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소한 습관, 도시에서의 차 마시기 [사람]

글 입력 2019.11.15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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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소소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차를 마시는 일이다. 출근해서는 티백 하나에 뜨거운 물을 담아 마시고, 점심시간 후에는 얼음을 팍팍 넣어 급랭으로 마신다. 밤에는 무카페인 허브티를 골라 따뜻한 머그컵을 쥐고 홀짝홀짝 마시다가 잔다. 

 

티백을 한 상자나 주문했지만 이마저도 얼른 마셔버리고 다른 차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주변에 조금씩 나누어줬다. 오직 커피만을 사랑하고, 티백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날 때까지 방치하다 버리기 일쑤였던 나였으니 친구들은 의아해했지만 나의 갑작스러운 차(tea)에 대한 열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카페인 중독에 걸리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사실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하루 한두 잔씩 마셔오며 이미 예견한 일이지만,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월경통이나 오전에 문득 문득 올라오는 헛구역질에 자연히 커피를 범인으로 몰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보다 열댓 살쯤 많으신 과장님께서 ‘아무리 노력해도 커피는 못 끊겠다, 한 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오후 내내 머리가 아프다’라고 하신 이후부터 위기감이 들었다. 나는 벌써 카페인에 이렇게 의존하고 있는데, 나중엔 자극의 역치가 더 올라가지 않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찾은 답은 입이 심심할 때마다 무카페인, 혹은 저카페인 차를 마시는 것이다. 차에 관해 깊은 조예는 없지만, 카페에서 마실만한 게 없을 때마다 차를 마셔왔던 경험 덕분에 대충 맛을 구별할 줄은 아는 정도였다. 

 

대충 홍차 전문몰로 보이는 곳에서 눈에 띄는 몇 종류의 티백 박스를 담기 시작했다. 우선 아마드 티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후르츠 허브’ 라인을 골랐다. 내가 아는 차 전문 브랜드는 아마드밖에 없었으니 당연했다. 종류가 하도 다양해서 뭘 담아야 할지 감도 오질 않았지만,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법 신이 나 일단 보이는 대로 담기로 했다.

 

 

그림1.jpg

 

 

최종적으로 내 손에 들어온 녀석들을 살펴보면 아마 내 생활 패턴과 취향이 보일 것이다.

 

일단 아침에 마실 따뜻하고 카페인이 들어 있는 홍차 라인 하나, 낮에 아이스로 마실 만한 과일향 가향차 몇 종류, 밤에 가볍게 마실 만한 허브티 종류, 가끔 아침에 밀크티를 만들어 마시기 위해 주문한 요크셔 레드와 각설탕까지. 여기에 시험삼아 종류별로 들어 있는 티백 세트를 하나 더 질렀다. 아주 철저히 계산된 첫 구매다.

 

물론 나의 계산에도 약간의 착오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낮에도 얼어죽을 것 같은 온도를 자랑하는 한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타입이 아니라는 걸, 가을의 포근한 오후 날씨에 젖어 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점만 빼면 나의 사랑스러운 티백들은 답답한 근무 시간에 작지만 충실한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제주도에 가서 짧게나마 다도를 접해 본 적이 있다. 국내의 유명 차 브랜드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자연의 풍경에 둘러싸인 곳에서 강사분의 말씀에 따라 조심 조심 차를 우려내고 따라 마시던 기억이 났다. 대충 펄펄 끓는 물에 티백을 담가 넣고 쓴 물이 죄다 우러나오거나 말거나 마냥 컵 속에 방치해두던 나의 ‘어반 터프 다도’가 떠올라 조금 부끄러웠다.

 

정확히 3분을 지켜야 한다거나, 물의 온도가 적정해야 한다는 말은 어지간히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에게나 통하는 규칙이라고 여겼지만, 정석을 따랐을 때의 풍미는 비교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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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어반 터프 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차마시기를 즐기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차를 우려내는 시간만큼은 짧은 평온을 누리는 습관이 생겼다. 3분간 우려내고, 아까워하는 마음 없이 버리기. 차가 서서히 우려나는 모습, 고운 수색을 보고 있으면 유독 차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탕비실로 벗어나 아주 찰나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 일석 이조다. 아마 나는 이제부터 직장인들에게 차마시기를 운동만큼이나 강력하게 추천하고 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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