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는 고양이의 슈뢰딩거로소이다 - 도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글 입력 2020.01.0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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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음악, 영화 등 무엇이건 간에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이해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전혀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도, 핵심 소재에 관한 정보도, 연출 기법에 대한 것도 따로 찾아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로 작품을 감상한다. 오롯이 그 작품이 전달하는 것만을 느끼고 싶은 탓이다. 새하얀 백지 위에 자신만의 색을 뚜렷하게 그려 남겨주는 작가 혹은 작품이 나에게는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슈뢰딩거의고양이로소이다_평면표지.jpg

 


아직 이런 내 지론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은 뒤에는 간단한 지식 정도는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여지까지 다른 책에서는 본 적이 없었던 구조와 그 구조로 인해서 보다 깊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영향을 줬다. 아마 SF라는 장르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SF영화, 즉 과학을 소재로 삼은 영화라고 해서 모두 어려운 것은 아니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를 보자고 과학 책 피고 공부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인터스텔라 같은 작품은 과학 분야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그 작품만의 맛을 잘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사고 실험이나, 인공지능 연구 같은 것도 밑바탕이 되는 지식이 없으면 작품 자체를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앞설>과 <뒷설>이라는 참신한 짜임이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 주었기에 나는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하여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맛을 표현하자면 ‘케첩인 줄 알고 먹었더니 고추장이었다’가 아닐까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집어 뿌린 뒤에 입에 넣었더니 예상치 못한 매운맛이 뇌를 후려치는 경우와 비슷했던 탓이다. 나는 이 책을 그저 여타 작품과 비슷한 공상과학물이라 생각하고 읽었으나, 각각의 작품들은 나에게 정신 차리라며 호되게 매질을 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을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었다.



고양이인 처지에 굳이 이렇게 글을 쓴다고 나선 것은 이제 살날이 길지 않은 만큼, 오래전에 직접 겪은 기이한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 두기 위해서다. 인간들이 목숨이 아홉 개 있다고 말하는 나 미야옹의 입장에서도 평생의 의문으로 남을 그 경험. 그래서 주변 고양이들에게조차 발설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머리 좋은 인간들은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_<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66쪽


 

슈뢰딩거에 우리를 투영하고, 상자 속 고양이에게 과학을 투영해서 봤을 때 우리가 얼마나 우물에 갇혀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인공지능, 우주과학, 외계 생물체 등등 모든 것을 우리는 여지까지의 역사 속에서 쌓아온 인간의 관점에서 축적된 지식에 근거하여 판단하고는 객관적 사실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우리가 상자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때, 그 속의 고양이가 어떤 모습으로 있었고, 어떤 것을 만나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결국 객관적이라는 정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임에도 우리와 사회는 그것에 기반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이를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마이사가 잠시 뜸을 들이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세 번째 전쟁은 정말 참혹했지요. 인류의 4분의 3이 죽었으니까요. 사회, 경제, 정치 시스템이 모두 붕괴되었고 자연도 끔찍하게 훼손되어 이전으로 돌아가기조차 어려울 만큼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판단을 해야 했죠. 인류가 과연 이 문명을 계속 이어 나가고 발전시킬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인류 문명을 억지로 부활시키는 대신 인류와 망가진 생태계를 포함한 모든 것을 지우고 리셋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거의 모든 영역에 우리의 손길이 닿아 있었기에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한 세기 전의 일이죠.”


_<인형들의 천국>, 117쪽


 

어렸을 때부터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 했었다. 지금 나에게 이 명제에 관한 의견을 묻는다면 ‘인류는 지구의 가장 큰 실수’라고 할 것이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그게 사실이다.


멀쩡히 잘만 돌아가던 생태계 순환 고리를 박살 냈고, 모두가 힘을 합쳐 오염시킨 자연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바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기술을 다른 집단이 따라오는 것이 두려운 것뿐임을 세계 평화를 위한 조치라고 포장하며 애써 숨긴다. 모두가 잘못을 저질러놓고 책임만 떠넘기는 이 종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 말고는 드는 것이 없다.

 


일종의 비밀결사라고 할 바로 이 조직, 산타 신디케이트가 만들어진 바탕에는 산타클로스라는 존재의 역할과 그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신비감과 경외감의 중요성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산타클로스의 전설이 시작된 이래로 수 세기에 걸쳐 인류는 산타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가졌고, 이후 나이가 들면서 그것을 상실하는 경험을 범지구적 차원에서 공유해 왔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은 크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산타클로스의 전설을 믿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결과로 어른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발적으로 암묵적인 결사체를 결성하고 산타클로스 개인이 해야 할 역할을 자신들의 아이들을 상대로 대신하게 되었다. 강력한 밈meme이 형성된 것이다.


_<산타 신디케이트>, 186~187쪽


 

어떤 존재가 있다나 없다 또는 어떤 명제가 참이다 거짓이 다를 판단 할 때 우리는 보통 객관적인 근거를 찾는다. 하지만 그 객관적인 근거는 우리 인류 중 누군가가 관찰하고 있을 때에만 보인 모습일 뿐 관찰하지 않고 있을 때의 모습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오류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절대적 객관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작가는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로 이런 모순을 지적해줬다. 어른으로 자라면서 산타는 없다고 자연스레 믿어버리지만 산타가 있다는 근거가 없는 만큼 없다는 근거도 없다. 그저 누구도 관찰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 명일 수도 있고 개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산타클로스라는 존재가 모두가 그렇게 인식하도록 조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던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지식에서 오는 자만일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은 날카롭게 지적했고 나는 치명상을 입었다. 언제부터인가 정형화된 교육에 찌들어 생각하는 방식조차 너무 정형화됐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닫혀있던 방 안의 공기가 탁할 때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 주듯이 작가는 갇혀있던 내 사고의 창문을 열어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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