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로 단막극장>은 총 세 개의 단막극이 진행된다. 그 첫 번째 공연으로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9월에 극이 진행됐고, 곧 진행될 <네가 서성일 때>와 <우리 눈동자가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세 극 모두 단막극으로 이루어져, 긴 이야기에서 놓치기 쉬운 삶의 조각을 재조명한다.
단막극[one act play]
① 형식적으로는 막이 여러 개인 극과 대비되어, 막이 하나인 극으로 하나 이상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에는 단막극의 하위 장르로서 10분짜리 짧은 드라마인 “플래시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② 단막극은 일반적으로 짧은 이야기(short story)에 상응하는 것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나 상황, 두 세 명 가량의 인물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막극이란 위에 설명된 바와 같이 막이 하나인 극으로 하나 이상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연극이다. 그렇기에 장편의 연극보다는 호흡이 짧고 소수의 배역에게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짧음의 장점은 <2019 서로 단막극장>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긴 이야기에서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삶의 편린들 중 번뜩이는 순간들에 시선을 집중하자는 취지는 내세운 그들은, 보다 단막극의 미학을 보여주려고 한다.
사실, 단막극이란 개념은 연극보단 드라마에서 익숙하다. 한 방송사에서 금요 예능 프로그램을 대신해 단막극을 방영해 즐겨 봤던 기억이 있다. 보통 8주의 호흡을 가지고 매회 마다 기승전결을 갖춰야 하는 미니시리즈 드라마와 비교하면 단막극은 단 1회 안에 모든 플롯을 담아내야 한다. 이러한 단막극의 특성은 여러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만 담아낸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하는 단막극은 다소 어수선한 기분을 마주한다.
행동의 당위를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하고 용두사미의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 조금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더라도 핵심 플롯만 그려내는 단막극은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서사가 짧으므로 모든 장면을 기억할 수 있으며, 흥미로운 이야기일수록 더 쉽게 몰입하게 된다.
연극에서 있어도 단막극 또한 비슷한 개념을 가질 것이다. 사실 현대에 와서는 조명이나 무대 장치의 활용으로 막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상황이지만, 짧은 서사와 강력한 메시지 전달에서는 일맥상통할 것이다. “단막극”이란 타이틀을 내건 연극을 감상한 적은 전무하기에 이번 <2019 서로 단막극장>에서 접할 “우리 눈동자가 하는 일”은 과연 어떤 감상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
작 고재귀 / 연출 전인철10.17(목) - 10.27(일)
무엇인가를 '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너를, 당신이 나를, 우리가 우리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던 이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왜 인간은 타인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은 '본다'는 의미를 묻는 두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그 지난함과 애달픔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바라보기와 보여주기 이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이 삶에서 중요한 순간의 더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사람의 눈을 보면 그 기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눈은 또 다른 마음의 창이란 말도 존재하니 허무맹랑한 말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살면서 사람의 눈을 오랫동안 쳐다본 적은 손꼽힐 정도로 적다. 초면에 눈을 지그시 쳐다보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건방지고, 정말 친한 친구와도 간간이 시선을 달리 두며 대화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상대의 감정을 알고 싶기보단 내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연극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은 타인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상대방의 감정이 아닌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연극 소개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의 눈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지를 발견하고 그 내면에서 자신까지 발견한다.
서촌공간 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