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가 서성일 때 [연극]

글 입력 2019.10.1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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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장 포스터.jpg

 
 
무언가 따뜻함이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극의 주제는 위로가 아니었고, 인물이나 대사에서도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극을 보고 나오는데, 퇴근 후의 밤치고는 오랜만에 피곤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극을 본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 다시 한 번 극 소개를 읽어보았다. 전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문단이 눈에 띄었다.
 
 
단막극은 긴 이야기 만들기에서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삶의 편린들 중 번뜩이는 순간들에 시선을 집중하여 보여주기 좋다.
 
“단막극”은 크게 형식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2019  서로단막극장에서는 “단막극”을 포괄적으로 보는 연출들의 시선, 연출들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단막극을 무대화하여 “단막극”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 2019 서로단막극장 소개 中
 

 

2019 서로단막극장은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네가 서성일 때’,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 이렇게 3개의 무대로 진행된다. 저번에 보았던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서는 우리는 모두 햄릿이며 각자의 고뇌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주요한 메시지였다.
 
그래서 이번 공연도 그와 비슷한 무게감이나 분위기를 띄고 있지 않을까 했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네가 서성일 때’는 위에서 말한 ‘삶의 편린’에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편안하게 접근해서 그런 따뜻함이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막극에 대해 연출들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 이번 단막극들의 목적이었다면, 나는 일상의 번뜩이는 순간을 포착해 별 거 아닌 사소함을 보여주려 했던 ‘네가 서성일 때’와 같은 단막극의 내용을 좋아하나 보다.
 
다소 무겁고 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긴 공연도 몰입해서 보지만, 요즈음에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계에서 나와 비슷한 인물들이 겪는 스토리에 좀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두 인물이 로비에서 서성이다 만나 풀어놓는 과거 이야기에 따스함과 흥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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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대학 졸업 후 같은 대학의 강사직에 지원해 면접장 로비에서 만난 동기 두 명이 보인다. 우연한 마주침이 반은 반갑고 반은 얼떨떨했던 둘은 근황을 묻는다. 그러다 둘의 연락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며 이제 그 과거에는 별다른 힘이 없음을 깨닫는다. 대화를 나누다 면접에 늦고 집에 가는 버스도 놓치지만 둘은 어쩐지 처음보다는 밝아진 모습이 된다.
 
별다른 갈등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였지만, 주변적인 공간에서 만난 두 주변인의 대화에는 편안한 매력이 있었다. 긴장하지 않은 채 타율이 좋지 않은 유머에 가끔 피식 웃음이 나고 마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삶에서도, 면접장에서도, 집에 가는 길에도 종일 서성거리는 모습뿐이지만 그랬기에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우연이 좋았고 적당히 반갑게 푸는 회포가 좋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극에 담아낸 일상에의 위로가 와닿아, 극장을 나오며 몸이 가뿐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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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머무르고 지나치는 공간과 순간은 얼마나 될까. 너와 내가 만나 안부를 묻고 나누는 인사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네가 서성일때>는 로비라는 특정 공간의 특성을 살려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스쳐 지나가는 길과 어딘가 속해지는 장소 그 연결선상에 있는 로비를 통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사소하지만 특별한 순간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마주하거나 스쳐가는 것이 아닌, 서성이는 한때의 중요함과 무게감을 공유하며 많은 것이 스쳐 지나칠 수 있는 로비에서 서성이며 서로의 상처를 알고 위로한다는 것. 아주 낯선 사람들, 환경에서 우리들은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살고 있기에 지금까지 함께 어딘가를 서성이며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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