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상대적인 농도 "샹송 드 오페라, 카르멘"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
글 입력 2019.10.1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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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르멘의 사랑은 가짜가 아니었다.


 

오페라를 원작으로 각색된 콘서트형 공연을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카르멘의 이야기는 피겨 스케이팅의 공연 곡을 통해서와 같이 간접적으로만 접해 왔기에, 사실상 사전 정보를 전혀 접하지 않은 상태로 객석에 앉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카르멘과 사랑을 둘러싼 대담을 나누는 사이사이에 카르멘의 이야기를 오페라의 형태로 들려주는 진행 방식이 신선했다. 프랑스의 민속음악인 샹송을 중심으로 각색이 되어 그런지 대담을 제외한 모든 노래들이 프랑스어로 불렸다.

 

주최 측에서 자막 스크립트를 큰 화면으로 띄워 주었기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가끔씩 스크립트가 밀리거나 먼저 나와 버리는 등의 실수가 종종 발생해서 아쉬웠다. 분명 나는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함에도 이미 화면에 뜬 스크립트만큼의 대사가 끝난 건 알겠는데 왜 화면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지...? 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프랑스어 발음은 프알못의 입장이지만 모두 훌륭하셨다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러니까 이 공연은 카르멘의 사랑 이야기를 샹송 콘서트 방식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대중적으로 그녀는 파멸적인 사랑을 하게 될 운명인 팜 파탈의 대명사라 회자된다. 아름다운 외모를 겸비하고 자유롭고 쾌활한 성격까지 탑재한 카르멘은, 역설적으로 그런 점 때문에 파멸적인 사랑을 노래하기에 최적화된 존재다. 누군가는 그녀가 너무도 쉽게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눈길이 닿는 사람과 깊은 애정을 나누지 않았음에도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금세 싫증을 내고 또 다른 사람에게로 눈길을 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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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카타리나 비트가 연기한 <카르멘>.

  

 

그래서 혹자는 카르멘을 ‘가벼운 사랑’의 대명사라 평한다. 내가 간접적으로 접한 카르멘의 캐릭터도 그랬다. 자신이 가진 아름답고 치명적인 매력을 이용하여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노래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리는, 한편으로는 교활하고 영리한 여인. 이번 공연인 <샹송 드 오페라, 카르멘>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캐릭터성에, 정확히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으로 간접적인 경험에 의존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운 좋게도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이번 공연을 관람하면서 그녀의 사랑이야기에 대한 것뿐 아니라 그녀와 돈 호세 각자가 이야기했던 사랑에 대해, 더 나아가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무게감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을 가졌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카르멘의 사랑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녀는 돈 호세를 명백하게 사랑했지만 그녀가 원했던 사랑과 돈 호세가 원했던 그것의 형태와 크기가 달랐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그것을 키워나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한계를 마주하고 사랑을 끝내는 것처럼 그녀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단지 그 과정이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졌던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고 전개하는 과정이 짧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성이 없는, 가벼운 감정으로 치부될 순 없다. 카르멘과 돈 호세의 애정 관계는 각자가 정의하는 사랑의 모습이 달랐기에 생겨난 오해 때문에 파멸에 이른 것이다. 결코 그녀가 돈 호세에게 물리적인 상해를 입혔거나 사회적으로 위법한 행위를 저질렀기에 파멸로 이른 것이 아니다. 그녀는 명백한 무죄다. 돈 호세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 그녀의 절망감과 비참함은 극에 달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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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 공연 신기했다..!

 

 

 

2. 사랑의 상대성


 

돈 호세가 카르멘에게 총구를 겨눈 순간 ‘설마 진짜로 쏘겠어?’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떠나는 여인에게 총을 쏘는 정신 나간 행동을 실제로 하겠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의 생각이었다. 내 기대감이 무색하게도 돈 호세는 잠시 뒤에 카르멘을 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무력하게 바닥 위로 쓰러졌다.

 

곧이어 돈 호세가 그녀에게 달려와 그녀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체포하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전개됐다. 나는 어쩐지 돈 호세가 진정으로 슬프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신이 만들어 낸 비극적인 결말에 나름대로 만족해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를 저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 둔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이 빚은 광기는 참 무서우면서도 가련하다. 따지고 보면 전부 타이밍과 상대성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돈 호세를 향한 카르멘의 사랑은 진작 끝났지만 여전히 카르멘을 향한 그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카르멘은 돈 호세를 찰나의 순간 동안 그녀의 성격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발랄하고 열렬히 사랑했다. 돈 호세는 자신의 약혼녀인 미카엘라를 져버리면서까지 그녀에게 헌신했다. 복종에 가까운 사랑이었다. 카르멘이 자신의 마음만을 바쳤다면 돈 호세는 마음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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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랑은 지나치게 상대적이어서 파멸을 자아냈다. ‘나는 이 만큼만 너를 사랑하겠다’라는 선언과 ‘나는 이렇게까지 너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선언이 충돌하여 맞이한 극단적인 결말이다. 그런데 이 둘의 이야기는 예상외로 굉장히 평범한 서사일 수 있다. 물론 서두에서도 밝혔듯 그렇다고 해서 총을 쏘거나 상해를 입히는 등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게 절대 아니다.

 

나는 이 둘의 관계를 일반성의 차원으로 환원시켜 이야기해보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로부터 극단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고 우리들의 이야기로 일반화할 수 있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각자가 사랑으로 정의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다르고 감정의 상태가 상이함에 따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의 마찰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랑의 온도차’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준하는 애정의 크기를 보여주지 않아서 힘들어할 때 쓰는 말이다. 대중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이 말은 일상에서 상당히 빈번하고 가볍게 등장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해도 저 사람은 생각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 무심해, 사랑이 식었어. 와 같은 투정과 의심을 반복하곤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얼마만큼 자신을 사랑하는지 시험하려고 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증명을 요구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거나 성에 차지 않는 행동을 보이면 의심은 마침내 확신으로 바뀐다. 돈 호세가 카르멘에게 총구를 겨눴듯이 우리도 상대방에게 모진 말로 복수 아닌 복수를 시도한다. 그렇게 관계는 얼마든지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 사랑에서 비롯되는 상대성의 문제는 사실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굳이 팜 파탈과 같은 극적인 표현을 쓰면서까지 이를 비정상적인 사랑으로 묘사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샹송과 함께 잠시 동안 파격적인 사랑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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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수많은 카르멘들과 돈 호세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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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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