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말 '보통의 농구 연극' -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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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인 혜준과 재영, 프로를 지망하다가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둔 지리교육과 대학생 환희, 짝사랑 상대가 시민 리그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팀에 합류하게 된 직장인 연미, 그리고 여기에 우연히 함께하게 된 연정까지 다섯명이서 시민 리그에 참여하고자 농구를 연습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연습 과정은 순탄치 못하면서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0대 아줌마인 연미를 재영은 못마땅해 했고 연미의 코치 역할을 하는 혜준은 농구의 기초부터 차분히 가르쳐 주면서 종종 구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미는 기죽지 않고 다음 내용을 배우고자 했다.
초등학생들과 농구 코트권을 걸고 친선 경기를 펼쳤을 때 처참한 패를 맛본 레몬사이다 팀은 경기 모니터링을 하였다. 연정은 몇 번의 공격을 시도하다가 성공하지 못하자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정의 그러한 자세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무엇이든 잘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종종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가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안들 때에 더 시도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체육에 소질이 없는 나는 고등학교 수행 평가 때에도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나는 원래 운동 못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습을 포기하곤 했다. 특히나 농구에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공격을 포기하는 연정의 모습을 보며 과연 내가 연정이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습해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정은 공원 자판기에서 제일 인기 없는 음료 레몬사이다를 한 캔 뽑아 마시다가 농구 시민리그에 참가하자는 제안으로 한 팀이 되었었다. 게임을 만들던 그녀는 작업 중인 게임 시나리오의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한 문장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녀는 진득히 무언가를 끝까지 해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농구를 하며 끊임없이 넘어지고 실패하며 변하게 된다.
포기의 여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결국 포기하고 말 것이라는 강박에 갖힐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여유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연정의 태도에 동질감을 느꼈던 나 또한 많은 실패를 경험하는 것과 이를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여성 서사로 이루어진 스포츠 연극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물이 남성 중심의 서사로 이루어져 모든 주인공이 여성인 이 작품이 다소 어색하거나 인위적으로 느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일말의 어색함도 느끼지 못하였다. 주인공들이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극적인 우승과 같은 전개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정말 ‘보통의 농구 연극’이었다.
다섯명의 여성 선수들이 열정적으로 농구 연습을 하는 장면에서 쾌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점이 스포츠물이 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여성 캐릭터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여성 캐릭터가 ‘홍일점’에서 벗어나 서사에서 보통의 존재가 되는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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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어들이 선사하는 감동
농구는 1쿼터에 십 분이다. 기상 시간에 맞춰둔 알람 소리에 깼다가 잠깐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뜨는 시간이 십 분 정도다. 그런데 그 십 분은, 모든 드라마가 다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직접 경기를 뛰어보며 깨달았다. 나는 이 드라마를 언젠가 무대 위에 옮겨놓으면 좋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어들이 선사하는 감동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마법과 닮은 점이 많다. 나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나와서 코트를 누비며, 그러니까 무대를 누비며 농구 하는 공연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근사한 마법을 부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작가 심정민[윤혜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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