의 스타일 역시 잘 살아난다. 무거운 상황을 툭툭 치고 나오는 코미디와 과장된 인물의 면면은 이건명, 김법래, 윤영석 등에 의해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오간다. 소소하게 웃기다가도 금세 뭉클하게 하는 완급조절. 이는 성긴 서사로 인해, 자칫 촌극으로 느껴질 수 있는 <아이언 마스크>의 이야기를 잘 다져 놓는다.


 


앙상블의 힘, 백성을 집약하는 두 인물



한 가지 더. 앙상블 배우들의 호연도 눈부시다. 루이의 폭정 아래 파리 백성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은 앙상블의 퍼포먼스와 노래로 표현되는데 이는 상당히 압도적이다. 지도자는 무관심하고 생계는 위협당하고 있는 ‘고난’에서, “오직 혁명의 불꽃을 태우리라”는 ‘의지’로 넘어가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백성들의 울분과 다른 세상을 이룩하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 정의롭지 않은 세상, 정의를 이룩해야 하는 세상을 세팅하는 것이다. 루이를 왕위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대의' 명분은 사실상 앙상블들이 주가 되는 이 두 번째 씬에서부터 공고해지는 셈이다.


그리고 수많은 백성의 고난은 라울크리스틴이라는 한 쌍의 연인에게로 수렴되어 전개된다(영화에 따져야 할 일이긴 한데, 왜 이름을 라울과 크리스틴으로 지었을까? 철 '가면'을 쓴 남자가 등장하고, 그의 이름이 '필립'이라서?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의 필립은 라울의 형 아니었던가). 이 작품은 달타냥-앤 태후, 포르토스-세실 등을 통해 사랑을 긍정하고, 사랑이 개인을 움직이는 동인이라는 걸 몇 차례 보여주는데, 그중 라울과 크리스틴은 절대 권력으로 인해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 때문에,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이 작품이 가장 '불쌍한' 자리에 위치시키는 백성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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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갈라놓는 건, 작품의 '악' 루이. 루이는 이 작품이 긍정하는 정의와 사랑이 결여된 인물이다. 그는 크리스틴을 욕망하여 아무 까닭 없이 라울을 최전선으로 보내고, 크리스틴에겐 의료 지원이 필요한 가족들과 라울의 안위를 빌미로 제 곁에 있으라고 명령한다. 크리스틴-라울이라는 한 쌍의 연인을 제 욕망 때문에 갈라놓은 루이는 절대 권력을 이용해 두 명의 백성을 사지로 내몬 폭군이자, 사랑의 완성에 훼방을 놓은 악의 현현인 것이다.“진정한 사랑을 찾길 바란다”는 달타냥의 조언이 굳이 루이에게 필요했던 이유다.


결국 라울은 죽고 루이 곁에 머무는 크리스틴은 죄책감에 휩싸이다가 목을 매달아 죽는다. 두 사람의 비극은 루이가 필립으로 교체되어야 할 당위 중 하나가 되면서, 라울의 아버지인 아토스를 비롯해 삼총사들을 합심하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곤궁에 빠진 백성, 분노한 백성이 몇 차례 나오지 않아도 왕권 교체의 명분이 서는 건, 라울과 크리스틴이라는 필부필부가 폭정으로 인해 비극적인 이별과 죽음을 맞았기 때문인 거다.

 

그래서 결론은 권선징악일 수밖에 없다. 루이는 탑의 가장 높은 곳에 유배되고 필립이 왕위에 올라 새 세상을 다짐한다. “혁명”을 말하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삼총사는 친구와 아들을 잃고, 앤 태후도 아들을 잃고, 필립은 아버지를 잃었다. 하지만 정의와 사랑이 결여된 폭군이 물러나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왕이 추대되었으니, 일단은 해피엔딩.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백성의 자취가 궁금하다


 

그런데 공연장을 나오면서 입맛을 쓰게 만드는 게 하나 있다. 백성들을 대표하는 두 캐릭터가 서사에서 다뤄진 방식 말이다. 아, 오해는 마시라. 모든 캐릭터에게 큰 역할과 엄청난 당위가 주어져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니. 다만 이 두 사람이 '정의 없음'의 희생자이면서, 사랑이란 가치를 지키고자 애썼단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작품이 부정하는 루이의 인물됨과 작품이 긍정하는 가치 사이에서 갈등을 겪은 인물들이란 소리. 어쩌면 포르토스나 아라미스 캐릭터보다 더 큰 내적 갈등을 가졌을 수 있다.

