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누런 세상, 그 너머의 사랑 이야기 – 안전가옥 앤솔로지, ‘미세먼지’ [도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가장 트렌디한 그릇에 담아 기억하는 법
글 입력 2019.12.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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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적 관심사, 미세먼지 소설의 등장



2019년 상반기. 역대 최고의 미세먼지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공기청정기와 마스크 사업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고, 날씨검색을 통해 기껏해야 오늘 비가 오는지 정도만 확인하던 사람들은 미세먼지 농도를 제일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나날이 커졌고, 그와 동시에 중국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 역시 커졌다. 2019년 봄. 젠더 갈등, 빈부 격차로 서로에게 날을 세우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세먼지의 늪에서 다 함께 허우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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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국민적 관심사, ‘미세먼지’를 소재로 삼은 소설이 있다. 바로 안전가옥의 세 번째 앤솔로지 ‘미세먼지’다. 2019 봄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 4편과 초대작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작 ‘냉면’, ‘대멸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 다섯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해석과 필체, 장르로 풀어내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안전가옥의 첫 번째 앤솔로지 ‘냉면’ 출간과 관련해 스토리PD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 인상 깊은 말을 들었다. 좋은 이야기의 요소를 묻는 말에 이러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재미입니다. 하지만 전 재미가 마음을 열어주면 그 틈에 메시지를 놓고 나오는 것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가치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게 하는, 대화의 시작이 되는 이야기를 안전가옥은 지향합니다."

 

[Interview] 안전가옥의 단편 모음집 '냉면', 다채로운 장르의 향연

 


근 1년 만에 다시 만난 안전가옥은 이러한 신념을 단단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미세먼지’ 속 5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SF, 추리 장르가 주는 본연의 재미 안에 ‘지금, 이곳’에서 통하는 감성을 끌어안았다. 바로 이 부분이 안전가옥의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대기업들을 필두로 장르소설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동시에 재미에 충실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독자의 삶을 파고드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보다는 ‘재미와 울림’이 있는 이야기다. 독자의 오늘과 함께 호흡하고, 독자가 삶을 긍정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가 안전가옥의 이야기에 독특한 색채를 입힌다.

 

 

 

닮은 듯 모두 다른 다섯 개의 이야기



류연웅 작가의 <놀러 오세요, 지구대 축제>는 미세먼지의 심화에 따라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혐오감을 반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중국인’에 대한 혐오라는 점이다. 한 국가에 대한 원망은 그 나라의 정부가 아닌 일개 국민에 대한 화풀이로 변질되고, 이는 작품의 배경인 ‘지구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인과 중국인으로 양립된 갈등상황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인물은 어중간한 경계에 위치한 홍콩 출신 ‘서 민’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불쌍한 우리의 주인공. 그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거대한 맞불 폭동이 발발한 지구대학교 축제날, 과연 누구의 편에 서게 될까.


김청귤 작가의 <서대전네거리역 미세먼지 청정구역> 속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다들 먼지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다들 되고 싶어 안달이다. 미세먼지 인간이 가진 특유의 공기정화 능력 덕분에 공기업, 사기업, 외국계에서 각종 러브콜을 받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들은 숨만 쉬면 취업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생인 ‘도연’ 역시 미세먼지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 ‘특권’을 누리는 것은 다름 아니라 ‘좋아서 그랬다’는 가해자들의 상투적인 변명을 내뱉던 선배 ‘기혁’이다. 이제 그는 온갖 우대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잘 먹고 잘살 것이다.


