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비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가에 대하여 [사람]

예술가에 대한 편견과 자기세뇌
글 입력 2019.12.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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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울프의 문제작, <현대미술의 상실>의 초반부에는 필자가 화가와 수집가의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이들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입장은 뭐랄까, 좀 더 복잡했다. 그들은 보헤미안으로서 상류사회의 살롱을 떠났지만 상류사회의 세계마저 떠난 것은 아니었다. 부르주아지로부터 떠날 생각이 있다면 화구를 챙기고 타히티 섬이나 아니면 최소한 브르타뉴로라도 떠나야 한다.


그러나 고갱 이외에 누가 브르타뉴만큼이라도 갔는가? 아무도 없다. 나머지는 모두 몽마르트르나 몽파르나스 언덕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무슨 얘기냐면 샹젤리제에서 3킬로미터 이상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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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술가들의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지적한 것은 흥미로웠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정신상태를 표면적으로는 지향하지만, 사실 내면적으로는 ‘보호의 춤’과 ‘소원 성취’의 양가적 입장 모두를 차지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글로 짚어내기 미묘한 예술가들의 사정을 낱낱히 냉소적으로 짚어낸 것이 <현대미술의 상실>이라는 책이 처음 내게 준 강렬한 인상이었다.


현대 예술의 특징 중 하나로, 예술가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창조성을 가진 작가로서 승격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혹은 주문을 받아 대상과 비슷한 사물을 그려내야 했던 예술적 형식을 취했던 것과는 달리, 현대 예술은 작가의 독창적인 정신의 표현과 시대의 산물이 엮어져 생산된 것이라는 관념이 퍼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서 예시로 들고있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의 화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현실적으로, 리얼하게 옮기는 것에 집중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경험에 비추어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방법론을 탐구했다. 물론 이와같은 예술가의 승격이 부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모순적인 예술가들만의 문화를 만드는 것에 일조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작가로서의 예술가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적 의식을 만들어냈다. 요컨대, 앞서 언급한 모순적인 예술가들의 문화가 그들의 사생활까지 이르는 한편 대중에게도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예술가는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 다시 말해 대중과는 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것이 이들의 사생활까지 침범했을 때 그들이 더욱 위대한 예술가처럼 보인다’는 또 다른 결의 문제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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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말로 예술가는 마약 한번 쯤은 해줘야 하며, 자해 경험이 있어야 하고, 남들과 소통이 쉽지 않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 한 때 <다크나이트>에 출현했던 배우 히스 레저가 생을 마감했을 때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가 조커라는 배역에 너무 심취해있어서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유행처럼 퍼졌었다. 요절한 젊은 배우들에게는 이와 같은 신비화된 이미지가 널리 퍼져 그들을 더욱 “예술가처럼” 보이게 하는 것에 일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러한 배우들, 가수들, 예술가들이 언급된 이유로 자신을 해치고 있었느냐의 진위여부가 아니다. 대중에게는 그러한 예술가에 대한 허위적인 인식이 널리 퍼져있고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담론화되고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특히 나는 예술학교에 다니면서 이러한 류의 오해들을 자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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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이러한 예술가들에 대해 덧씌워진 신비로운 프레임이 과연 긍정적일까에 대해 다시금 묻게 된다. 나역시도 평소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피카소가 1881년에 태어나 1973년에 죽었다고 하면 “예술에 심취해있지는 않았나보네”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적한 보호의 춤과 소원 성취의 모순적인 예술가의 태도는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예술가는 이러한 무의식적인 담론장에 의해 신비로운 이미지까지 덧붙여져야 했다. 겉으로는 크게 성공과 언급에 신경쓰지 않으면서 내면으로는 그것을 강력하게 원하고, 동시에 자신의 사생활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들여와야 하는 것 말이다.

 

고갱과 고흐, 고뇌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신비로운 무용담을 들으며 예술가의 성격을 멋대로 일반화해버리는 무의식적인 담론장은 오히려 더 강력해지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물음이다.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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