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은 반복 속에서 변주하며 시가 된다 - "우리별"

글 입력 2019.11.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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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시와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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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시간은 또 어떻게 흘러갔던가. 오늘의 시간을 곱씹어 보기도 전에, ‘일주일’이 흐르고, ‘한 달’을 훌쩍 넘어간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2019이라는 ‘1년’은 또 어떻게 보내왔던가. ‘삶’을 되돌아봤을 때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루, 한 시간이라는 점이 아닌 ‘삶’이라는 하나의 선이다.

 

그래서 인생은 시와 같다고 했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뒤돌아보면 언제 쓰였나 싶은 삶의 문장들이 한가득이다. 우리 삶은 반복 속에서 변주하며 시가 된다. 문장 구조의 일정하고 규칙적인 가락을 변형시키면서 시의 운율이 피어나듯이, 우리 삶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작은 변주들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리듬에 자신을 모두 맡긴 듯 쉼 없이 요동친다.

 

<우리별>에서 삶은 랩과 비트 속에서 박자를 맞추어 나간다. 반복되는 지구의 생일에도 완전히 같은 문장은 없다. 이번 생일에는 이거, 이번 생일에는 저거… 반복되는 곳에 조그마한 차이를 두고, 리듬이 피어오른다. 연극 전체가 시이고, 삶 그 자체다. 삶을 사랑하는 만큼 이 연극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빙글빙글 도는 음악 속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직감했을 것이다.

 

 

 

매일 보는 것들은 눈물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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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아파트 11층, 얼룩진 이불, 미미 필통, 도시락 통, 통하고 열리는 냉장고 문…

 

천문학자들 중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많다고 했던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끝없이 멀고, 끝없이 어두운 그곳을 바라볼 때면 그 광활함에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우주 속의 먼지처럼 작은 스스로의 존재는, 무엇을 향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걸어왔는지, 모호하게 만든다.

 

삶의 덧없음에 무기력을 느낀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일상처럼 나와 밀접해있는 시간들이 더 소중해진다. 먼지 보다 작은 내 시간들을 사랑하는 것이 이 우주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전부다. <우리별>은 시간과 우리의 존재, 우리가 관계 맺는 소중한 것들을 잘 풀어낸다. 덧없음에서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별>은 지구가 소멸하기까지 50년 억이라는 시간을 잠시 거닐어보게 한다.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계속해서 간질거린다. 그것은 누군가 가려운 곳을 긁어줄 때 터져 나오는 해소의 웃음이기도, 해방의 숨이기도 하겠다. 하찮게 여겼던 일상과 지금의 순간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것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겠다.

 

얼굴 곳곳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흐르도록 내버려 두고, 다시 들이마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시간과 별다를 것 없는 지구의 시간이 왜 그렇게 눈물 났을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얼굴에 눈물이 났을까, 두려움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깨달음이었을까, 감동이었을까, 행복이었을까, 즐거움이었을까,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감정이었을까.

 

머릿속의 질문은 밤 하늘의 별 만큼 수없이 많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눈물과 많은 사람들의 훌쩍거림의 이유가 아직도 확실히 설명할 수 없기에. 매일 보는 것들은 나를 눈물짓게 한다. 내 손 떼 묻고, 눈 길이 묻은 것들은 어느새 내 눈물도 묻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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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는 그 이면의 이야기를 보게 한다.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있는 작고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보게 한다. 가시 돋친 밤송이는 속에 있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밤 알맹이를 보게 한다. 이 극을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볼 수 있을까. 하나는 태양계부터 우주 끝까지 광활한 거리와 지구가 소멸하기까지 50억 년이라는 가늠할 수도 없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 또 다른 하나는 내가 겪었던, 앞으로 걸어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위를 걷고 있을 나에 대한 이야기.

