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1 [도서]

글 입력 2020.01.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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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을 모두 지겹도록 타본 날이었다. 일종의 현타가 왔다.


갑자기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지친 탓도 있는 데다가 같은 공간에 있는, 내가 보는 많고 많은 이들의 존재에 대한 반문이었다. 한번 죽으면 끝인 인생,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삶의 의미. 이런 단어들의 나열들이었다. 추천 도서로 나온 책이, 그리고 내 마음에 끌렸던 책이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이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그때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여서 다행이고, 지금이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좋아하는 구절을 적어보려고 한다. 아마 내 인생에서 계속 담아 둘 문장들의 향연이 되리라.


책 목차 중 1편에서는 강제수용소에서 그가 겪은 일들, 일화들로 구성되어있다. 사람의 특성이나 모습들을 연상하며 볼 수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2편은 로고테라피라는 단어를 통해 삶을 해석한다. 그간 그가 겪었던 일들을 통해 느낀 바와 함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굵직한 문장들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이 책의 매력이자, 두고두고 볼 의미 있는 문장이 많은 ‘노다지’이다.




긴장이 없는 상태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해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

 

▶ 의미, 의미. 그놈의 의미 좀 그만 찾고 싶다고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의무와 무게를 지우는 느낌에 부담감만 커졌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사는 것만도 어디냐고 따지고 들었던 때도 있지만, 그게 계속된 상황에서는 결국, 도태되어버린다. 그리고 ‘삶의 의미’란 것이 절실해지기도 한다.


그 목표를 위해 ‘투쟁’한다는 단어가 참 좋았다. 아등바등, 오늘은 무슨 일 없이 고요히 지나가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설계해 그를 보고 달려가는, 역동성 있게 헤쳐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이 있는 단어이고 뭔가 마음 안에서 불꽃을 지피게 했다. 목표가 있는 삶에는 한 톨의 지체할 틈이나 지루할 틈 따위는 없다. 조바심과 긴장감이 계속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에 깊어질(deep 해질) 겨를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크든 작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뭐부터 시작할지 오래 할 수 있을지 의심되고 자신감이 없어진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의지로 선택한 목표가 아닐 것이다. 목표가 없는 것 같아 남들의 ‘버킷리스트’를 따라 내 수첩에 적어놓은 것도 몇 번, 그것은 내 심장의 불꽃이 되진 못했었다. 그런 것처럼 나만의, 그리고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목표와 의미를 두고 투쟁하듯 삶을 살아간다면 그 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삶이자 도태되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실현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N극과 S극처럼 착 하고 달라붙는 것(목표 달성의 마침표가 되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간극 안에서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만날 듯 안 만날 듯”한 긴장을 가진 자기장 안에서 내가 존재하길 다짐한다.

 

지금의 내 목표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도 가능하며 ‘나를 표현했더니, 다른 이들이 희망을 얻게 되었네?’라는 느낌으로 살리라는 의지가 있다. 다른 곳으로 잠깐 눈을 돌릴 수도, 빙빙 돌아 닿을 수도 있지만, 삶의 의미를 다시 되뇌는 날에 이 문장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두 번째로 사는 삶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이 말처럼 인간의 책임감을 자극하기에 좋은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첫째, 현재가, 지나간 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둘째, 그 지나간 과거가 아직도 변경되고 수정될 수 있다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교훈은 인간이 삶의 ‘유한성’은 물론 그가 자신과 자신의 삶으로부터 성취해낸 성과의 ‘궁극성’과도 대면하게 만든다.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혹은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환자 자신의 판단에 맡긴다.』

 

*

 

▶ 누군가 그랬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지만, 조금이나마 덜 후회하고 싶다면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고자 한다면 ‘미래에서 온 거로 생각하라’고. 한 번 살고 죽는 게 인생이지만, 내 인생이 나도 모르는 사이 두 번째 인생으로써 부여받게 되었다면? 좀 더 인생에 책임감 생기고, 신중히 생각하게 된다. 실수한 상황을 되감기 해 좀 더 나은 상황에 나를 놓아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어떤 일이든 내 손안에서 통제되어있는 느낌을 좋아한다. 안정감 있고, 내가 주가 되어 컨트롤 할 수 있으며 일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저건지, 이 방법이 맞는 건지, 이건 어떻게 하는 건지 등 여기저기 정보들이 널브러져 있는 가운데에 내가 있다면, 바보가 된 느낌일 것이다. 일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없으니 박탈감과 좌절감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5분 뒤의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정될 수 있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의 여하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느끼는, 통제하는 삶이 설계된다면 말 그대로 “내 인생, 내가 산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판단에 맡기는 것만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것이다. 탓할 상대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어른이 되어간다. 삶에 책임을 지고 주가 되는 내가 되길 바란다.

 

 


역설 의도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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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일을 생기게 하고, 지나친 주의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있다. 


한 가지 실례가 생각이 난다. 땀 흘리는 것에 대해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의사가 나를 찾아왔다. 땀을 많이 흘릴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예기불안이 정말로 땀을 많이 흘리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 순환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나는 환자에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일부러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는지 보여 주겠다는 생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충고했다. “전에는 땀을 한 바가지밖에 안 흘렸지만, 이제는 적어도 열 바가지는 흘리게 될걸.” 그 결과 그는 단 일주일 만에 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설 의도기법이 먹혀들어 가는 것은 인간에게 이런 거리 두기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 멋진 문장이다. 약간은 패기 있는 느낌이라 더 좋다. ‘어디 한번 해봐라,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실망하게 해줄게.’하는 당당함. 사소한 것에 꽂혀 기분 상해 있거나, 어떻게 하면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단숨에 제압해버리는 마법의 주문 같기도 하다.


최근 있었던 일이다. 사람마다 자신들의 세계를 갖고 있고, 생각하고픈 대로 생각한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 나를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대했던 이가 있었다. 그가 조금만 더 생각해서, 내가 그와는 다른 사람이고,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대해줬으면 좋으련만, 그에게는 무리였을까. 넓은 시각이 아닌 좁은 시야로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는데, 자신만의 늪에 빠진 채 날 대하던 그의, 맞은편 타자(他者)가 되어보니 헛웃음밖엔 안 나오더랬다.


저 문장이 아니었으면, 분이 금방 가시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를 향해 생각했다. ‘내 목표는 당신이 나에 대한 실망감으로 뒷목 잡는 걸 보는 겁니다. 기대하세요, 제가 못나기로는 일등이거든요! 더, 더! 이해할 수 없다는 그 눈빛이 아직 좀 부족한데, 내가 얼마나 무식하고 한심한지 한번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이릅니다. 더 있다고요!!’


약간은 정신승리 같기도 하고, 뻔뻔하기 그지없어 황당한 문장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효과는 상당했다. 나는 그를 실망하게 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계속 실망시키면 되는 게 나의 목표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일이 기대되는 이 신명 나는 기분은 새해 선물이리라. 신정 떡보다 맛있고, 일출보다 멋있는 역설 의도 기법 마인드, 적용하며 살자.


나만의 의미를 설계하고, 통제감을 선물하는 생각과 의연한 마인드는 매일 있을 오늘, 내 삶을 좀 더 쾌적하게 만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서휘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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