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퇴근 후 시작된 대전로그 [여행]

별 것 없지만 좋았다
글 입력 2019.11.0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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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밀양에 이어 또 한 번의 갑작스러운 여행이 시작됐다. 이번에 이어진 갑작스러운 뚜벅이 여행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전이었다. ‘볼 게 없으니 대전 대표 빵집 성심당이나 들르고 얼른 집으로 가라’는 지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감히 대전행 티켓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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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행 열차가 지금 출발합니다


 

나는 6시 퇴근 후 가장 빠른 시간대의 기차를 예매한 후 대전으로 떠났다. 한창 왕성한 혈기로 이곳저곳 둘러보는 것을 좋아했을 땐, 대전은 여행 후보지 중 탈락 1순위였다.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관광지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보고 싶은 곳이라곤 그저 성심당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대전으로 떠날 생각을 했을까. 사실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관광지가 많고, 이런저런 교통편을 생각해야 하는 곳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떠나 자유롭게 나만의 생각에 갇힐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벗어낸 채로 말이다. 너무 조용한 곳은 고립되는 것만 같아서 싫었다. 적당히 외로우면서 불안하지 않을 정도로만 시끄러운 그곳이 대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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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야경 


 

항상 어떤 곳을 가든 그 공간에 찾아오는 밤이 좋다. 그 공간만이 가지는 밤의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활활 불타오르고, 또 어떤 곳은 아주 얌전한 공기들로 밤을 가득 메운다. 서울의 야경이 이제 막 시작한 활기찬 청춘들의 느낌이라면, 대전의 야경은 치분하고 안정된 어른의 느낌이었다. 엑스포 다리와 고층 건물의 불빛은 조용하면서 너무 과하지 않고 은은하게 빛났다. 딱 대전과 어울리는 그런 야경이었다.

 

활기찬 기운을 가라앉히고, 빠르지 않게 일정한 주기로 반짝거리는 대전의 빛들은 어쩌면 우리의 시절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밤은, 나의 시절은 지금 어디쯤일까? 스물세 살, 여전히 어린 나이이긴 하나 철없고 어디로 튈지 몰랐던 시절에선 조금 벗어난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땐 남들을 따라 하며 어울리지 않는 화장도 해보고, 남들이 좋아하는 걸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했다.

 

지금은 적어도 내가 어떤 옷과 화장이 어울리는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 나도 나만의 색깔을 찾아 과하지 않게 시절을 보내고 있다. 마치 대전의 야경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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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도시


 

버스를 타고 대전을 둘러보며 느꼈던 건, 대전은 과학 관련 인프라가 잘 구축된 도시라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과학 교육 기관인 카이스트가 있으며, 국립 중앙 과학관이 있다. 평소 과학을 좋아하진 않지만 대전에 와서 그런 것인지, 과학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학구열이 불타올랐기보다는 그저, 나와 관련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그래서 도착한 날 밤 푹 자고 일어난 후, 국립중앙과학도서관을 들렀다.

 

이곳은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했다. 인류가 진화한 원리부터 우리가 사는 지구 그리고 우주의 구성, 우리 주변을 둘러싼 생물들, 그리고 모든 생물들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빛의 원리까지 과학 수업 시간에 졸면서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이전에는 강제로 교과서 한 권을 통째로 외워야 했기에 과학이 싫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내가 직접 과학에 문을 두드리니 그 새로움이 두렵지 않았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나의 신체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알아가면서 호기심을 충족하는 시간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과학관의 수장고에서 연구원에게 짧은 5분짜리 과학교육을 들었을 때였다. 그 교육에선 새의 명칭이 크기에 따라 ‘수리-기-새’로 구분된다고 했다. 그래서 독수리, 갈매기, 참새와 같은 새의 이름이 지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연구원 선생님의 교육을 통해 과학이 무조건 암기하는 것이 아닌, 이해해야 하는 학문임을 깨달았다. 물론 과학이 갑자기 재밌어진 건 아니지만, 과학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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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명물, 성심당



대전에서 성심당을 안 들를 수 없었다. 대전하면 성심당이 아닌가.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빵 맛이 다 똑같지 뭐’라고 생각하며 성심당 본점을 방문했다.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약속이나 한 듯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만큼 빵의 종류도 다양했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튀김 소보로와 애플파이 등을 구매했다.

 

빵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애플파이를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맛있다’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왜 대전 사람들이 성심당에 꼭 들러야 한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갔다. 성심당은 꽤 오랜 시간 대전의 중심을 지켜왔던 것으로 안다. 어쩌면 대전 사람들에게 성심당은 어린 시절의 향수이자 친정집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하교 후 간식을, 출근 전 아침을, 퇴근 후 저녁을 책임지고 있지 않은가. 성심당을 나오면서 ‘내게도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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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여행을 마무리하며


 

이전에 했던 다른 여행들과 비교하면 이번 대전 여행은, ‘여행’이라기 보다는 나들이에 가까웠다. 단순히 쉬고 싶어 떠났고, 크게 무언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았다. 다소 정신없고 피곤한 상태였던 내게 대전으로 가는 기차 안과 고요한 창밖은 위로였고, 여행을 마무리하며 시끌벅적한 대정 시내를 둘러보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내게 불어주는 에너지였다. 또한 다리 아픈 나를 걱정하며 선뜻 버스정류장의 자리를 내어준 할아버지를 만나며, 사람 간의 온정도 느낄 수 있었다. 때론 고요하고, 때론 시끌벅적하고, 때론 따뜻한 그곳 대전에서 사소한 추억을 쌓았다. 추억의 공간을 또 하나 만든 채, 나는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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