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크리스마스를 케빈과 보낸다는 것 [영화]

글 입력 2019.12.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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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크리스마스는 케빈이랑 보내야지’

 

마치 관용어처럼 쓰이는 이 말은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에도 찾는 사람이 없는 본인을 자조하는 말로 쓰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집에서 하루종일 퍼질러 잘 수 있는 꿀 같은 휴일을 자축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럼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쓰이느냐.

 

말 그대로다. 나는 정말 케빈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는, 케빈에게 진심인 사람이다. 그렇지만 케빈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을 기회는 성인이 되고 나서 좀처럼 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올해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아무 일정도 없는 크리스마스.

 

덕분에 나는 간만에 TV 앞에 앉았고 치즈피자를 주문했다. 집에서 나 혼자 배달음식을(엄밀하게는 배달음식이 아니었다. 집 바로 앞이라 10분 후 나가서 가져왔으니) 주문해 먹는 건 처음이었다. TV 앞에 앉아 있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라 낯선 기분이 들었다.


방에만 들어가 있던 오빠도 피자 냄새를 맡고 어슬렁어슬렁 나왔길래, 같이 보자고 했다. 피자를 먹으면서 가족과 ‘나홀로 집에’ 보기. 어릴 때는 익숙하던 이 광경을 어른이 되어서도 답습하는 게 즐거웠다.


 

Home Alone 1 via 20th Century Fox Header.jpg

 


따지고 보면 ‘나홀로 집에’는 어릴 적 우리들에게 미국에 대한 환상을 알게 모르게 심어줬던 주범이다.


뉴욕의 크리스마스. 별장 같은 넓은 집. 커다란 장난감 가게. 치즈 피자와 마시멜로우가 들어간 아이스크림. 니트 모자와 스웨터, 골덴 바지에 털장갑. 90년대 미국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 영화는 도저히 그 본연의 작품성만을 냉정하게 따져물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적어도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우리들에게는.

 

어른이 되어 보니 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장면도 많았다. 다섯 아이에 빌붙는 친척까지 대동하고 여행을 준비해야 하는 엄마의 부담감과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의 공포, 케빈의 아이답지만 성숙한 충고에 놀라는 어른들의 속마음까지.


던컨 씨에게 받은 비둘기 모형 하나를 케빈이 나눠줬을 때 ‘비둘기 아줌마’가 지은 표정은 지금 보니 더욱 가슴을 울렸다. 1편에서 커다란 삽을 들고 다니던 할아버지도, 2편의 비둘기 아줌마도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알고 보니 그저 외로운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케빈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같은 장면을 봐도 아이였을 때와 어른의 시각은 이렇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전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영화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동심에도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 어른들이 보기에도 마냥 유치하지 않아야 하며,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작품은 확실히 흔치 않지만, ‘나홀로 집에’는 분명 그런 영화다.


 

home_alone_2_-_h_-_1992.jpg

 


나 외에도 이렇게 ‘케빈에게 진심인’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영화 채널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니 말이다.


이제 이 영화도 크리스마스에 재상영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극장계가 아직 잠잠하다는 게 신기한 점이다. <크리스마스 with 케빈, 치즈피자 및 아이스크림 무료제공> 정도면 충분히 심심한 어른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을 만하지 않나?


격세지감을 느꼈던 또 하나의 포인트. 그 때와 달리 나는 내 돈으로 당당히 치즈피자를 주문해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하.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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