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예술]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Review
글 입력 2019.11.0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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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언제 어른이 될까.
 
 
사람들은 이 심오하면서도 원초적인 질문에 저마다의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 20살 생일을 맞았을 때, 자신의 행동에 직접 책임을 지게 되었을 때, 속마음과는 다른 표정을 지을 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모두는 각자 다르게 내린 어른의 정의를 향해 서투른 아이에서 이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한다. ‘어른’은 아이였던 모두가 숙명처럼 바라보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한 가지의 방향이자 이상이다. 그래서 아이는 모두의 축복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열여섯 소년 다윈 영은, 내면의 약하고 순수한 아이가 완전히 죽고 텅 빈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이가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선하고 연약한 진실을 악하고 편리한 거짓으로 위장하고 눈을 감아버린 밤, 아이는 성장하고 역사는 흘러간다. 아이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성장과 수많은 ‘어린 새의 추락’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더 이상 축복받아 마땅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범죄처럼 이루어지는 것, 다윈 영은 모두가 축복하는 아이의 성장에 홀로 냉소적인 시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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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주인공 소년 다윈 영의 성장과 인간 역사의 흐름을 차갑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이면에 자리한 선과 악의 기원을 고찰한다. ‘다윈 영’의 특별함은 바로 이 차가운 시선에 있다. 이 극은 16살 소년의 성장을 다룬 따뜻한 성장 드라마도, 둘도 없는 부자의 가슴 따뜻한 휴먼 드라마도 아니다. 초반에 잠시 등장하는 이들의 따뜻한 모습은 후반에서의 몰락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줄 이야기의 포석으로 쓰인다. 관객들은 여느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은 다윈의 밝은 모습과 추락을 한꺼번에 지켜보며, 스스로 자신은 그들과 정말 다를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적자생존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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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세계는 최상위 엘리트 계층이 사는 1지구부터 생명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9지구까지 총 아홉 개의 지구로 나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불평등과 차별이 지구라는 개념으로 가시화되어있는 세계인 것이다. 주인공 다윈, 레오, 루미는 최상위 계층인 1지구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엘리트 학교 프라임 스쿨의 학생이다. 프라임 스쿨에서는 세계를 ‘사과 한 알’에, 1지구를 ‘사과의 씨앗’에 비유하며, 학생들에게 아홉 개의 지구를 통제하고 이끌어갈 절대 선 ‘씨앗’으로서의 사명을 가르친다.
 
모든 이야기는 1지구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차별이 가시화된 이 세계를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는 각기 다르다. 다윈 영의 할아버지인 러너 영은 한때 세계의 불공평한 구조에 앞장서 저항했지만 결국에는 기득권의 안락함 속에 숨어버린 인물이다. 러너는 폭동을 주도했던 지난날을 철없던 어린 날의 실수라고 생각하며 1지구 주민으로 사는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하층 계급으로 차별받았던 과거가 있지만, 1지구 바깥의 세상에 눈을 감고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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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는 아버지의 죄를 감추기 위해 살인을 한 이후, 후디를 증오하게 된 인물이다. 니스의 분노는 폭동의 배경이 된 차별적 구조가 아니라 폭동의 주체인 ‘후디’로 향한다. 가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안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친구를 죽이고, 그 이후 망가진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를 9지구 후디들에게로 돌리며 차별적 세계에 눈을 감아버렸다는 점에서 러너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다윈은 1지구에서 태어나 프라임스쿨에 다니면서도 9단계의 차별이 존재하는 세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다윈은 9지구 사람들을 옹호하는 말을 했다가 니스와 마찰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니스와 같은 선택을 한 이후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숨어버린다. 삼대에 걸친 살인은 밤 사이에 후디의 소행으로 감춰지고, 그들은 1지구의 가족이라는 강력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다.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의 원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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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레오 마샬은 이 세계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레오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죄책감을 느끼며 'Martial(싸움의, 전쟁의)‘이라는 이름처럼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세계의 구조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레오 역을 맡은 강상준 배우가 프로그램북에 남긴 그림처럼, 레오는 견고하게 지어진 교회의 깨진 창문 같은 인물이다. 하위 지구를 희생해 만들어낸 안락함과 풍족함에 눈이 멀어버린 1지구 사람들에게 비추는 한 줄기의 자연광, 그리고 완벽한 1지구의 오점 같은 인물. 죄인과 위선자들이 권력을 쥔 다윈 영의 세계에서 레오는 홀로 울타리를 벗어나 순수한 빛을 따라간다. 하지만 결국, 가족을 지키고자 한 다윈의 손에 희생당하고 만다.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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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레오를 살해한 후 성장한다. 다윈 영의 성장은 내면에 살아있던 순수한 아이의 죽음이다. 다윈의 세계는 다윈 영의 세계를 지탱해 온 가장 큰 기둥, 니스 영의 추악한 비밀을 알게 된 이후 빠르게 무너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영웅, 빛, 절대선이라고 믿어왔던 어떤 것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아이는 지금껏 따라오던 하나의 빛이 사실은 추악한 비밀을 감춘 위선 덩어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점점 빛을 잃다가, 살아남기 위해 연약하고 순수한 가치를 죽이고 악하고 강한 것을 택하면서 완전히 죽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이가 따라가던 하나의 빛과 닮은, 비밀을 감춘 위선자가 남는다.
 
