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유희] 이것도 예술이라고? 1탄: 게임도 예술이 되는 세상, FPS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설마 게임을 들고 올 준 모르셨죠?
글 입력 2019.12.1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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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은 좀 좋지 않지만, 미디어아트의 예시.

2018년에 개최된 평창올림픽 홍보 전시에 전시된 

차동훈 작가의 'Chorus'라는 작품.

 

   


1. 동시대 미술의 현장


 

1970년대 이후의 미술은 다원주의라는 모토와 함께 무엇이든 작품의 재료로 쓸 수 있을 것처럼 창작의 장을 어지럽혀 놓았다. 어찌 보면 이 칼럼의 근본적인 출발점,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삐딱한 문제의식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시대 미술의 등장한 데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호의 해방”이 혁혁한 역할을 해냈다. 즉 작품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캔버스인 기표와 이것에 불어넣는 작가의 창조적인 구상인 기의를 더한 (이는 소쉬르의 기호학에서부터 논의된, 현대예술의 작품 구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다.) 기호라는 형태를 낱낱이 부수고 기표만이 난무하게 된 상황이 초래된 탓이 크다.

 

작가의 독창성이 가미되지 않은 물리적인 대상(기표)에 불과할 지라도 예술로 호명할 수 있다는 논의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에서 주류를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적인 것에 대한 회의적이고 공격적인 입장들이 전면에 대두했고, 이것을 부수어(!) 새로운 예술적인 무언가를 찾으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미술 사조가 바로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이다. 1970년대 이후의 미국 미술을 정의하고자 한 시도에서 기원한 사조이며, 오늘날의 현대미술 역시 총체적으로 포괄할 때는 이 명칭으로써 표현한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의 작품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 영역은 뉴미디어를 활용한 융합예술 쪽이다. 다만 백남준과 같은 세계적인 현대미술가가 한국에서 등장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미술을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작품을 보자마자 저런 게 대체 왜 예술이냐, 요즘은 아무나 예술가 행세를 할 수 있는 거냐, 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들이 일상에 만연한 상태다. 아직 나를 포함한 대중들은 아무리 다양성과 독창성이 마음껏 보장되는 사회더라도 옛날의 재현적 예술작품들에 훨씬 익숙하기 때문이다.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초상화나 풍경화, 조금 더 나아간다면 모네나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렸던 작품들 정도. 이렇게 현실 세계를 눈앞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본뜨는 작품들이 아직까지 우리에겐 더 익숙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것에 더 익숙하건 말건 예술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행한다. 우리가 멈춰 서서 초상화 몇 점을 감상하는 사이에 예술은 이제 미디어 예술이라는, 우리로선 예술로 받아들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개척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것이 현실이다. 동시대 미술이라는 미술 사조가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되는 시점에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인 거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제까지고 인상주의 정도에서 만족하며 이후의 예술들을 비예술로 치부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의 칼럼이 삐딱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이유는 이렇듯, 보편적으로 예술이라 회자되는 틀 너머에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마구잡이로 당신 앞에 들이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대의 문화예술은 나도, 당신도 생각하듯 아주 어려운 분야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기존의 것들만 향유하기엔, 다채로운 가능성들이 너무나도 풍부하지 않은가.

 

이번 글부터 나는 총 세 개의 반항적인(?) 질문을 내던지고자 한다. 일명 “이것도 예술이라고?” 시리즈다. “요즘은 이런 것도 예술이라는데요!”에 해당하는 세 가지 사례들을 ‘사례-해설’이라는 틀과 함께 총 여섯 편의 글로 분석하고, 위에서 언급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을 필두로 진행되는 학술적인 담론의 현장을 면밀히 살피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번 편은 첫 번째 사례의 ‘사례’ 편에 해당한다. 시일 내에 연재할 다음 이야기는 이 글의 ‘해설’에 준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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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임의 내러티브도 예술이 된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게임의 근본적인 특성은 장르를 불문하고 오락성에서 기인한다. 게임을 할 때 이용자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재미다. 게임이 문화콘텐츠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미를 유발하여 이용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게임에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재밌기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존속시키기 위한 사회제도와 윤리규범, 인권에 대한 논의가 날이 갈수록 다원화됨에 따라 대중문화콘텐츠에는 오락성 이상의 것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개연성 있는 서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콘텐츠는 단발성의 재미뿐 아니라 특정한 주제의식까지 갖추어야 했다.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르 중 하나가 게임이다. 단순히 오락성과 시청각적 자극성에 의존하는 게임은 시장에서 좋은 평을 들을 수 없다. 예컨대 2016년 여름에 출시되고 100일도 되지 않아 서비스를 종료한 FPS 게임 “서든어택2”를 떠올려보자. 이 게임이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게임캐릭터의 외향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전작에 비해 나아진 것 없는 내러티브와 전투 서비스의 미흡한 운영과 더불어 캐릭터의 소모성을 부각시킨 기획은 이용자들의 불만과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게임을 바라보는 이용자의 관점이 변화했음을 암시했다. 이용자의 관점은 게임을 오락의 매체물이 아닌 예술적인 결과물의 일종으로 대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오락성 너머의 무언가에 대한 요구는 오늘날 문학이나 영화에서 접할 수 있는 서사성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이용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듯,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치밀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길 원했다.

