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흘러가는 것들과 미완성의 삶 - 파인드 미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파인드 미》
글 입력 2020.01.1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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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것들


 


누구에게나 여러 개의 삶이 있어. 하나의 삶이 다른 삶 아래에 끼워졌거나 나란히 있지. 한 번도 살아진 적 없는 삶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생을 다 채우기 전에 죽어 없어지는 삶도 있고, 충분히 살아지지 않아서 다시 살아지기는 기다리는 삶도 있지. 기본적으로 우린 시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


- p.59



시간은 평행하게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그렇게 일직선으로만 흐르는 걸까? 그렇다면 이미 지나간 시간 속의 일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우리는 왜 그저 지나가 버리고 말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는 걸까? 연말, 연초가 되면 항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시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한 주 한 주 다시 일상 속 흘러가는 시간들을 살아낸다. 사람들은 모두 한 시간, 하루, 한 달, 한 해, 이렇게 기계적으로 끊어지는 시간의 분절 속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흘러가는 시간을 산다. 시간을 비롯한 삶의 모든 것은 이어져있다.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파인드 미》는 그 이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 혹은 사랑이라 불리는 범주의 엇비슷한 감정들, 관계가 서서히 쌓여가는 과정, 헤어짐, 헤어졌지만 끊기지 않은 관계, 아버지, 누군가의 그림자, 나이 들어감, 끝내 미완성으로 남는 삶……. 분명히 존재하고 느껴지지만, 쉽사리 제한된 언어로 내뱉지 못하는 그 미묘한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가를 말할 때면 늘 나오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이란 수식어다. 처음 이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이 문구는 나를 움직였다. 정작 이 작가를 처음 만난 작품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아니라 《수수께끼 변주곡》이라는 단편 소설집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작가가 다루는 세계는 섬세하고 연약한, 그렇지만 우리 삶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부분이란 걸.


또 하나, 이 작가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다른 수식어는 동성애다. 사실 여기에 대해선 딱히 떠오른 생각이 없었다. 이 작가가 쓰는 글들은 오로지 동성애 소설이 아니다. 그저 사랑에 이야기일 뿐이다. 이성애, 양성애, 다성애, 동성애, 무성애…….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이 넓고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 위에서 사람은 존재한다.


나 역시 지금은 이성애자라 하더라도 후에 어떻게 나의 성향이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사랑의 형태는 무 자르듯 딱 떨어지게 잘라낼 수 없다. 결국, 사랑 역시 ‘흘러가는 것’의 일부이다.


 

 

나를 찾아줘


 


사람들은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머지않아 물어보거나 말하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어지죠. 그렇게 소멸해 버리고 아예 살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존재가 되죠. 시간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고 기억은 재를 흘리지 않아요.


- p.241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소설 《파인드 미》를 표현하고 있는 문장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 후의 이야기”였다. 후속작이란 뜻이다. 마케팅을 위해 영화 이야기를 계속 이용해 광고를 하는 것이겠지만, 안드레 애치먼이란 작가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틀 속에만 넣어두기엔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한편의 영화로만 이야기하기엔 작가가 다루는 사랑의 형태, 삶에 대한 이해, 만져질 듯 만져지지 않는 감정의 깊이가 겹겹이 쌓여있다.


사실 이 소설 《파인드 미》 역시 영화를 몰라도, 전작을 보지 않아도 읽기에 큰 무리가 없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던 전작에 비해 이 소설은 엘리오의 아버지 새뮤얼의 관계를 다룬 <템포>가 큰 비중을 이룬다.


이후엔 엘리오가 만난 또 다른 연인 미셸과의 이야기인 <카벤차>와 다시 만나는 올리버와 엘리오를 그린 <카프리치오>와 <다 카포>가 이어진다. 인물들은 전작과 동일하지만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전작을 몰라도 이들에게 이입하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저 이름만 같은 동일인이라 생각하여도 무리가 없다. 그저 또 다른 인연과 만나 그려지는 감정의 바다일 뿐이다.


특히 젊은 엘리오가 미셸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카벤차>는 ‘피아노’라는 매개체로 연결된 미셸과 그의 아버지 아드리앵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 그것도 동일한 성 정체성을 갖는 부자의 감정을 되짚는다. 엘리오와 미셸의 나이 차는 정확히 2배, 아들과 아버지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미셸은 엘리오와 만나면서 자신을 뒤덮었던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차차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아버지의 두 번째 자아였어. 사람에게는 첫 번째 자아와 두 번째 자아가 있다고 생각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 중간에 여러 가지가 있을지도 몰라.


- p.211



미셸은 늘 아버지를 생각했다. 피아니스트였지만 꿈을 포기하고 변호사가 된 아버지, 밤 중 몰래 피아노를 치곤 했지만 부정하던 아버지, 레옹이라는 사람이 쓴 악보를 보물처럼 간직했던 아버지. 미셸이 생각했던 아버지는 늘 두 번째 자아의 아버지였다.


아들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숨겨진 모습이었다. 그 비밀에 대한 궁금증에서 놓여나지 못하던 미셸은 엘리오와의 만남을 통해 점점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아버지가 고이 간직하던 레옹의 악보, 그 악보에 쓰인 메시지가 아주 조금 엘리오에 의해 풀린다.


“나를 찾아줘.”

 


나는 아리엘(레옹)을 생각했다. 악보는 그가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바치는 러브레터, 비밀편지였다. 나를 연주해 줘. 나를 위해 카디시를 읊어 줘. 선율을 기억하지? 여기 베토벤 아래에, 모차르트 옆에 숨겨 놨어. 나를 찾아줘.


- p.241


 

 

 

미완성의 삶



명쾌한 것이 없다. 모두 다 존재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다. 헤어진 연인은 마음에 한 자락 기억을 남겼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림자를 남겼다. 어떤 아버지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아이를 낳았고, 어떤 연인은 헤어짐을 딛고 다시 만났다.


소설 《파인드 미》는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정제되지 않고 완벽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 미완성의 삶, 그 잡히지 않는 감정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의 인연에, 사람의 인생에 단순하고 깔끔하게 분리되는 것이 없다는 걸 찬찬히 보여준다.


정해지지 않는 삶, 틀에 갇히지 않는 삶, 그래서 더 생생한 삶과 감정들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네가 내 나이가 되어

하루하루 삶의 낙이 줄어드는 게

확연해지면알 수 있을 거야.

 

사소한 우연들이 사실은

삶을 새로 써주는 기적이고,

큰 그림으로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일들을

무지갯빛으로 빛내 준다는 걸 말이야.

 

이 시간은 절대로 의미 없지 않아.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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