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울을 바라보는 타자 [사람]

'마음의 감기'를 이야기하는 타자의 관점
글 입력 2019.10.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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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개인적인 일이다. 또한, 우울의 과정은 병의 과정과 비슷하다. 병은 외부로부터, 혹은 내부로부터 시작되며 병의 심화는 내적인 차원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외부로 옮겨가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병은 타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병의 치유, 간병 등의 이유로 타자의 손길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울은 개인적이지만 필연적으로 타자가 참여한다. 그래서 우울의 과정에는 타자와의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우울에 대한 타자의 참여는 간병과 같은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타자는 가끔 우울을 비정상적이거나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증상으로 바라본다. 우울에 참여하는 타자는 이러한 관점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선의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마음의 감기라는 병이 있다.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은 병원에 찾아가는 걸 두렵지 않게 하고, 약 복용의 어려움을 덜어준다. 어쩌면 우울이라는 증상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표현이다. '마음의 감기'는 가끔 위로의 표현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마음의 감기'는 어디까지나 타자의 관점으로 바라본 우울이다. 우울이 정말 마음의 감기가 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당사자뿐이다. 우울의 감당은 개인의 일이다. 우울이라는 증상을 본 타자는 상대방을 위한 말과 행동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타자의 시선으로 이루어지는 말과 행동일 수도 있다.


타자의 시선은 우울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할 수 없다. 우울을 두고 타자는 흔히 '힘내'라는 말을 전달한다. 힘내라는 말은 선의가 담긴 말이다. 그래서 당사자는 타자의 선의를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힘을 내라는 말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울의 해결을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일 수도, 무기력함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사자는 타자의 응원을 응원 자체로 받지 못하고, 타인의 관심으로 감당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타자가 당사자의 우울을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타자는 당사자의 우울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우울의 크기를 감당할 수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타자의 관심은 당사자를 위한 완전한 관심일 수 없다.


타자는 당사자의 우울을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 감정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타자의 주관적인 공감만이 상대방을 이해한다. 타자는 우울을 감당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관심을 둔다. 연민과 동정으로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타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을 감당하기 어렵다.


우울의 정도는 당사자 또한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 어제는 괜찮다 오늘은 힘겨울 수 있다. 잠깐 지나가는 병일 수도, 죽음에 이르는 병일 수도 있다. 우울의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으며, 아픔의 객관적인 척도를 설명할 수 없다. 측정 가능한 객관적인 지표는 복용하는 알약의 개수뿐이다. 타자는 애매모호한 우울의 크기를 임의로 해석하고 주관적인 관심을 갖는다.


타자의 불완전한 관심이 계속된다면 관심은 부담으로 변한다. 당사자는 관심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없고, 다시 홀로 남겨지게 된다. 타인의 관심에도 심해지는 우울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계속 반복되는 외로움과 우울의 끝에는 극단적인 충동이 반복된다. 그리고 우울을 가진 사람이 떠나고 나면 결국 남은 이들은 타자들뿐이다. 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울을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흔한 관심이 아니라,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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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어제는 많은 타자들이 남겨졌다. 한 마디라도 더 응원해주지 못해서, 좀 더 관심 가져주지 못해서 많은 팬들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타자는 당사자의 우울과 무기력을 보면서 도울 수 없는 불가항력을 느낀다. 어떠한 말도 쉽게 건넬 수 없기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다.


비단 한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도 우울로 괴로운 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나의 주변에도 일상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약을 먹어가며 검게 칠해진 앞날을 비탄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울을 지켜보는 타자의 입장이다. 우울한 이들을 위해선 해결의 방법보다는 함께할 대화와 연락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마 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관심일지도 모른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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