 

이용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게임에도 플롯을 삽입해야 했다. 플롯의 설득력을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게임 바깥의 세계에서 삶을 꾸리는 이용자가 일상적으로 접하지만 가볍지 않은 소재를 택하는 것이었다. 이 조건들에 부합하는 소재는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상식적인 차원의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공공연하게 문제시 되어 온 이데올로기의 문제들을 비판하는 태제. 이를 플롯과 인물들의 성격 구조, 사건들의 체계적인 배열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진부하지 않게 풀어낸다면 이용자로부터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다는 극찬을 이끌어낼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이래셔널 게임즈에서 2013년에 발매한 FPS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다. 게임의 플롯은 20세기 초에 미국을 휩쓸었던 국수주의적 사고방식과 백인 우월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다.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플롯에 서사적 복선을 암시하는 뛰어난 미장센과 참신한 세계관, 명확하고 신선한 반전 등이 가미되어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의 이용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서사적 예술성을 기대한다. 이는 주로 게임의 근본적인 특성인 오락성과 문학적 플롯을 융합하여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하는 문화 전반에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예술적인 차원으로 내러티브를 승화시키는 것으로 발현된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생활에서 떼어낼 수 없는, 규범과 도덕의 차원에서 아주 일상적인 영역인 동시에 인간의 치부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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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시 <컬럼비아>의 컨셉아트 중 하나.

이렇게 보니까 엄청 평화로운 도시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이건 총 쏘면서(...) 나라를 도륙내는 FPS 게임이다.



    

2.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플롯의 구성과 내러티브의 전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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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이 어려워서 한글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보았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전반적인 플롯 구성을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평행우주 세계관을 채택함으로써 두 개 이상의 다중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본 작품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대원칙, 즉 배경에 해당한다. 배경은 시나리오 작가 및 연출진에 의해 창조되는 제한된 세계를 전제하게끔 작용한다. 게임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과정 전반의 시공간적, 창조적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원칙 아래에서 게임의 진행을 가능케 하는 작품의 스토리가 발생한다. 다음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플롯이 생긴다.

 

그리고 이 플롯을 어떻게 이용자에게 전달할 것인지,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게임 속 등장인물의 성격과 인물이 경험하는 도발적 사건의 종합을 통해 제시한다. 먼저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물의 성격과 성장 배경이 세밀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인물이 도발적인 사건과 조우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이 극대화되거나 내면적 갈등을 일으키는 등의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진행되는 것이다. 본 게임은 이렇듯 스토리의 배경(대원칙)에서 스토리가 발생하고, 발생한 스토리를 체계적으로 구성한 후에 이용자에게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는 작업이 아주 짜임새 있게 이루어지는 예술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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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컨셉아트. <배틀십 베이(Battleship Bay)>라는 장소.


 


3. ① 첫 번째 단계, 스토리의 배경(창조적 한계의 원칙)과 스토리 발생


 

