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 지침서 - 문장의 일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글 입력 2019.12.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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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추억


 

학창시절, 가장 가방이 무거워지는 날은 새 교과서를 배부하던 때였다. 이 많은 책을 언제 집에 다 가져가냐며 교실 안은 아우성으로 가득 찼고, 나도 소란 속에서 같은 목소리를 냈었다. 그중 다른 과목에 비해 유독 두꺼웠던 국어 교과서의 두께만은 예외였다.

 

두께가 두꺼워서 좋았다. 수학, 과학 문제가 정답을 하나만 두고 간결하게 떨어지는 공식들로 교과서 속지를 장식하던 것에 대조되게 국어는 열린 결말을 중시했다. 객관성을 지향하는 게 시험인지라 문제의 정답은 하나였을지라도 학생들에게 서술형 답안을 유도했고, 유연한 사고를 길러주기 위해 넓은 정답 칸이 교과서엔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소설, 책을 읽은 느낀 점 위주인 독후감, 논리적인 문체들 위주로 구성된 논설문까지 어떤 종류인지는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던 거 같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표현법을 바꿔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여럿에 파급력을 높일 수 있다는 데에 동경심을 가졌다.

 

명작을 접할 때면 활자를 읽어내려가는 순간조차 소중해서 책을 한 장씩 넘기는 찰나에 더 읽어야 하는 활자가 줄어듦을 아쉬워한 적도 있었다. 교내·외에서 주최했던 글쓰기 대회에 나간 후 상을 받을 때면 나는 이전보다 생각이 성숙해졌음과 연결 지어 기뻐하기도 했었다.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간결하게 하나로 떨어지는 답이 아닌 자기 생각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가가 글쓰기인 탓에 대회에서 상이 나눠지는 기준은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느꼈다. 수상작을 보면서 ‘저 글이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글이라고?’ 싶었던 기억은 모두에게 흔하지 않았을까.

 

글쓰기는 개인에겐 주관적이나 다수에겐 객관적이고, 문장 또한 배치는 자유지만 훌륭한 문장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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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결국 좋은 문장을 쓰는 법에 있다.


 

책 4장 <좋은 문장이란?>을 읽으며 글 쓰는 법에 대한 확신을 얻어갔다.

 

나는 투박한 글을 보며 진심을 크게 느껴간 적이 있다. 노년의 할머니가 끔찍이도 아끼는 손자에게 쓰는 맞춤법을 어겨버린 편지, 글쓰기가 미숙하지만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쓰는 노력이 느껴지는 편지, 다급함이 느껴져서 정신없지만 전쟁이나 위험한 사고 현장에서 남긴 기록에서 그랬다. 어설픈 문장이었지만 목적이 제대로 담겼으면 상관없구나 라는 것을 확연히 느낀 일이었다.

 

‘좋음’이란 일련의 특징이나 특정 분류 체계로 환원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조리법을 본다고 좋은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듯, 문장 쓰는 법을 안다고 해서 좋은 문장(짜임새가 훌륭하고 잊히지 않는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문장(어설픈 문장, 과장이 심하거나 너무 느슨해서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문장)이라 해도 오히려 좋은 문장이 될 수 있다.

 

내용 전달, 즉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이면서도 황홀하게 전달하는 일이야말로 문장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재료, 양념, 소스, 온도, 조리 기구, 냄비, 팬 등 많은 것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맛난 음식을 만들 수 없듯이, 내용의 수단인 동시에 내용을 발생시키는 도구인 형식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다면 독자를 단번에 사로잡는 강력한 내용, 문장이라는 형식을 띤 좋은 내용을 만들어낼 수 없다. 형식이라는 도구는 일을 진행시킬 뿐 그 자체가 종착지는 아니다. 최종 목적지, 즉 글을 쓰는 열망의 종착지는 결국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고, 하고 싶은 말이야말로 일관성 있고 훌륭한 문장을 썼는지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면 되는 거였다. 방식을 따르고 깔끔하게 쓰려고 노력하되 목적과 팩트만 전하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언급한 학문의 특징처럼, 글쓰기는 정답이 하나였던 것이 아니다. 정형화된 틀에 맞춰 쓸 때에 훌륭한 글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글의 목적을 잊지 않고 원하는 인상으로 일관성만 유지한다면 훌륭한 글이 될 수 있다.

    

 

<글쓰기의 철학>에서 에드거 앨런 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나 머리, 영혼이 허락하는 수많은 효과나 인상 중에서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책을 읽으며 짚어낸 글쓰기의 핵심은 다음 한 줄과 같다.

 

문장을 쓸 때 해야 할 첫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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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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