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약자들의 이야기 - 연극 "생쥐와 인간" [공연예술]
-
학창시절 영어 수업 때 원서로 처음 알게 된 소설 <생쥐와 인간>을 거의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것도 무대에서! 언제나 슬픈 이야기.
토끼를 키울거야. 집 뒷뜰에는 토끼에게 줄 알파파를 키우고.. 조지, 우리의 이야기를 더 해줘.
레니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조지는 그들이 집을 얻어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준다. 자신의 집에서 하고 싶은 만큼, 먹고 살 만큼 일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토끼를 키우는 그런 상상의 이야기를 해주면 레니는 금방 마음이 풀려 행복해하며 실실 웃는다. 조지는 그런 꿈을 이야기하며 허황인 것을 알지만 좋아하는 레니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희망을 조금씩은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내 땅에서 작물을 키우고 보들보들한 토끼를 직접 키우는 상상
서로 그 꿈을 이야기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이렇게 슬프게 다가올 줄 몰랐다. 그들의 결말을 알고 있어서 더 슬펐다. 이데아에 결코 닿을 수 없다. 사실 그들의 목표는 이데아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그냥 일반적인 우리의 일상의 모습이었다. 욕심도 없이 그냥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 편안하게 잠을 자는 일상인데 이를 이루지 못하고 왜 그렇게 죽었을까?
그곳에는 강한 자가 없다. 약자뿐이다. 그들은 떠돌이 노동자, 노인, 여성으로 철저히 사회에 배제당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꿨던 꿈이,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더 자세한 꿈을 그렸고 그럴 것이라 예상했기에 더 슬펐다. 그토록 꿈꾸던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가까워졌고 그래서 행복하고 달콤한 꿈을 더 자세하게 그렸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단단하고 높았다. 그 꿈이 깨지는 과정이 나타나니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슬펐다.
컬리 부인
컬리 부인은 이름도 없고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해주었다는 그 모습 하나에 놀라고 조지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 중 제일 작았고 나약했고 무시당했다. 약자 중에서도 제일 무시 당하는 약자였고 사실 책을 읽을 때는 크게 생각하지 않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연극을 보면서 등장인물 중 그녀가 제일 인상 깊고 기억에 남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어요? 내가 뭘 했다고요.
결혼만을 위해 나의 마음을 알아보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은 낯선 땅에 사는 그녀는 조지와 레니가 느낀 희망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죽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워서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책의 컬리부인보다 더 입체적으로 그녀가 다가왔다. 그녀의 마지막을 통해 그들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희망을 찾다가 결국 다 파멸로 끝났다. 이게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 계속 레니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를 달래주면서 자기의 마음에도 조그만 희망의 새싹이 틔어나지 않았을까? 그랬기 때문에 더 기뻐하고 캔디 영감의 말을 듣고 현실이 될 것을 꿈꾸면서 도전하지만 결국 마주하기 꺼렸던 현실을 맞닥뜨렸다.
그 누구도 악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안타까운 끝을 맺는다.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들이 죄없이 희생된 이유. 약자가 더 소외당하도록 만드는 구조의 사회가 아직 유지되는 건 아닐까?
이유 없이 죽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언제쯤 없어질까. 미국의 경제 공황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작품이지만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용직 노동자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사고당하는 비정규직들.. 지금도 조지와 레니가 꿈꾸던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작은 소원이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보면 참 안타깝고 이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절대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지와 레니는 지금도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에겐 미래가 있어. 우린 서로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고, 서로 얘기를 할 수가 있어. 달리 갈 데가 없어서 바에 앉아서 술이나 들이 키고 있을 필요가 없지. 왜냐하면 나는 나를 돌봐 줄 네가 있으니까. 그리고 너는 너를 돌봐 줄 내가 있으니까. 바로 그것 때문이야.
[이수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