본 작품이 차용한 평행우주 세계관은 스토리의 대원칙을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사설탐정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부커 드윗은 작품의 초반부에서 의문의 남녀로부터 컬럼비아에 있는 한 소녀를 데려오라는 의뢰를 받고 공중도시인 컬럼비아로 떠난다. 그는 컬럼비아에 도착해서 그곳의 지도자인 재커리 헤일 컴스탁을 광적으로 따르는 시민들을 만난다. 또한 그곳에서 초반부에 만난 의문의 남녀를 다시 만나 동전던지기를 제안 받은 결과 동전의 앞면(head)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런데 그 후 남녀가 들고 있는 칠판을 살펴보면 뒷면에는 표시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고 앞면에만 수십 개의 표시가 적힌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그는 심부름꾼으로부터 77번을 절대 뽑지 말라는 전보를 받고 길가를 걸어 다니며 거짓된 양치기를 조심하라는 플랑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손등에는 거짓된 양치기를 상징하는 AD라는 징표가 붉은 글씨로 적혀져 있었을 뿐 아니라 제레마이어 핑크의 추첨 행사에서 77번 공을 뽑게 되어 그것을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 커플에게 던지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이 요청에 응하든 거절하든 그는 손등 위의 징표를 경찰에게 들키게 되고 반역자로 지목되어 컬럼비아 내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여기까지만 서술해도 부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정말 기의하게 여겨진다. 그는 과연 우연히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을 고르고, 우연히 77번 공을 뽑지 말라는 전보를 받고, 우연히 거짓된 양치기라는 슬로건을 발견하고, 우연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등 위에 적혀 있었던 AD라는 징표를 발견한 것일까?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인과적으로 사건이 연결된 결과다. 부커 드윗과 재커리 헤일 컴스탁은 각기 다른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동일인물이기 때문이다. 부커의 손등 위에 적힌 AD는 그가 의뢰를 받고 찾아와야 했던 여자인 엘리자베스를 상징하는 이니셜이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안나 드윗(Anna Dewitt)이며 부커 자신의 친딸이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컬럼비아에서 어떤 여자를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커의 기억은 그가 또 다른 평행세계인 컬럼비아로 넘어오면서 왜곡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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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컴스탁'

 


컬럼비아로 넘어오기 전, 즉 십 년도 전에 그는 자신이 도박에 빠져 자신의 딸을 의문의 남녀에게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나중에 후회하여 딸을 다시 데려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때 딸을 되찾기 위해 의문의 남녀에게 다시 돌아갔을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또 다른 차원세계에서 넘어온 컴스탁이 자신의 딸을 건네받고 넘어가려는 상황이었다. 딸을 다시 데려오려고 아이에게 손을 뻗었지만 아이의 새끼손가락 일부만이 잘렸을 뿐 아이는 컴스탁과 함께 또 다른 평행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정리하자면 부커는 의문의 남녀로부터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딸을 데려와야 했고 그 딸은 컴스탁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지목된, 차원이동의 능력을 지닌 엘리자베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컴스탁은 부커가 엘리자베스를 데려가기 위해 그 자신의 세계에서 컬럼비아로 넘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전부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엘리자베스를 데리러 올 부커의 이야기가 수백, 수천 개의 평행세계에서 전개될 것임을 알고 있었고 거짓된 예언을 퍼뜨려 그를 거짓된 양치기로 몰아가 죽음에 빠뜨리려고 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스토리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왜곡된 부커의 기억을 되돌려 부커로 하여금 모든 진실과 함께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직시하게 하여 그의 선택으로 양산된 컴스탁의 국수주의적 평행세계들을 제거하고, 잘못된 세계관을 바로잡는 것이 본 작품의 스토리다.


또한 이후의 스토리 전개 전반에서 평행우주 세계관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창조적 한계의 원칙에 따르면 작품 속의 세계는 철저하게 작가나 연출진에 의해 창조적으로 만들어진다. 이 세계는 작품 바깥의 현실 세계와 명백히 분리되어 있다. 시나리오 작가가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에서 창조한 세상은 현재의 우주 외에도 수많은 가능성으로 분화된 동일한 형태의 우주가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공간이다. 작가의 설정에 따르면 인물들은 다양한 평행우주를 넘나들면서 이데올로기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부패함을 고발하며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작가가 설정한 세계, 다시 말해 작가가 임의로 규정한 가상적이면서 창조적인 한계 내에서 인물들이 따라야 할 숙명이다. 이러한 결론은 창작자가 마련한 판 위에서 스토리의 근본적인 성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가가 작품 내의 최상위 원칙으로 상정한 평행우주 세계관에 따라 인물들은 작가에게 조종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가에 의해 마련된 필연성, 인과성에 의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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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 컨셉아트를 좋아해서...

 

 


4. ② 두 번째 단계, 플롯을 통한 스토리의 구성


 

이제 발생한 스토리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요소는 이야기 삼각형으로 불리기도 하는 플롯이다. 플롯은 시나리오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논리적인 패턴을 제시하고 배치하기 위한 요소를 일컫는데, 주로 인과관계가 뚜렷한 배치를 지향한다는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플롯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삼각형의 꼭짓점 각각을 이루는 항목들은 1)고전적 설계(아크플롯), 2)미니멀리즘(미니플롯), 3)반구조(안티플롯)다.


