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파우치 속, 숨죽이는 감각을 깨워요 - 체홉, 여자를 읽다 [연극]

글 입력 2020.01.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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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 여자를 읽다>는 여자들의 사랑, 행복과 불행, 육체적 욕망, 일탕과 부정을 다룬 안톤 체홉의 수십편의 단편 중 4가지 이야기를 엮은 옴니버스식 연극이다. 체홉은 독자들에게 아무런 강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여자들의 욕망을 보여준다. 연극을 통해 여자들의 권태와 욕망, 우수와 눈물을 느끼고 공감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연극은 "약사의 아내", "나의 아내들", "아가피아", 그리고 "불행"으로 구성되어있다. 간지러운 로맨스보단 극적인 스캔들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여자들은 가정을 저버리고 불륜을 저지르거나, 자신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녀들이 이름다운 이유이다. 억눌린 욕망을 자연스럽게 표출할 때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극 속에서 누구도 여자들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체홉, 여자를 읽다>의 핵심은 다른 무엇도 아닌, 여자의 욕망 그 자체에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 욕망을 극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더욱 파격적인 설정을 했을 수도 있다. 금기될수록 커지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세상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 많다. 자연스러운 감정과 욕망을 억압하고, 금기시한다. 조신, 대체 조신이 뭐길래? 여자가 꺼내 놓을 수 있는 감정과 의견은 한정적이고 불완전하다.

 

특히나 욕구는 여자가 가져서는 안 될 무언가로 여겨져 왔다. 여자마저 스스로 욕구를 가지는 것을 숨기려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하곤 한다. 대놓고 드러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욕구에 대한 태도는 확실히 다르다.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여자는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한다. 싸 보인다는 말, 쉬워 보인다는 말. 너무 흔한 말이라서 정말 그런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제는 너무 굳어져, 여자는 욕구가 원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욕망은 더 은밀해지고, 자신의 파우치 속에 숨겨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자기 자신조차도 욕구를 받아들이기 싫어하며 죄짓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더 몰래, 더 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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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욕구만 따르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적절한 해소와 조절이 필요하다. 여자들에게 이는 쉽지 않다. 조신하지 못하니까. 쉬워 보일 수 있으니까.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파우치의 지퍼를 닫고, 가방 속 깊이 넣어 둔다. 그리고 열려있는 다른 여자의 파우치 역시, 조용히 닫아주게 된다.

 

 

 

조신한 여자를 원해?


 

세상이 여자의 욕구를 억압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세상은 남자들의 욕구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만 강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의 순결, 조신. 대체 그런 모습을 바라는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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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그렇다고 세상이 여자에게 욕구가 없길 바라지는 않는다. 여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대부분 유희일 뿐이다. 여자의 무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감춰진 욕구에 대한 판타지를 갖곤 한다. 그리고 그 속의 욕망이 살짝 드러났을 때, 환호하며 돌을 던진다. 여자의 욕구는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남자의 욕구에 가려져 수단으로 소비되곤 했다. 욕구의 억압은 천천히 깊게 박혔다.


조신한 여자는 일종의 판타지다. 베일에 싸인 것을 상상하고 그리는 일은 즐겁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까, 마음대로 상상해낼 수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여자들은 힘 있는 남자들의 판타지가 되기 위해 옷을 여미고, 욕구를 숨겼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그런 판타지는 많이 볼 수 있다. 더 오래된 영화일수록, 더 감춰진 여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숨겨진 것을 보여주었을 때, 영화는 절정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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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한 여자가 되라 하지만, 조신하기만 한 여자는 매력이 없다. 중요한 건 바로 그 감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가릴수록 더 대단해 보이니까. 구애하는 남자들이 더 대단한 것을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 조신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시놉시스

 

'약사의 아내', '아가피아', '나의 아내들', '불행'이란 제목이 붙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체홉하면 떠오를법한 인간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유머감각을 반복되지 않게끔 다양한 상황으로 지루하지 않게 풀어냈다.

