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요리사보다 파불루머 - 독서 주방 [도서]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언제나 책을 집어들었던 사람
글 입력 2019.10.2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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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사랑의 온도, 오 나의 귀신님.......그동안 나에게 ‘셰프’나 ‘호텔 주방’이란 이렇게 드라마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바쁘지만 재미있게 흘러가는 주방의 모습, 어려운 주방 용어들, 깔끔한 유니폼, 셰프들의 멋있는 리더십과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 그리고 우아한 호텔의 풍경까지.

 

그래서일까, 내게 셰프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사람이었다.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사람. 그래서 이 책 표지를 슬쩍 넘겨 보고 싶었다. 셰프들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화려한 모습을 뒤에 숨겨진 엄청난 땀방울들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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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주방>은 웨스틴조선호텔서울에서 30여간 일하고 지금은 호텔 주방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는 유재덕 씨가 쓴 책으로, 저자가 읽었던 책과 함께 관련된 에피소드 서른 아홉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들은 모두 요리, 음식과 관련된 것으로, 쉴 때조차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했을 정도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평소 요리를 잘 하지 않는 나조차도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을 만큼 재미있었다.

 

이틀 동안 40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 주방 속 무더위와 습도........고된 일 속에서도 꾸준하게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저자가 존경스러웠다. 또한 독서에 그치지 않고 매주 꾸준하게 <스포츠경향>에서 독서칼럼을 연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무슨 일이든 열정적이고 끈기 있게 해 나가는 모습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독서 주방>에 실린 그의 수많은 이야기 속 두 가지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

 

먼저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행사를 준비하는 부분이었다. 각국의 정상들을 위하여 무려 5000명 분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행사였다.

 

그리고 이 행사를 총괄하는 오너셰프가 저자인 유재덕 씨였다. 행사 3개월 전부터 행사 당일까지 생생한 준비 과정들을 듣자니 숨이 턱 막혔다. 메뉴 선택, 필요한 장비와 기구 준비, 시스템 점검, 인력 점검, 운반 체크, 그리고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위생사고라는 돌발상황까지 발생했다. 개막식 전날 한밤중에 필요한 음식과 물건들을 트럭에 싣는 데에만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하니, 그 3개월 동안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고생했을지 느껴져 마음이 찡했다.

 

지난 7월에서 9월까지 <고하노라>라는 행사를 진행했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하나의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 와 닿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올림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렇게 작은 행사에도 이런 정성이 들어가는데, 저런 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긴장하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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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도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있다.

 

"좋은 요리사는 계절과 같은 사람이겠구나!"

 

나는 요리사가 아니고,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아직 확신할 수도 없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계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계절은 늘 바뀌지만 그 부단한 변화 자체가 한결같다는 것이다.

 

즉 날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 속에서도 한결같은 맛을 만들어야 하는 요리사들은 매우 창조적인 동시에 매우 우직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정반대의 성향을 동시에 구현해 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저자는 계절과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자세가 요리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요구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변화에 적응할 줄 알면서도 그 속에서는 우직하게 일을 하는 자세.

 

 

나는 그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했고, 오늘도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요리사인 나를 구원했다. 질문하는 동안만 나는 요리사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단지 인간은 인생의 어느 한 순간도 철학 없이 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만 이제 안다. 철학은 본래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것, 로산진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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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점점 이 사람이 궁금해졌던 이유는 내가 동경하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능력이 있으며, 또 자신만의 철학과 주관이 뚜렷한 사람.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삶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멋있는 가치관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독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의 경지에 올라갔어도, 높은 실력을 갖추었어도 그는 끊임없이 책을 읽었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체크했다.

 

그는 스스로를 칼을 내려놓을 때마다 언제나 책을 집어들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읽었던 수많은 책과 그가 쓴 수많은 글이 지금의 자리로 이끌지 않았을까.

 





독서 주방
- 불과 칼 사이에서 따뜻한 책읽기 -


지은이 : 유재덕

출판사 : 나무발전소

분야
에세이

규격
신국판(148*210)

쪽 수 : 252쪽

발행일
2019년 9월 20일

정가 : 14,000원

ISBN
979-11-86536-65-0 (03810)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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