 

먼저 라울의 경우, 로맨스의 현신으로 서사 안에서 기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사랑을 좇으며, 유서가 된 편지에도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만이 담겨 있다. 라울의 죽음은 아토스의 분노를 당겨 혁명을 추동하고, 동시에 달타냥의 마지막 선택에 담긴 부성을 아토스와 반사시켜 보여준다. 동시에 루이에게 짓밟힌 백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헌신적인 사랑을 드높이는 역할까지 한다. 한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라울은 비교적 단순하다.


문제는 크리스틴이다. 라울과 똑같은 선상에서 취급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인물은 라울보다 더한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 라울이 사랑과 헌신의 극한이고, 루이가 욕망과 이기심의 극한이라고 했을 때, 크리스틴은 아픈 가족, 라울의 안위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타협하여 전자에서 후자로 자리를 옮긴 캐릭터다. 이 작품 안에서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는 거의 유일한 캐릭터가 크리스틴이기에 그의 선택을 마냥 '이기심' 혹은 '변절'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달타냥도 오랫동안 루이를 택했지만, 이것 역시 사랑에 기반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크리스틴의 활용은 원작 영화보다 축소, 그의 죽음은 원작 그대로를 따랐는데, 의구심은 그 죽음의 타이밍과 방식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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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의 죽음이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건, 뮤지컬의 가장 강렬한 장면 다음이다. <아이언 마스크>를 본 관객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 있을 루이/필립의 교차 장면이 바로 그것. 사실 이 <아이언 마스크> 버전의 ‘Confrontation(<지킬 앤 하이드>에서 지킬과 하이드가 교차하는 유명 장면)’은 애초에 “터지라고” 만든 캐릭터쇼에 가깝다. 타락한 악과 그에 대항하려는 선이 진한 색의 조명을 번갈아 받으며, 목소리와 발성, 표정을 바꾸는 장면이 어떻게 관객들을 사로잡는지는 한국에서만 근 20년간 보지 않았나.

 

애초에 이 유사 ‘Confrontation’ 장면은 <아이언 마스크>의 드라마 전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씬이다. 구태여 이 다음 타이밍에 크리스틴의 죽음을 보여준 건, 다시 드라마를 본격 전개하고, 루이의 비인간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물론 원작의 크리스틴 역시 목을 매달아 죽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 뮤지컬의 이 장면이 끝까지 입안에 쓴맛을 감돌게 했던 건, 가장 강렬한 씬으로 박수갈채가 터진 후에 나온 크리스틴의 형상이 하나의 ‘오브제’ 같았기 때문이다. 이 '객체화된 죽음'의 의도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루이와 관객에게 공유하면서, 급작스럽게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함일 것이다. 오로지 루이와 전개를 위한 타이밍이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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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단순히 이 캐릭터의 죽음만 그렇진 않다. 사실 백성을 이야기하고, 백성을 위해 혁명을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이 작품이 그리는 백성은 딱 크리스틴과 라울의 활용으로 집약된다. 루이의 광기를 두드러지게 하고, 필립의 왕위 찬탈에 명분이 되는 사람들. 혁명을 외치던 수많은 백성들이 ‘대장’ 아라미스의 등장 뒤로 사라지고, 후엔 왕이 된 필립을 아무 의구심 없이 받아들인 것도(“오직 혁명의 불꽃만이”라고 외친 이유는 어디에?) 마찬가지다.

 

끝까지 사랑을 지켰던 라울은 죽었다. 루이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현실과 타협했던 크리스틴도 죽었다. 그렇다면 20여 명의 앙상블이 몸을 던지며 표현한, "혁명"을 외친 수많은 백성은 어디쯤에 있을까. 아라미스와 총사들이 치하받았으면 된 걸까. 루이가 그들을 통치하지 않으면, 좋은 왕이 되려 하는 필립이 그들을 통치하면 그만인 걸까. 가면이 벗겨지고 달타냥과 루이의 비밀이 밝혀진 엔딩에서, 그들의 자취가 궁금해진 이유다. 정말, 정의란 이게 다 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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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마스크
- THE MAN IN THE IRON MASK -


일자 : 2019.11.23 ~ 2020.01.26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3시, 7시

일 2시, 6시

윌요일 공연 없음

목요일 4시, 8시


장소 : 광림아트센터 BBCH홀

티켓가격

VIP석 140,000원

R석 120,000원

S석 80,000원

A석 60,000원

 
주최
㈜플레이앤씨

주관
㈜글로벌컨텐츠

제작
㈜메이커스프로덕션

관람연령
만 7세 이상

공연시간
150분
(인터미션 : 15분)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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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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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 속이 너무 시원한 리뷰였습니다 ㅎㅎ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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