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해를 돌아보게 한 따뜻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 [영화]

글 입력 2019.12.28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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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선택한 영화


 

우리는 곧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곤 한다. 미친 듯이 기뻤다가 슬픈 일이 생겨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나쁜 소식에 버럭 화를 내다가도 걱정 앞에서 소심해지곤 한다. 다양한 감정이 켜켜이 쌓여 우리의 일상을 만들어가고, 희로애락을 겪으며 삶이란 여정을 꾸려간다. 가끔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분노와 걱정은 누군가 나를 조종하는 것만 같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아름답고 흥미롭게 표현한 애니메이션을 만났다. 바로 개봉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호평이 자자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다. 연말을 맞이하여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보게 된 '인사이드 아웃'은 한 해를 끝내며 나를 돌아보기 알맞은 영화였다.

 

길고 긴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휴학생으로서, 마지막 학기의 대학생으로서 수많은 감정의 변화에 부딪힌 올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력한 감정이다. 무력한 감정이 찾아오면 나와 또 다른 내가 내면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이성의 목소리를 내는 나는 끊임없이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속삭이지만 감정에 휩쓸린 나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심연에 빠져 허우적대기 바빴다. 이렇게 나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제 3자처럼 느끼는 것. 이런 느낌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여러 감정을 주요 소재로 아름답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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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사람 안의 감정 조종체가 있다는 설정으로 이끌어간다. 주인공인 라일리는 태어나 가장 먼저 ‘기쁨이’와 함께한다. 인간이 태어나 첫 순간에는 ‘슬픔이’,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를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환호와 기쁨으로 탄생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만난다. 슬프기도, 소심하기도, 까칠하기도, 버럭 화를 내기도 하면서 5개의 감정 조종체 캐릭터가 라일리의 내면에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들이 만들어낸 감정과 기억은 구슬로 남아 라일리의 기억 저장소에 쌓이고, 그것이 라일리라는 사람의 인격과 삶에 대한 태도가 된다. 또한 핵심 기억으로 남아 오랫동안 중요하게 보관되는 기억도 있으며 ‘가족섬’, ‘우정섬’, ‘하키섬’ 등과 같이 라일리라는 사람에게 중요한 핵심적인 일상의 요소는 아름다운 섬으로 가꾸어지며 라일리의 삶을 움직인다. 그러나 라일리의 가족이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며 상황이 달라진다. 보다 더 나쁜 생활로 이어지게 된 이사는 어린 라일리에게 좋지 않은 감정들의 연속을 맞이하게 한다.

 

전학 첫날 '슬픔이'는 감정을 슬픔으로 바꾸려고 하고, 그것을 막던 '기쁨이'와의 실랑이 과정에서 라일리의 핵심 기억이 저장소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같이 빨려가게 된 '기쁨이'와 '슬픔이'의 부재로 라일리의 감정은 오직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만이 컨트롤하게 되며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생활이 전개된다. 또한 기억 저장소로 가게 된 ‘기쁨이’와 ‘슬픔이’는 라일리가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핵심 기억을 가지고 컨트롤 본부로 돌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모험과 라일리의 감정 변화가 이 애니메이션의 큰 맥락이다.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형상화한다면?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영화의 구성에 감탄을 여러 번 했다.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너무나 섬세하고 공감이 되도록 애니메이션 요소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먼저 극의 바탕이 내면의 다양한 감정들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라일리는 상황에 따라 내면의 적절한 감정 조종체가 제 역할을 하여 감정이 변화하는 것이지, 라일리 자체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은 슬프지 않은 상황에서도 '슬픔이'가 건드리면 상황의 해석이 슬퍼지고, '기쁨이'가 건드리면 다시 기쁜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상황의 해석에 따라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며, 감정의 변화는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수수께끼와 같은 면모를 ‘감정 조종체’가 있다는 설정 하에 공감이 되도록 풀어놓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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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각각의 감정 캐릭터가 만들어낸 기억은 ‘구슬’로 남는다. 그들의 색깔이 반영되어 기쁜 기억, 슬픈 기억 등과 같이 여러 색의 구슬로 남는데 이것은 기억 보관소로 이동되어 차례차례 쌓이게 된다. 이러한 스토리의 구성이 꼭 우리네 삶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라일리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기 전에는 ‘기쁨이’가 만들어낸 노란색 구슬과 그 사이에 조금씩 들어있는 다른 색의 구슬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라일리네 가족의 상황이 나빠지고 ‘기쁨이’가 컨트롤 본부에서 사라지자, 라일리의 구슬 저장소는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가 만들어낸 기쁨이 없는 기억의 구슬들이 점차 쌓인다. 그리고 전체 기억의 색채가 달라진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은 하나의 사건과 감정일 뿐이라도 결국 구슬을 꿰듯 쌓이고, 이것이 결국 쌓이면 내 삶의 전체적인 기억과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기억 저장소에는 중요하지 않은 기억과 필요 없는 기억에 대해서 청소를 하는 캐릭터가 정리를 한다. 회색빛이 된 구슬을 청소기로 빨아들이며 없애 절벽 너머로 버리게 된다. 우리도 삶을 살아가며 중요하지 않는 기억에 대해서는 기억을 지워버리기도 하고, 잊히기도 하는데 이 현상을 구슬을 ‘청소’한다는 영화적 표현으로 재치 있게 표현했다. 또한 ‘추상적 개념’은 우리의 점점 간소화되는 사고 정리 과정을 보여주며, 라일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귀여운 캐릭터 ‘빙봉’은 우리가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저마다의 마음속에 간직했던 동심의 세계를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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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핵심 기억’과 ‘섬’이라는 설정은 사람마다의 특징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몇 십 년을 살아가며 삶의 터닝 포인트, 혹은 오래도록 남아 나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핵심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미술이, 누군가에게는 축구가, 누군가에게는 요리가 삶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어린 라일리에게는 가족과 우정, 어린 시절부터 지속해온 하키과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섬으로 형성되어 라일리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런 스토리 구성 역시 삶을 살아가며 특별하게 가치를 두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오래도록 남은 기쁜 기억이 한 사람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침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인사이드 아웃은 단순히 애니메이션으로 흥미롭게 보다가도 극의 짜임에 감탄을 하게 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감정의 변화, 기억의 상실과 같은 현상들이 재미있게 애니메이션의 요소로 풀어낸 것에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공감의 마음까지 사로잡게 되는 것이다. ‘저렇게 청소된 것처럼 잊혀진 기억들도 있었지’, ‘나도 버럭이가 만진 구슬이 많았던 것 같아’, ‘지금은 슬픔이가 만진 구슬이 많을 거야’와 같이 나의 상황에 이입하게 되었다.


