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지만 취업은 하고싶어] 배고파요

#밥좀주세요
글 입력 2019.12.24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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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배고파요

#밥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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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다. 집에는 먹을 게 없고, 시켜 먹기에는 돈이 없어서 냉동만두로 저녁을 대충 때웠더니 먹은 지 3시간만에 배가 고프다. 돈이 없다. 하고 싶은 건 많고, 해야 하는 건 더 많은데 돈이 없다. 알바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시간이 없다. 변명 같겠지만 이는 같은 취준생 입장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진실이다.


며칠 전까지 대학교 마지막 학기생이자 취준생이었던 나는 하루를 초 단위로 나눠 살았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과제에 퀴즈, 팀플, 시험, 자소서, 면접준비 때문에 일상의 작은 틈에 일을 우겨 넣지 않으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옥철에서 핸드폰으로 PPT를 보며 그 날 있을 퀴즈를 준비하고, 차분히 앉아 1분 자기소개를 외울 시간이 없어 음성으로 녹음한 후 이동할 때 반복해서 듣는 식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을 벌 시간이 없었다. 인턴을 할 당시 모아 놓은 돈마저 다 써버리자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알바할 시간마저 없을 정도로 바쁜 상황은 내 잘못으로 인해 맞닥뜨린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다가 ‘죄송합니다’가 밑에 깔린 ‘감사합니다’를 내뱉으며 야금야금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로지 나였다.


용돈 받는 상황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자 식비를 아끼기 시작했다. 한 끼에 5000원이넘는 후문의 개인식당들은 최대한 피했고, 무조건 4000원대의 학식을 찾았다. 4000원마저 없으면 편의점 김밥이나 1900원짜리 고로께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살이 빠졌고,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다고 걱정을 했다. 나 스스로도 ‘이러다 정말 건강 상하겠다’ 싶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패배감이 들었다. 이 상황은 정말이지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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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2019년 새해 목표는 ‘삼시세끼’였다. 더도 덜도 말고 내가 그저 삼시세끼를 잘 챙겨 먹기를 바랐다. 2018년, 휴학과 함께 1년여간 알바를 하며 끼니를 거르는 것에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할 일을 하기 위해 카페와 영화관의 오픈 알바로 1년간 근무했었다. 아침 7시, 혹은 7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침은 거르게 되었다. 6시간에서 8시간 정도 근무했는데 영화관 알바의 경우 그 중 30분의 휴게시간이 있었다. 이 30분 안에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 문제는 그 30분 안에 모든 이동시간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휴게카드를 찍고, 휴게실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유니폼을 입고 내려가면 안된다), 1층 편의점으로 내려와, 음식을 사고, 다시 올라와, 음식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 휴게카드를 다시 찍는 일을 30분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 만약 너무 바빠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1층까지 내려갈 기력마저 남아있지 않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그대로 점심까지 거르고 탈의실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키 158cm의 숏다리인 내가 다리를 뻗으면 반대편이 닿을 정도인 그 좁은 공간에서 말이다.


이 짓을 몇 주 반복하다 보니 컨디션에 문제가 느껴졌다. 해서 나는 출근할 때 1층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가지고 가는 전략을 시도했다. 아침에 사온 삼각김밥은 휴게시간을 맞을 때에는 이미 사물함 안에서 차갑게 식은 후였지만, 그 마저도 감지덕지했던 나는 냉동(?) 삼각김밥을 입 속에 밀어 넣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 복학이 다가오고 알바를 그만둘 때쯤에는 편의점 음식에 진저리가 난 상태였다. 나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허기를 느끼는 상태를 스트레스 그 자체로 학습했고, 그로 인해 알바를 그만둔 후에도 배가 고프면 우울해지고 예민해졌다. 하여 다가오는 2019년을 맞으며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식사’는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이닌 스스로를 대접하는 시간이라고. 그러니 2019년에는 제발, 간단해도 건강한 음식으로 삼시세끼를 챙겨 먹자고 말이다.


난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상황이 나에게 어떤 심리적/체력적 고통을 안겨줄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되도록 피하고 싶었고, 이는 내가 공백기 없이 바로 일자리를 구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취업이라는 것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나는 또다시 예상했던 구렁텅이로 슬슬 걸어 들어가고 있다.

 

***


며칠 전 팟캐스트를 듣다가 ‘청년빈곤’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누가 밥을 굶어’라고 하지만 실제 대학생들을 만나고 취재했던 두 기자는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이 밥을 굶는 현실을 마주하고 놀랐다고 했다. 에브리타임과 같은 대학 커뮤니티에는 ‘건빵을 물에 불려 먹으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와 같은 정보가 일상적인 ‘꿀팁’이 되어 공유되고 있었다. 두 기자가 만난 대학생들은 돈이 없어 밥을 거른 적이 ‘있다’고 답하면서도, ‘내가 이런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난 특별히 가난하지 않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그다지 ‘가난’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난하지 않음에도 밥을 굶는 청춘들이 이렇게 많을 만큼 청년빈곤이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청년빈곤이 다른 사회적 계층의 빈곤과 비교했을 때 갖는 특이점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춘들은 돈도 없지만, 시간도 없다.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갖추기 위해 뛰어다니다 하다 보니 끼니를 거르게 되고, 돌아보니 주변 친구들도 나와 처지가 비슷하니까 끼니를 거르는 것이 그다지 심각한 일이라고 인식을 못하는 것 같다. 정정하자면, 청춘들은 돈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 무엇보다 밥을 먹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다시 팟캐스트 얘기로 돌아가면, 청춘을 위해 무료 급식을 운영하는 교회가 있다고 한다. 가슴 따듯한 소식이지만 동시에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청춘’과 ‘무료급식’이라는, 왠지 만나지 말아야 할 두 단어가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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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젊은 애들한테 무슨 무료급식이 필요하냐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뭐, 할 말이 없다.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의견을 피력해도 소 귀에 경읽기가 되지 않을까. 다만 내가 그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단 한가지다.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느냐, 더 열심히 해라, 노력하면 언젠가 된다-는 그런 말 말고, 그냥 밥 먹었냐고 물어봐 주시길. 본인들에게 밥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종종 까먹고 사는 미숙한 젊은이들이, 그 말을 통해 ‘아차’ 싶을 수 있도록, 단지 그 한 마디만이라도 던져 주시길. 요즘 것들이 버르장머리 없고 바라는 것도 많다고 하지만, 어쩌면 요즘 것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그 한 마디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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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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