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별 과제 잔혹사 [사람]

중간고사가 끝난 후 과제시즌에 우리는 지옥을 느껴 간다.
글 입력 2019.12.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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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말에 성적표를 받기 위해서는 2번의 시험을 치고 1번 혹은 그 이상의 과제를 해야 한다. 중간고사 40%, 과제 20%, 기말고사 40%의 비율로 총 100%의 성적이 계산되었고,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이 비율은 대학생인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중고등학생 시절엔 한 학급 안에서 조원이 결정되기에 서로를 대하는 어려움은 꽤 낮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학생들 간의 공부에 대한 욕심, 과제에 대한 열의 차이가 대학교에 모인 학생들보다는 컸다.


아무래도 대학교는 수능시험을 치고 비슷한 성적대의 학생이 모여 입학하지만, 중고등학교의 경우 랜덤 배정으로 입학하고 한 학급 안에서도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같이 존재할 수 있기에 수준별 수업이 불가능했던 탓이겠지. 어린 시절에도 조별 과제가 주어졌을 때 과제에 있어 개인 할당량 차이로 속상했던 기억이 물론 있지만, 대학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세상은 넓고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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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한 첫 학기는 학교에서 강제로 시간표를 짜줬던 걸로 기억한다.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적응 기간과 대학 수업 체험기를 제공함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흥미있는 수업을 선택해서 듣기보단 정해진 시간과 수업을 강제성안에서 수강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맞이한 다음 학기엔 진정한 자유 속에서 시간표를 직접 짤 수 있었다.

 

조별 과제가 있다고 적혀진 교양 수업이었다. 조별 과제를 되도록 피하라는 선배들의 조언과 매스컴에서 다룬 잔인한 일화들도 알고 있었지만 모든 일은 본인이 직접 겪어야 안다고 하지 않는가. 때때론 소수의 사례가 크게 비치기도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동기들과 함께 부담없이 조별 과제가 들어있는 수업을 수강 신청했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끝난 후 과제시즌에 우리는 지옥을 느껴 갔다.

 

교수님이 임의로 선정한 랜덤으로 이뤄진 조였다. 같은 수업이지만 조가 정해지고 나서야 마주한 조원들과 인사를 처음 나눴고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을 개설하며 각자 할 일을 분담했다.


딱 한 명이 문제였다. 우선 그는 수업에 나타나질 않았다. F학점만을 피하기위해 출석 일수만 최소로 채우는 사람으로 추정되었다. 그룹채팅방에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사람들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의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과제 마감일까지 그는 조에서 골칫거리였다.

 

당시 과제는 PPT를 완성해 마감일까지 제출한 후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자료 조사도 안 하고 단체 카톡방에서 응답도 없고 수업시간에 출석하진 않고.. 동갑 나이 학생이 전부였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비하면 대학 교양 수업시간에 만난 이 사람은 나이도 새내기보다 4살 많았고 그래서 느껴진 거리감도 새내기 입장에선 단호하게 강경대응하기 어려운 이유에 해당하기도 했다.

 

같은 조원들은 암묵적으로 과제 제출자에서 그 사람 이름을 빼기로 했다. PPT 마감일 하루 전이었다. 막바지 수정을 작업하던 중 문제의 그 사람이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료 조사한 거 메일을 지금 보냈으니 확인하라는 말이었다.

 

마감일 하루 앞두고 PPT 완성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기에? 자료 조사를 이제야? 오히려 괘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론 어떻게든 과제 제출자에 이름을 올리려 노력하는 게 느껴져서 애잔하기도 했다. 메일함엔 백과사전에서 관련 키워드 설명을 복사해서 붙여 넣은 문장 몇 줄, 그리고 관련 이미지 한 장. 게다가 A4 한 면도 다 차지 않는 분량의 파일이 와있었다.

 

숨이 막히는 답답함과 어이없음을 참으며 나는 그에게 반문했고 그는 내 말에 답변했다. “제가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자료조사도 지금 보내고 면목이 없네요.. 괜찮으시다면 완성된 PPT 발표는 제가 할게요!”

 

자료 조사? 자료 조사를 하는 타이밍도 엇나갔고 내용조차 성의 없는데,, 그러고선 완성물을 자기가 발표한다고? 수업 시간에 제대로 도착해서 출석은 할 수 있는 사람일까? 단상에 서서 수많은 학생 앞에서 발표는 이어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한 적 한 번 없으면서 발표 역할을 본인에게 달라니. 완성되어버린 밥상을 본인에게 내놓으라는 뜻과 뭐가 다른가.

 

그렇게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이번 과제에서 본인의 할당량이 없는 거 같다고 말을 전했다. 자료 조사도 했고 내 태도에도 미안함이 들어있는데 그리고 전체 성적에서 과제 비율이 얼마나 된다고 본인에게 너무 야박한 게 아니냐며 적반하장하는 태도를 보고 나서 나는, 같은 조원은 모두 할 말을 잃었었다.

 

 

 

누굴 위한 과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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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는 내가 자진해서 했다. 그 사람 이름도 그냥 뺐다. 될 대로 되라지. 당시 뒤도 돌아보기 싫었던 걸로 기억난다. 학문의 장인 대학교에서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학창시절 노력 끝에 입학한 대학교에서 이게 무슨 일인지. 한 발 물러서서만 듣던 조별 과제 잔혹사는 예상보다 훨씬 처참했다.


성인으로의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개인주의 가치관이 사회에 팽배하다곤 하지만 협동과 노력이 필요한 순간에선 모두가 뭉치는 게 맞다. 글쎄. 개인 과제였다면 이런 성격의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미지수지만 확실한 것은 누굴 위한 과제냐는 거다. 또 성실한 학생과 적반하장인 학생에게 모두 이런 일이 조별 과제 해프닝으로 여겨진다는 게 마음 아팠다.

 

교수님들은 협동심과 커뮤니케이션, 사람 간의 대화법을 배우고 또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 마주하게 될 프로젝트를 20대 초반에 체험할 수 있다는 목적에서 조별 과제를 굉장히 선호하신다. 또한 대형 강의의 경우 학생들이 100명 이상일 수도 있는데 100명의 과제를 개별적으로 다 평가하는 것보단 몇 개의 조로 나눠져 있어 점수 매기기도 편하고 나름 기준과 평가도 효율적이라는 장점에서 채택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유는 그럴듯하지만 회사에 취업해 프로젝트를 수행할 나이도 되지 않은 미숙한 학생들에겐 어려운 과제를 맡기는 게 아닐까라는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기에 이런 공동의 작업을 통해 함께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석차와 학점이 달려있는 학생들에겐 마주하기 무거운 대상일수밖에 없다.

 

고학년이 된 내가 현재에 그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과거보단 유연하게 해결하고 강경 대응이 쉬웠겠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새내기 시절보다 나이가 많아진 지금에야 최악이었던 사건이 있었다며 안줏거리로 말할 수 있는 일화 하나가 되었지만 말이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로 팀별 업무를 한다면 연봉과 개인 커리어가 걸려있기에 누구라도 대학 과제를 대하는 심정으로 풀어갈 수는 없지 않을까. 혹은 이 또한 조별 과제의 연속선에서 나오는 태도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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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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