 

이 극은 지구를 어느 평범한 소녀에 빗대어 우리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우리 삶을 들여다보았다가, 우주와 행성 그 자체를 보게 하고, 다시 삶을 보았다가 한다. 삶은 우주에 빗대어 이야기되지만, 또한 반대로 우주가 삶에 빗대어 이야기된다. 애초에 둘이 하나의 대상이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우주 속의 지구였다가, 가족 속의 지구였다가 번갈아 생성되는 지구의 문맥이 전혀 혼란스럽지 않다. 먼 것 같던 우주와 이렇게 가까움을 느끼고 그 속에서 내 삶을 발견하게 한다.

 

 

 

소멸이 마냥 슬픈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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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 글]

 

밤하늘에 별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나는 그 별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그 아름다운 빛이 우리에게 닿는데 걸린 1만 광년이란 시간동안 어쩌면 그 별이 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곁에 있다는 이유로 당연히 존재할 거라 믿었던 많은 것들은, 왜 사라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걸까?

 

 

사실 사라지기 때문에 소중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구와 달님의 이별이 소중하고 뭉클했던 건 이별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와 달님이 땅에 묻었던 타임캡슐은 이별하는 순간에 더욱 반짝거린다. 마음속에 묻었던 진심은 말을 타고 다른 마음으로 흘러 들어갈 때 더욱 영롱한 빛을 낸다. 소멸이 마냥 슬픈 것은 아니다. 헤어짐의 순간에서 흘리는 눈물은 짠맛이 아니라 단 맛이 난다.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행복의 맛이다.

 

“그게 뭐야?”

 

“우리가 함께 묻었던 타임캡슐이야. 지구야,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그날이 없었다면, 나 분명히 늘 외톨이었을 거야. 이 말 꼭 전하고 싶었어.”

 

 

 

오늘도 잘 소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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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들 때까지 보고 있어줄래?”

 

“좋아.”

 

“고마워, 그럼.”

 

“응.”

 

“잘 자.”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도, 공간도, 놀이도, 추억도, 지구도, 인간도, 심심하다와 재미없다 또한 없다.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생겨나게 된 것은 지구의 탄생과 함께다. 해피 버스 데이 투 지구. 탄생과 함께 지구는 빙글빙글 돈다. 내 마음속에서, 내 주위에서, 내 바깥에서, 내 안에서.

 

내 속에서 빙빙 돌고 있는 지구와 함께 가족들, 달, 별, 빛도, 세월도, 빙빙 잘도 돈다. 아침 일어나서 세수하고, 다짐하고, 빨래하고 일하고, 일하고. 낮잠 자고, 지하철 타고, 세수하고. 하루는 계속해서 빙빙 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우리 집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은, 모두 지구가 돌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별>을 보기 전, 이 극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멀리했다. 특정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극, 이라는 설명 하나로 내가 이 극을 봐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하나의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내 마음에 그려질 달콤한 음식과 아름다운 그림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로지 그 시간과, 무대라는 공간에서만 엿들을 수 있는 목소리라면, 극에 대한 설명을 읽음으로 인해 극을 바라보는 시각이 하나로 굳어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극을 꼭 체험해보기를 추천한다. 아니, 마음 같아선 손을 끌어다가 의자에 앉혀버리고 싶을 정도다. 글은 지구와 삶의 관계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은 쾌감을 준다.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서 이 관계를 상상이 아닌 실제 눈으로, 피부로 만져보기를 바란다. 마음의 눈은 하얀 지점토처럼 지구가 되었다가, 별이 되었다가, 달이 되었다가 한다. 당신은 당신만의 소중한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시놉시스]

 

난 지구. 여기는 코스모스 아파트 19단지. 우리 가족은 오늘 여기로 이사를 왔다. 난 태어나서 6억 년간 혼자였는데 이제는 주변이 꽤 떠들썩한 거 같다.

엄마와 함께 옆집에 인사를 간다. 나보다 조금 작은 여자애가 나온다. 이름은 달님이. 단짝 친구가 된다. 매일매일 붙어있지만,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조금씩. 우린 언젠가 헤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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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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