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정당하지 않는 삶을 갈망한다. "후회하는 자들" [공연]

‘무엇이 아닌’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자 했던 그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9.12.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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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공연 이후 미카엘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그의 이야기만을 간단히 다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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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조명 몇 개와 작은 탁자 하나, 두 개의 의자 그리고 물병과 스크린이 놓여 있었다.


극이 시작할 시간에 한 스태프가 나와 무대를 가로질러 가장자리에 설치된 카메라를 체크했다. 무대에 무슨 문제가 있나 했더니 그것이 극의 시작이었다. 준비되었다는 스태프의 말에 커튼 뒤에서 두 명이 등장했다. 안경을 쓴 미카엘과 뒤따라 나온 분홍색 양복을 입은 올란도.


무대의 변주는 단순했다. 자리에 착석한 그들은 대화를 시작했다. 이따금 물을 마셨고, 스태프는 몇 가지 질문들을 했으며 스크린에는 미카엘과 올란도 본인들의 사진을 보이며 과거를 회상한다. 극 중 쉬는 시간에 무대 뒤의 휴게실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 역시 생중계처럼 스크린화면 안에 담기고, 다시 들어와 못다 한 이야기를 하다가 수고하셨다는 말을 끝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실화가 바탕이 된 인터뷰 재연이어선지 배우와 관객 느낌보다는 인터뷰 프로그램의 출연자와 방청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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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수유 제공(사진_이은경)


 

 

미카엘은 후회했다.




미카엘 曰 저는 여자의 몸이 되었어도 남자와 여자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어요.



저 대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나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몸을 성형하는 이들에 딱히 큰 거부감이 없다. 사실 이렇게 말‘은’ 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결국 나도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떤 영상을 봤었다. 성을 바꾼 이들의 인터뷰였다. 본 후의 내 생각은 이랬다. 존중한다, 근데 사실 좀 낯설다. 겉으로는 쿨 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낯설어하는 나였다. 당신은 어떠한가?

 


(중략) 꼭 역할극을 하는 것만 같았죠. 밖에 나가면 높은 목소리를 한 여자 ‘연기’를 하는 것만 같았어요. 집에 와 낮은 목소리를 한 나를 만나면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진짜 저를 만나는 거죠.



미카엘은 이름도 성별도 완전히 다른 삶, 삶을 통째로 바꾼 새로운 삶을 갈망했다. 학창 시절 여자 같다는 말을 자주 들은 그였기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는 이유와 함께, 그런 상처가 있는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여자 같다? 여자 같은 건 뭘까. 무얼 해야 남자로 태어난 그가 남자일 수 있는 것일까. 여자 같은 사람은 반드시 여자여야 하는가. 남자는 뭐고 여자는 무엇인가. 구분은 의문을 낳고 방황하던 그들은 선택을 했으며, 후회를 했다.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고 종속되지 못한다는 후회는 표면적으로는 남과 여의 구분 때문이었지만, 결국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가 인정받아지지 않아서였다. 연기하듯 불편한 것이 아닌, 집에 와 진정한 자신을 만난다는 데서 오는 편안함을 원했던 것이고, 남들도 그들 자체를 인정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구분, 경계 ‘OO 같은’



여자 같은. OO 같은- 이라는 표현에 일화 하나가 떠올랐다. 한 교외수업, 미국인이 가르치는 영어 회화 수업이었다.

 

영어 이름을 만들라고 했다. 철자가 어떻든 그냥 어떠한(00) 이름으로 하고 싶어서 뱉었는데, 그녀는 2초 정도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러곤 매우 진지하게 ‘좋은 이름이지만, 전부터 너와는 다른 성에게 붙는 이름으로 인식돼있었다, 남자/여자 같은 이름이다’며 고심 끝에 철자를 변형해 다르게 만들어주었다.


반을 바꿔 그 이름으로 불리진 않았지만, 그때가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여자 같은 이름이면 어떻고 남자 같은 이름이면 또 어떤가. 그냥 그 자체인 이름이면 된 거 아닌가 하는 살짝 반항심이 듦과 함께 성의 구분이 참 끈질기게 사회를 점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자/여자 ‘같은’ 행동, 말투, 이름과 더불어 미카엘과 올란도 그들 역시도 규정 짓고 있던 ‘여자들’의 ‘하이톤 목소리’ 등의 다양한 표현이 자연스레 현실에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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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수유 제공(사진_이은경)

 

 



 

한 시간 분량의 극은 내겐 너무 짧았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어진 극이라 온전히 그들의 ‘말’에서 그들이 겪은 그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다.

 

참 좋았죠, 힘들었어요로 통용되는 감정을 넘어, 멈춰진 사진을 넘어, 중간마다 그 ‘때’를 연기로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예컨대 그들이 회상하는 장면에 다른 인물(과거의 그들과 주변 사람)들을 등장 시켜 대사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연기하는 극’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그들과 같이 분개하고 싶었고, 그들의 감정에 조금이나마 동요되고 싶었다. 미카엘과 올란도가 감정을 드러낼 때, 나는 단지 제 3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청중으로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카엘이 왜 저렇게 화를 내지?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결국, 인터뷰라는 것(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의 한계는 온전히 그들이 될 수 없어 뱉어지는 말들로 이해해야 함에 있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듣고 이랬겠거니, -이였겠거니 생각하고, 인터뷰가 끝나면 곧장 일어나서 나가버리면 그걸로 그만이다. 하지만 ‘남의 일’처럼 치부하고, ‘오늘 뭐 먹지’하는 생각으로 덮어버리기엔 그들의 이야기는 별것 아닌 이야기가 아니었다. 공연 <후회하는 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대사가 그렇지 않은가.


극의 다양성과 풍성함으로 더 효과적인 장치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기억에 남아지는 게 덜하고 ‘그건 그냥 그들의 문제일 뿐이야’라며 거리감을 형성하게 만들기 좋은 단순 재현은,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단순했기에, 복잡하다 여겨지는 문제들을 풀어헤칠 여백의 공간으로 의도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서휘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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