'기쁨이'와 '슬픔이'의 행방불명으로 인해 중요 섬들이 무너지고, 기억 구슬의 색채가 기쁨이의 색과 멀어지자 라일리의 기억 저장소는 위태로워진다. 그 과정이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는 것과 같기도 했다. 마냥 행복하고 풍족했던 어린 시절을 넘어 친구와, 학교에서 고민이 생기고 까칠함과 분노가 많아지는 라일리를 보며 성장 과정에서 한 번씩 겪는 사춘기 시절을 구슬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구슬이라는 장치, 다양한 감정 조종체 캐릭터들을 내 삶에 적용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떤 구슬을 쌓으며 살아왔나, 나는 기쁨이가 리더가 되는 삶인가 슬픔이가 리더가 되는 삶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 기쁨이와 슬픔이가 컨트롤 본부에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인사이드 아웃'은 또다시 교훈을 하나 던진다.

 

 

 

모든 감정은 필요하다. 슬픔 역시도.


 

'기쁨이'는 '슬픔이'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고 늘 생각했다. '슬픔이'가 구슬을 만들 수 없도록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며 그것이 라일리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기쁨이'는 컨트롤 본부에 돌아오는 힘든 여정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슬픔이'가 라일리에게 선사하는 위로에 대해서 말이다. 새로운 친구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저 그리워만 하고 있던 라일리는 남아있는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에 의해 감정이 좌우되기만 한다. 기쁘지도 못하고 슬픔을 느끼지도 못한 채 반항아처럼 까칠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모든 것에 임한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그때 컨트롤 본부로 돌아온 슬픔이가 라일리의 구슬을 만들어내자 라일리는 부모님과 함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슬픔을 고백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때론 슬픔을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펑펑 울어 속을 비워낼 순간도, 마음속의 앙금을 눈물로 승화시킬 순간도 분명 필요하다. 라일리에게 '슬픔이'가 다시 생기자, 이사를 오면서 겪은 힘든 일들을 씻어내고 가족들과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늘 기쁨만이 존재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처럼 다섯 가지의 감정, 그 이상이 존재한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희로애락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다채롭게 겪는 것도 인간으로서 누리는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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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가 만들어준 따뜻한 눈물과 위로는 라일리가 겪은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힘들지 않게 해주었다. 처음에 영화를 보면서는 그저 나에게 ‘슬픔이’와 ‘버럭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기쁨이’는 많지 않다고 느꼈다. 영화가 점점 고조되자 나도 모르게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감정 조종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들이 아직 나를 미숙하게 다루는 것은 아닐까? 다양하게 찾아오는 감정들이 감사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모든 것들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사이드 아웃은 오히려 어른이 되어 보면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자신의 섬은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색의 구슬이 많은 사람인지, 자신 안의 '기쁨이'와 '슬픔이'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영화를 보며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보다 행복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디 내년에는 '기쁨이'가 만들어낸 구슬이 많은 한 해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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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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