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과 소설의 만남,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도서]

"과학과 SF소설의 세계는 깊고 넓으며 우아하다"
글 입력 2020.01.06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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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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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무언가를 선택할 때 단칼에 선택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주저없이 선택한 몇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등학교 2학년 말, 문/이과를 선택할 때였다. 과학과 사회과목의 성적을 비교하며 갈팡질팡 고민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희망계열을 적어내는 종이를 받자마자 문과라고 작성한 뒤 바로 제출했던 것 같다. 왜냐면 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였기 때문이다.

 

수학머리가 과학머리라며? 믿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인 것 같다. 수학 성적과 과학 과목 성적은 정확히 비례했기 때문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조금 익숙했던 지구과학은 해볼만 했지만 수많은 원소기호가 쏟아지는 화학에서 멈칫했고, 온갖 계산과 공식이 난무하던 물리에서 나는 항복을 외쳤다.

 

***

 

내 약점이었던 수학과 과학을 그동안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을 소재로 사용한 영화나 소설, 문학작품에서 종종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아 나는 그냥 성적이 안나와서 과목들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근거있는 이론들로 촘촘하게 짜여진 SF영화나 공상과학소설들은 미치도록 재밌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던 내용들을 자신이 알고있는 과학적 이론과 지식들로 검증하는 글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과학적 접근을 접목시킨 SF소설집이다. 이공계 출신이 아닌 작가는 친절하게 소설의 앞과 뒤에 설명을 추가해 이해를 돕는다. 8편의 소설 중 인상깊게 읽었던 세 편을 소개하려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첫번째 소설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영생을 얻게 된 이후를 다루는 내용이다. 우연한 기회로 늙지 않는 약이 개발되었고, 성인이 된 인간은 예방접종을 맞는 주사 한 방을 맞는다. 그러면 평생 동안 늙지 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화자인 주인공처럼 이러한 흐름에 맞서며 주사를 맞지 않고 자연적인 노화와 죽음을 선택하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마치 20세기 중반 기존 사회에 반항하던 히피처럼 '우피'라고 부르며 기피한다.

 

노화를 멈추는 것은 영생이 아니었다. 늙어서 죽지 않아도 범죄, 전쟁, 바이러스 등 죽음의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사람들은 실수로 인한 죽음을 부단히 피하려 한다. 그렇기에 창문을 잠그고 문을 닫고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책의 문구를 인용하자면 '영원히 살기 위해 무한한 겁쟁이가 되고 만' 것이다.


누군가 평생 늙지 않고 살래? 아니면 그냥 살다가 죽을래? 사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당연히 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늙지 않는다는 것과 영원히 산다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 순간, 저 질문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번째 소설인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양자역학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워낙 유명해 제목을 보고 어? 이거 아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전혀 내가 아는 내용이 아니었다. 사실 앞설을 읽고 나서도 양자역학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은 독특하게 고양이의 시점으로 말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개념을 만들어 낸 에르빈 슈뢰딩거와 그의 동료 닐스 보어가 진행한 실험에서 실험 대상이었던 고양이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방사성 동위원소 장치를 부착한 상자 속에 고양이를 넣고 기기를 작동시킨다. 이 때 상자는 속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재질이어야 한다. 상자 속 고양이의 생존 확률은 50%. 다행히 주인공 고양이 미야옹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두 과학자의 대화를 들으며 미야옹은 혼란스러워진다. 살아있는 상태로 상자에 들어갔고, 살아있는 상태로 상자를 나왔지만 상자 속에서 실험이 진행되는 순간의 상황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에 의하면 어쩌면 미야옹은 죽었다 살아났을 수도, 다른 차원의 세계에 다녀왔을 수도 있다.

 


 

인형들의 천국


 

다섯번째 소설 '인형들의 천국'은 요새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이슈인 AI와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인공지능의 끊임없는 학습과 발달로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 수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소재로 사용할 만큼 익숙하고 때론 진부하게 느껴지는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형들의 천국'은 기계와 인간의 갈등을 다루지 않는다. 기계가 점령한 세상에서 살고있는 인간들의 고통을 이야기로 담은 것도 아니다. 소설 속 지구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멸종시킨, 즉 지구의 주인이 인공지능인 상황을 가정한다.

 

이 소설의 서술자도 독특하다. 은하계를 탐험하다 지구라는 행성을 발견한 이름모를 행성의 주민, 흔히 말하는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했던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다. 외계인인 '나'는 낯선 생명체인 자신을 보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지구인들을 보며 당황한다. 뿐만 아니다. 지구는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게 통제되고 조절되는 행성이었다. 독특한 행성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껴 지구의 역사를 탐색하던 그는 지속되는 갈등과 혼란을 겪으며 파괴를 일삼던 인간들을 AI가 멸종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형들의 천국'은 지구인인 '마이사'의 말보다 다른 행성의 외계인인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더 공감하게 되는 이질감을 갖게 했다. 그리고 감정을 느끼냐는 '나'의 질문에 붓다의 말을 인용하며 설명하는 '마이사'의 대사를 보고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느낌도 받게 한 소설이었다.

 

*

 

소개한 세편의 소설들 이외에도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접목시킨 재치있는 소설들로 가득하다. 단순히 과학적 이론을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 철학적인 의문과 생각을 갖게 해주는 소설도 있기에 짧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볼 부분이 많았던 소설이었다. 그동안 과학은 과학자, 연구자의 영역으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니 과학은 앞으로의 내 삶이 될 수 있고, 다가올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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