고전적 설계에 가까운 플롯일수록 인과성이 명백하고 닫힌 결말로 끝난다는 특징이 두드러지고 사실성이 일관적으로 유지된다는 점도 뚜렷해진다. 주로 능동적인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 다음으로 플롯이 미니멀리즘에 가까울 경우 닫힌 결말보다는 열린 결말을 지향하게 되며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서는 주인공의 성격이 다소 수동적이다. 마지막으로 반구조 플롯에 가까울수록 인과성이 아니라 우연성을 선호하게 되며 비연속적인 시간관계를 보여주게 된다. 또한 아크플롯과 달리 일관적이지 않은 사실성을 유지한다는 특징도 나타난다. 이러한 세 가지의 플롯 형태를 토대로 본 작품의 플롯 형태를 관찰해보도록 하겠다. 어떠한 플롯 구성을 선택하여 스토리를 풀어내고자 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때 동원되는 기준은 1)주인공의 행보 2)주인공의 수, 3)시공간적 인과성의 유무, 4)결말 형식이다.


우선 1)과 2)를 동시에 살펴보자면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다. 부커와 컴스탁, 로잘린드와 로버트(후술할 것), 수많은 엘리자베스 등 각기의 평행세계에 존재하기에 동일인물이지만 물리적으로는 다른 인물인 경우까지 개별 주인공으로 본다면 주인공들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 제일원칙으로 제시하는 세계관이 무한대의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별개로 각각의 인물들은 작중에서 굉장히 능동적인 행보를 보인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저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FPS 게임의 전투 장면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낸다. 다음으로 3)의 경우 단언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항목이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기본적으로 인과성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시공간적으로 비틀어진 방향으로 보여주기에 연속적인 시간관계를 따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과적인 동시에 시공간적으로 비연속적인 속성을 내포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부커와 컴스탁이 분열하는 분기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도록 하겠다. 분기가 나누어진 시점은 운디드 니 전투에서 부커이자 컴스탁인 한 인물이 무고한 인디언들을 학살한 이후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그는 죄를 씻어내기 위해 세례를 받고자 성수반 앞에 선다. 여기에서 세례를 받고 새로운 인물인 컴스탁으로 태어난 부커 드윗과 세례를 거부하고 범죄자로서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사설탐정인 부커 드윗이 나뉘게 된다. 전자는 세례를 받은 후 극도의 국수주의에 매몰되어 자신이 인디언들을 살해했던 것이 정당한 행위였다고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이를 자랑스러워하며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고자 운디드니 학살사건을 자신이 이루어낸 공으로 조작하고, 천재 물리학자인 루테스가 양자역학 연구를 통해 발굴한 차원균열의 능력을 자신의 예언 능력으로 뺏어오며 미국으로부터 컬럼비아를 탈환하기도 한다. 백인우월주의와 과학제일주의,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을 표방하는 최첨단 공중도시 컬럼비아는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도시를 공중에 띄우기 위해 양자역학의 균열 능력을 지나치게 남용한 결과 그에게는 급속한 노화와 무정자증이 찾아온다.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한 후계자를 찾기 위해 루테스에게 찾아가 해결책을 자문한다. 이때의 루테스가 부커 드윗이 작품 초반에서 동전던지기 이벤트, 그리고 이후의 사건에서 마주한 의문의 남녀 중에 남자에 해당하는 인물, 로버트 루테스다. 그 옆의 여자는 로잘린드 루테스로 또 다른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로버트와 성별만 다른 동일인물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또 다른 차원을 열 실마리를 찾아낸 루테스 남매는 컴스탁과 손을 잡아 공중도시 컬럼비아를 건축하고, 컴스탁에게 또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컴스탁 본인의 딸을 데려오도록 조언을 해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부커 드윗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과 그 원인으로부터 부커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들이 인과적으로 나열됨으로써 본 작품은 인과성의 원리를 따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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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테스 남매의 컨셉아트

 