박대겸 작가의 <미세먼지 살인사건 - 탐정 진슬우의 허위>는 미세먼지로 뒤덮인 세상이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가깝고도 먼 현대 가족의 초상을 그린다. 폐 질환을 갖고 있던 88세 노인이 미세먼지에 장시간 노출되어 사망한다. 범인이라고 자백해온 사람은 둘. 노인의 아들과 손자며느리이다. 한 명은 24시간 돌아가던 공기청정기 코드를 뽑아버렸다고 말하고, 다른 한 명은 창문을 활짝 열어버렸다고 말한다. 사람의 말에서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을 가진 탐정 진슬우. 둘의 자백이 모두 거짓임을 간파한다. 범인은 분명 가족 안에 있다. 대가족 속 개개인을 만나보던 진슬우는 마침내 가족이라는 이름 밑에 존재하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김효인 작가의 <우주인 조안>은 디스토피아적 미래와 청춘감성의 독특한 조합으로 MBC 드라마로 제작이 확정되었다. 공기정화 의상인 ‘청정복’을 입어야만 생활할 수 있는 미래. 세상의 빈부 격차는 곧 청정복의 어마어마한 가격을 충당할 수 있는 C(Clean) 그룹과 그렇지 않은 N(No Clean)그룹으로 가시화되었다. C는 2019년의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대학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정형화된 생애를 갖는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고작 30년밖에 되지 않는 N은 매일을 축제처럼 살아간다. 평범한 취준생으로 살아가던 C그룹의 ‘이오’. 28년 동안 입은 청정복이 불량으로 판명되자 하루아침에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한다. 자소서, 시험, 영어책 모두 뒤로 하고 어두운 방구석에서 죽음만 기다리던 그의 시간에 어느 날, N인 대학 동기 ‘조안’이 들어오고. 함께 과제를 위한 데이트를 시작하며 이오는 잊고 살았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조예은 작가의 <먼지의 신>에서는 누런 현실 위에서 서로를 길들이는 두 친구의 애정이 그려진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고통받던 ‘수안’은 때마침 대한민국을 강타한 먼지 바람 핑계를 대며 2년째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는 청춘이 되었다. 공기청정기 ‘먼지의 신’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미주’는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과 철판 깐 친화력을 무기로 수안의 집으로 들이닥치고. 제품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미주의 해맑은 몸부림과 속고 속이는 위험천만한 관계 속에서 마침내 미주에게 수안은 집이, 수안에게 미주는 세상이 되어준다.


이처럼 5편의 이야기들은 ‘미세먼지’라는 키워드만을 공유한 채 인물, 사건, 배경 모두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5편의 이야기 속에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누런 세상, 그 너머의 사랑을 이야기하다



얼마 전 친구에게 따듯한 얘기를 들었다. 친구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웬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란다. “저 혈당이 떨어져서 그런데 누구 사탕이나 초콜릿 있으면 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같은 칸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가방을 뒤지기 시작해 순식간에 사탕, 초콜릿이 모였다고 했다.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바로 이런 개인들 간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다. 서스펜스와 로맨스의 결합으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 드라마는 선한 개인들의 연대, 일명 ‘떼샷’을 이야기하며 막을 내렸다. (“우리는 떼샷이유!” feat. 황용식).


그리고 나는 안전가옥의 앤솔로지 ‘미세먼지’ 속 다섯 작품 역시 떼샷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다섯 작품은 모두 미세먼지로 뒤덮인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초점은 그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는 개인, 그리고 사랑하려는 개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이 부분에서 책 ‘미세먼지’가 장르적 재미에 담아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뚜렷해진다. 뒤덮인 메케한 오늘을 뚫고 청명한 내일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은 개인들의 용기, 연대, 그리고 사랑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강처럼 흐르는 시대에 굽이를 만들어낸 것은 작은 개개인들이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쌓은 조약돌의 언덕이었다. 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촛불집회부터 미투운동까지, 세상에서 크고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뭐 같은 세상을 나 몰라라 하지 않겠다는, 해서 다음 세대에게 미안하지 않겠다는 작지만 위대한 의지들의 집합이었다.


서로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과 혐오가 난무하는 오늘날, 정치를 바꾸고 사회와 문화를 바꾼 우리의 ‘떼샷’의 역사는 분명 영영 잊지 말아야 할 가치이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소중한 순간들이 점점 잊히는 2019년. 그 속에서 안전가옥의 앤솔로지 ‘미세먼지’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가장 트렌디한 그릇에 담아두는 타임캡슐 같다.


오늘도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 보이지 않는 미래에 지쳐 약간은 허무맹랑한, 하지만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희망이란 것을 잠시 잊고 지냈다면. 나는 당신에게 이 책 ‘미세먼지’를 조용히 추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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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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