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동시대적인 것은 무엇인가 -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 [시각예술]

오늘날의 미술 전시에서 필요한 것
글 입력 2019.12.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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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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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미술관들은 스스로를 동시대미술을 다룬다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동시대미술은 대략적으로 1970년대 이후의 미술을 통틀어 이르는 시대적 개념에 가깝다. 동시대미술관에서 지칭하는 동시대미술을 그저 시대적 개념으로만 본다면,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동시대미술관은 충분히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미술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미술관에게는 미술을 어떻게 연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전시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감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의견은 결국 동시대의 현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 강의에서 ‘동시대미술관’에 관해 발표를 준비하며 클레어 비숍의 저서 <래디컬 뮤지엄-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동시대미술에 대해 전통을 포기하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성 모두로부터 멀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그는 역사주의의 대안으로 등장한 현재주의에 대해 언급하지만, 현재주의 역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간단히 말하자면, 역사주의란 객관적인 과거의 서술에 집중하지만 현재주의는 역사를 승자의 기록으로 간주하며 역사학자들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들의 주장 속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동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숍은 기존의 현재주의와는 달리 시선을 항상 미래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은 오늘날의 동시대미술관에 대해 예측이 어려운 현재의 모순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동시대미술관이란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편협한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읽어내서는 안 되며, 현재주의의 입장에서 동시대미술관은 스스로의 시선이 현재의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오늘날의 맥락에서 새롭게 발굴된 과거의 기억들이 거시적 흐름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시대의 관점에서 앞날의 지평에까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동시대성과 <타임리얼리티: 단절,흔적, 망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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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러한 생각을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렸던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展에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이 전시는 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지원 사업에 선정된 전시로 이은주 예술감독이 기획하였으며 이명호, 한승구, 금혜원, 민예은, 프로젝트 밴드 스텝, 극단파수꾼, 정정주, 최찬숙, 더 무브, 호추니엔이 참여하였고, 코리아나미술관 측에서는 공간을 후원하였다. 그리고 전시 서문에서는 참여 작가와 단체의 개별 작업에 따라 시대적 해석은 재조직되며 과거와 현재의 단절은 미디어, 연극, 무용 등 다매체를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연결돼 전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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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철저히 가려졌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무지했던 영역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점이다. 금혜원의 <할머니의 노트>는 작가 본인의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작성한 일기를 소설 형식으로 다시 써 내려간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원치 않는 결혼 생활 속에서 얻은 상처들, 그로 인해 좌절해야 했던 피아노 연습 등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다. 일기장과 소설책 속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의 몇몇 부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만, 한편으로는 몇 마디 문장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상황까지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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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예은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사용한 총 ‘FNM 1900’를 향한 과거와 현재의 시선을 병치시킨다. 이 총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과는 달리, 이 작품은 그 총이 오늘날 어떤 시각으로 다루어지는지에 중점을 둔다.


총기소유가 허가된 국가에서 업로드한 이 총의 사용법, 이 총의 디자인을 이용한 아트상품 등 현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과거의 오브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막연한 과거의 침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는 상반된 시선은 오히려 과거의 의미에 대한 재사유를 촉진하며 앞으로의 시선은 어떠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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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찬숙의 <밋찌나>는 사진이나 문서 곳곳에 존재하지만 단 한 명의 증언자도 존재하지 않는 버마 미치나 지역의 위안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 자료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 영상에서 구현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불명확하며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각자가 그곳에서 본 풍경, 당시의 나이 등에 대한 증언은 영상 속 인물들마다 미묘하게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그곳에서 생명성을 지니고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결국 역사적 서술의 빈틈을 파고들며 알 길이 없는, 그러나 분명 존재했던 개인의 서사를 현실화한다. 그리고 이는 오직 예술에서만 가능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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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시를 마무리하는 호추니엔의 <아시아비평연구사전>은 직접적으로 동남아 역사에 대한 주목을 요구한다. 이 작품은 하이브리드적인 온라인 영상과 함께 동남아 역사 속에서 다루어지는 키워드를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빠르게 나열한다. 그러나 영상 속에서 언급되는 키워드들이 우리에게 마냥 낯선 까닭은, 동남아 지역은 식민지배에 의해 세계 지도에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독립적인 학문으로서의 동남아 역사연구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금까지 매장되어 있었던 타국의 역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를 요구하는 태도는 역사의 주도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이렇듯 <타임리얼리티: 단절, 흔적, 망각>전은 능동적으로 과거의 기억들을 현재와 연결 짓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미래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지금껏 조명 받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주목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 두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무리 그 방식이 새로울지라도 결국 과거 회생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이 전시의 마지막 카테고리에서는 난민 이슈와 탈국가주의 등 흔한 사회 이슈를 내세운다. 그럼에도 이 전시가 본인에게 유의미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그들의 적극적인 태도에 있다. 전시의 기획과 작가들의 작업 과정은 동적으로 주제의 해석에 뛰어든다는 점에서 단순한 회생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오래 전의 과거, 대한제국시대부터 시작된다.


또한 그들은 ‘공인된’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뿐만 아니라 잊혀 버린 개인, 집단, 국가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함께 제시한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동시대, 곧 동시대미술관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나아가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미래에는 이 전시의 기록을 돌아보며 현재, 미래의 기준에서는 과거의 시선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것들을 제시하였는지를 인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비숍의 <래디컬 뮤지엄-동시대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를 읽고 이 전시를 관람해 보니 머릿속에 남는 질문은 '동시대미술관, 동시대적인 것은 무엇인가?'였다. 명증하게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고 정해진 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의와 숙고는 결국 현재와 미래에서 미술에 대해 고민할 때, 그 바탕이 될 수 있는 유의미한 담론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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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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