그러나 비연속적인 시간과 공간관계를 따르고 있기도 하다. 루테스 남매의 말에 따르면 컴스탁과 부커 드윗의 이분화가 이루어진 까닭은 부커가 세계 내에 언제나 동일한 조건으로 존재하는 상수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평행 우주에서나 부커는 운디드 니 전투에 참가하여 인디언들을 학살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고 학살을 자행한 후에 PTSD에 시달리면서 세례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의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가 끊임없이 현재로 치환되어 반복되는 상황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시공간적 연속성에 어긋나는 모습이다. 결국 이 세례를 멈추지 않는 한 수많은 컴스탁과 수많은 부커 드윗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4)의 경우 결말은 엄연히 열린 결말에 해당한다. 엘리자베스와 부커는 게임의 마지막에서 세례를 받는 그때로 차원을 이동한다. 그곳에서 세례를 받아 컴스탁이 되기로 결정한 “모든” 부커는 엘리자베스“들”의 공격을 받아 물속에서 익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무한한 컴스탁이 등장하는 평행세계의 루프가 사라지게 되어 안나(엘리자베스)가 컴스탁의 손에 넘겨질 가능성 자체도 사라지게 된다. 마치 꿈을 꾼 듯한 모습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안나의 방에 다급하게 들어가 아이의 행방을 확인하는 부커의 모습에서, 과연 해당 시점의 부커가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그가 절박하게 안나를 찾는 것으로 보아 이전 세계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당연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컴스탁의 개입이 완전히 없는 경우의 인생으로 세계관이 고정된 상황이기에 이전의 일들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므로 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이처럼 무한 루프가 완전히 종결된 것 같아 보이면서도 종결되지 않아 보이는 상황은 결말의 모호함을 증폭시킨다.

 

종합적으로 이 작품의 플롯은 1)능동적인 2)주인공‘들’의 행보를 3)인과적이면서도 비연속적인 시공간성 안에서 4)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플롯의 삼각형에서 정중앙에 위치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형태의 플롯을 보여준다는 대목에서 이 작품이 서사적으로 대단히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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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s or Tails?


 


5. ③ 세 번째 단계, 스토리텔링의 방식

- 외부세계의 이데올로기와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중심으로


 

그렇다면 플롯으로 만들어진 스토리는 어떻게 이용자에게 전달되는가? 이 때 현실의 이데올로기가 개입하기 시작한다. 게임 바깥의 외부세계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게임 안의 세계로 끌어들여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인물이 직면하는 도발적인 사건들에 가미시키는 것이다. 컴스탁과 엘리자베스가 대표적이다. 두 인물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상반되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컴스탁이 부조리한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면 엘리자베스는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답습할 것인지 돌파할 것인지의 선택 문제를 대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등장인물이 무언가를 표상하고 특정한 믿음이나 구체적인 상황을 “암시”한다는 것은 인물이 작품 안에서 보이는 성격적 특성과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건대응의 과정 전반이 “현실의” 우리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음을 알려준다.


부커는 작품의 후반부에서 컴스탁이 보낸 부대와 전투하며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은 신이 아니라 그녀가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지니고 있는 균열의 능력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세계든 열 수 있고 그녀의 선택에 따라 그곳에서 무엇이든 가져올 수 있다. 이는 보다 추상적인 차원의 의미로 승화시킬 때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나 도덕관념과 같은 무형의 근본 원칙 역시 그녀가 어떤 차원을 열어서 무엇을 가져오느냐에 좌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컴스탁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부커 드윗이 그를 막지 못한 수많은 평행세계에서 엘리자베스를 위시하여 전 세계의 도시를 파괴하며 정복했다. 타의에 영향을 받았든 자의로 그랬든 그녀의 선택은 세계의 파멸과 보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부커 드윗이 끝까지 생존하여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평행우주에 도달하게 되자 그녀는 모든 사실을 깨닫고 부커가 세례를 받기 직전의 순간으로 차원이동을 행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양산되었던 컴스탁에 의한 모든 엘리자베스가 그 자리에 모여 컴스탁이 존재했었다는 평행우주에서의 역사를 지우고 그가 나타날 가능성을 차단하게 된다.

 

결국 그녀의 선택이 이데올로기의 답습과 파괴의 순환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수용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것의 잘잘못을 따지고 부패한 이데올로기를 내치는 능력 역시 개인의 판단력에서 비롯된다는 도덕적인 교훈을 이끌어낸다. 이로써 이용자는 게임의 결말을 보며 미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현실세계의 진실과 본능적으로 맞닿아 있는 감각을 바탕으로 게임세계 안에서도 현실과의 연계를 행할 수 있게 되어 미학적 정서를 이끌어낸다.

 

이 점에서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오락성 이상의 차원으로 나아갔다. 단지 게임의 세계 안에서 결말을 제시하고 바깥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지 않고 현실의 삶에 존재하는 요소를 게임 안으로 끌어와 오락성과 주제의식을 완벽하게 융합하여 예술성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용자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와중에도 근본적으로는 외부세계와 자신 사이의 연결을 끊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무의식적인 연결을 게임의 오락성을 통해 서사적으로 드러낸 콘텐츠는 외부의 자극을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하게끔 유도하는 예술이 된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이를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1.5탄, '해설'편에서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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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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