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들 눈동자가 보는 아이러니 -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

글 입력 2019.10.26 22:1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611.jpg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이하 ‘우리들’)을 보고 박완서 선생님의 「도둑맞은 가난」 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실직 이후 급격히 기운 사게 때문에 판자촌으로 이사를 한다. 부모님은 가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연탄가스로 자살하고, 주인공은 홀로 남는다.

 

주인공은 도금 공장에 다니는 청년 상훈을 알게 되고, 그를 좋아하지만, 같이 살면 하룻밤에 연탄 반 장을 아낄 수 있다며 동거를 제안한다. 어느 날 상훈은 주인공에게 “돈 갚겠다”며 번듯한 옷을 입고 나타나 말한다. 자신은 아버지가 돈 귀한 줄 알라며 무일푼으로 내쫓아 공장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당당하게 살던 주인공은 상훈의 방문으로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나는 그를 쫓아 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제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 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빗발로 얼룩얼룩 얼룩진 채 한쪽이 축 처진 반바지, 군데군데 속살이 드러나 더러운 벽지, 지퍼가 고장 난 비닐 트렁크, 절뚝발이 날림 호마이카 상, 제 몸보다 더 큰 배터리와 서로 결박을 짓고 있는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 우그러진 양은 냄비와 양은 식기들 -, 이런 것들이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있는데도 어제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만 무의미하고 추했다. 어제의 그것들은 서로 일사불란 나의 가난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은 분해되어 추한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 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분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단막극장 포스터.jpg


 

‘우리들’의 서사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연극배우인 남자 권정안과 연기 학원 선생인 여자. 둘은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남자는 새로운 극에서 시각 장애인이 된, 상자가 된 어머니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역할을 맡았다. 남자는 시각 장애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케이블 기사 앞에서 연기하라고 한다. 케이블 기사가 방문하고 남자는 장님 연기를 한다. 남자와 여자에게 터무니 없던 일이 케이블 기사에게는 현실이다. 남자가 사는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지만, 떨어지고 아들과 둘이 어렵게 사는 케이블 기사. 남자는 “아마 제 장애 등급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라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케이블 기사는 시각 장애를 가진 아들 ‘정안’과 함께 산다. 얼마 전까지 모시고 살던 어머니는 상자로 변했다. 남자가 침실에 간 사이 케이블 기사는 상자가 된 어머니에게 한풀이한다. “모든 사람이 매일 그 많은 축하를 받는데, 세상에 모든 이름이 있는데 나와 내 동생의 이름만 없었다”며 울부짖는다. 그녀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이름들을 물고 빨았다. 극의 마지막, 케이블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남자가 이름을 대는 순간 케이블 기사는 멈칫한다. 자기 아들과 남자의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가난」에서 ‘나’의 가난이 지워졌듯, ‘우리들’의 케이블 기사가 처한 상황도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이름들’처럼 없어지고 밀려났다. 정말로 임대 아파트에 살아야 할 사람들의 존재는 밀려나고 그 자리를 도둑질한 사람이 들어간 것이다. 그 의도를 공고히 하는 건 배우의 시선 처리다. 배우는 관객을 보지 않는다. 관객은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 보고 있지는 않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건 진짜의 탈을 쓴 허상이다. 극 중 케이블 기사 같은 사람은 오늘 연극을 보지 못할 확률이 극도로 높다. 보여 주기와 바라보기의 아이러니다. 그들을 위해 만든 극을 그들이 볼 수 없다니. 60분이 채 안 되는 극이었지만,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존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극장 밖을 나오니 서촌 어린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양지에서 삶을 즐기는 동안, 음지에서 삶에 허덕이는 어린이들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온갖 행복한 비명이 가득한 거리를 가로지르며 입안이 씁쓸했다.

 

 

서촌공간 서로.jpg

 

 

*

2019 서로단막극장

 

 

서촌공간 서로는 2019년 단막극 특성화 극장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2018년에 이어 서로단막극장을 새롭게 선보이고자 한다. 단막극은 긴 이야기 만들기에서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삶의 편린들 중 번뜩이는 순간들에 시선을 집중하여 보여주기 좋다.

'2019 서로단막극장'은 김명화, 정승현, 전인철 연출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단막극을 무대화하여 "단막극"에 대한 서로만의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작고 소소함의 '특별함', 우리가 쉽게 지나친 일상 속의 '위대함'의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짧고 강렬하게 무대에서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블랙박스 형태의 소극장으로 관객의 집중도가 높은 서촌공간 서로는 섬세한 심리묘사와 아름다운 문장, 다각적인 인문 관계를 표현하기에 좋은 극장으로 2019 서로단막극장을 통해 새로운 단막극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나영.jpg


 

[김나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