 

Episode 1. 약사의 아내 - 모두 잠든 시간. 약사의 아내는 오늘도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그녀에게 이 약국에서의 생활이 지겹기 때문이다. 약국 이층에 위치한 집에 창문을 열고 기대선 그녀. 우연히 지나가던 장교들의 말을 엿듣게 된다. 약사의 부인이 미인이니 늦었더라도 약을 사면서 얼굴이라도 보자고 떠드는 말이다. 그녀 이상하게 이 상황이 흥분이 된다.


Episode 2. 나의 아내들 - 라울 시냐 보로다, 즉 푸른수염은 자신을 7명의 아내를 살해한 기괴한 연쇄 살인마의 모습으로 묘사한 오페라를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고자 편지를 쓰는데...


Episode 3. 아가피아 - 나, 사프카, 아가피아는 지금 낚시터에 있다. 나와 아가피아는 아는 사이이며, 아가피아와 사프카는 불륜관계이다. 아가피아는 기차소리가 들리면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Episode 4. 불행 - 변호사 일리인은 친구인 안드레이의 부인 소피아에게 긴 시간 구애를 해왔다. 미친 짓인 것을 잘 알지만 제어하지 못하게 된 지도 오래다. 소피아는 그런 일리인의 구애를 항상 거절해 왔다. 그러나 그 거절이란 게 말뿐인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거절은 거절이지만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그래서 듣는 사람은 오히려 더 오기가 발동하게 된다.

 

 

"약사의 아내"는 코미디, "나의 아내들"은 그로테스크 코미디, "아가피아"는 목가극, 그리고 "불행"은 멜로드라마로, 각각의 에피소드는 장르가 전부 다르다. 상황과 표현은 다르지만, 그 속에는 전부 여자들의 욕망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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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여자들의 파우치 속에 들어 있는 욕망 그 자체를 다룬다. 극적으로 설정된 상황은 욕망이란 추상적 개념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남성들도 전부 그녀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여자의 옆에 있는 남자보다, 그 남자를 향한 여자의 반응이 이 연극의 핵심히 될 것이다.

 

네 가지의 이야기 속에 있는 여자들의 욕구를, 다른 상황이나 도덕적 판단을 벗어나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욕망이 가진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여자들의 욕구를 그 자체로 느끼고, 공감하며 연극을 따라 호흡하면, 새로운 감각을 깨울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의 필수품 파우치 안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화장품은 그녀들의 미를 향한 욕구를 드러내고, 보이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 역시 그 속에 함께 넣어 둔다. 소중한 것들을 담아두는 파우치에, 욕망을 넣은 것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엔 여자들만의 필수품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파우치 속에 든 그녀들의 욕구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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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감각이 있다. 욕구는 그중 강한 감각에 해당한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삶을 더욱 증명해낸다. 생을 잊어갈 때, 욕망은 심장의 박동을 느끼게 하고, 감각을 깨운다.

 

본능에만 이끌려 행동하는 것이 낳을 수 있는 결과들로 인해, 본능 그 자체가 때로는 나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본능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우리의 일부이며, 삶의 증거이다. 제어할 수 있는 본능은 체홉의 말처럼 축복일 수 있다. 내 안의 욕구와 마주하는 일은, "나"로서의 삶을 조금 더 깨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외면하기에 우리의 감각은 꽤 섬세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를 통해 본능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속에서 삶을 읽기를 바란다. 삶이 지루하고 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연극 속 여자들의 욕망을 바라보며 박동하는 삶을 느껴보길 바란다. 그녀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감각을 대변할지 모른다. 숨겨두던 우리 안의 욕망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때때로 너무 많은 의무를 따르다 보면, 감각을 깨우는 법을 잊기 쉽다. 욕구마저 잊게 되고, 자신이 기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욕구가 있고, 숨겨놓은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며 그녀들의 파우치에 흠뻑 빠질 수 있다면, 충분히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체홉, 여자를 읽다

- 희극과 드라마 그리고 코미디 -



일자 : 2020.01.07 ~ 2020.02.02


시간

화~금 20시

주말, 공휴일 15시

월 공연없음


*

01.24(금), 01.26(일), 01.27(월) 15시 공연

01.25(토), 01.28(화) 공연없음

 

장소 : 대학로 자유극장


티켓가격

전석 50,000원

 

주최/기획

씨어터오컴퍼니


관람연령

만 14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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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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