아버지의 죄를 감추기 위해 레오를 살해하는 다윈의 머리 위로 제이를 살해하는 과거 니스의 모습이 겹쳐지는 장면은 삼대를 옭아맨 죄의 고리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이 극의 피날레이자, 이들의 죄가 대를 이어 유전자처럼 전해 내려왔음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러너, 니스, 다윈의 죄는 그들에게서 시작한 것이 아니며, 또 그들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1지구 사람들이 진실을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쓸모없는 눈을 뜨고 있는 한 그들의 죄는 9지구 후디, 즉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유약한 존재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삼대에 걸쳐 죄가 이어져 내려오는 과정은 지금껏 인간이 역사를 이룩해 온 과정과 닮았다. 순수하고 약한 가치는 죽고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원리 속에서 역사란 그림자는 가장 약한 계층의 것으로, 승리와 영광은 모두 강자들의 것으로 위장한 결과물과 같다. 극 중 니스가 제이를 살해한 이후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큰 위로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이를 살해한 것을 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 중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상정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변론하고, 최종 판결하라.

 

 
용서받지 못할 죄의 변호사, 검사, 판사가 되어 보라는 법학 통론 시험 문제에 레오와 다윈은 정반대의 답변을 내놓는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변호할 수는 없으므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다윈과 인간이 인간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는 레오. 용서받지 못할 죄인과 그 희생양이 될 둘의 미래를 생각하면 슬프고도 역설적인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 시작되고 죄의 역사 시작되니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하여 지구상에 죄의 강물 넘쳐흘러 부패한다.
 
 
인간이 용서받지 못할 죄란 없다고 주장한 레오는 결국 다윈의 손에 희생당한다. 용서받지 못할 죄의 고리가 이어져 온 것이 인간의 역사라면, 다윈의 답변은 곧 인간의 역사는 변호할 수도 없는 죄악이자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범죄 자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죄악이 유전차처럼 전해 내려오는 세상에 일말의 희망 하나를 남겨둔다. 바로 루미 헌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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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이가 진실이 조용히 자살하길 기다려.

 

 
루미는 제이의 죽음에 감추어진 진실을 파헤치는 인물이다. 루미는 쓸모없는 눈을 뜨고 사는 여타 1지구 사람들과는 다르게 니스와 다윈이 어둠 속에 감추려고 했던 진실과 그림자는 약한 자의 것으로, 승리와 영광은 강한 자의 것으로 위장하며 발전해 온 인간 역사의 이중성에 가까이 다가선다. 이는 곧 인간이 밤중에 감추려고 했던 악의 기원과 죄를 대속하며 발전해 온 견고한 역사의 본질을 들추어내려는 시도이다. 울타리의 안락함에 눈이 멀어 정작 울타리 밖의 진실은 조용히 자살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루미는 빛이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말하는 루미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 한 줄기의 빛을 남겨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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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니스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눈물범벅이 된 채로 푸른 눈의 목격자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다윈 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때문이다. 당신들은 내면의 후디에게서 자유로운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을 무시하고 빛을 따라갈 수 있는가.
 
후디는 다윈의 내면에 자리한 악이다. 후디들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듯 끊임없이 객석을 쳐다본다. 자신이 죽인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 다윈 역시 객석을 쳐다본다. 당신들은 정말 나와 다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처럼.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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