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종로, 조금은 다른 삶의 공간으로 [문화공간]

시위의 뒷면에
글 입력 2019.10.0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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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조금은 다른 삶의 공간으로

시위의 뒷면에 

 

Opinion 민현



 

종로구로 이사 온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매년 어린이날마다 운동회를 했고, 다음날은 쉬는 날이었다. 이사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을 갔었고, 나는 어렴풋이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광화문과 경복궁을 지나 새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뛰어서 한달음 거리에 있는 청와대 옆의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고 무궁화동산, 청와대 옆길을 나는 골목길처럼 돌아다녔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대학교마저 종로구에 있는 곳으로 와버렸다. 헌법재판소와 통일부, 인사동을 지나 4년째 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10여년간 살았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 나의 종로는 등교길, 골목길, 집 앞, 친구들을 만나는 곳 등으로 종합된 삶의 공간이다.

 


종로.jpg


 

다른 지역이나 서울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도 '삶의 공간'에 대해 갖는 경험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등교길, 골목길 등 삶의 공간의 의미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으로 우리 주변에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종로의 의미는 조금 특별해졌다. 나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종로가 갖는 의미는 조금 특별할 것이다. 그 특별함에 대해, 그리고 그 특별함이 삶의 공간으로써의 종로의 의미를 변화시켰는지 한번 얘기해보고싶었다.


*


올해 8월 말 즈음, 청와대 인근 주민들이 “집회 자제”라는 구호를 외치며 침묵 시위에 나섰다. 그들의 집회 장소는 그들의 집앞, 청와대 3거리 길이다. 청와대로 가는 3거리는 카페, 편의점, 버스정류장, 짜장면 집이 있는 여느 평범한 거리와 다르지 않지만 늘 시끄럽다. 경찰들은 늘 그 소음에 대비하고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 24시간 진을 치고 있다.

 

사실 내가 사는 집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멀어서 익숙하게만 받아들였다. 이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온 건 그 3거리 바로 뒷골목에 사는 내 친구가 이사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항상 가족들이 시위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호소하던 친구였다. 많은 동네친구들이 점점 종로를 떠나고 있는 와중에, 25년째 그곳에 사는 친구마저 떠난다니 씁쓸했다.

 

종로의 특별함이 시작된 건 2014년, 그리고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친 수많은 시위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시위 현장에 누구보다 오래 있었고(시위 참가도 했지만 주민들은 집에 가려면 그 길을 지나야만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주권 행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가슴이 뜨거웠다. 비록 나는 하교길에 종로구 학교에서 종로구 집으로 이동하는 길에서 2시간을 보냈지만 그 역사의 현장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느꼈다, 그때까지는. 시민들은 87년 이후 30년만에 승리의 맛을 봤고, 광화문은 승리의 터전이자 앞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임을 알게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종로의 거리로 나와서 목소리를 내는 것의 의미를 크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촛불을 탄 정부는 그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최대한 가까이에서. 물론 집회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되므로 목소리를 내고싶었던 다른 사람들도 가장 적합한 장소인 광화문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위'가 몰려들수록 주민들의 불편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주말이면 대중교통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소음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몇천에 그칠 청와대 주변 주민들을 위해서 ‘시위를 멈춰주세요!’라고 말할 사람들은 없었다.


*


도시의 삶은 개인성과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편안함에서 온다. 인구밀도가 세계 그 어디보다 높은 서울에서 살기 위해선 각자의 공간에 대한 암묵적 배려가 필요하다. ‘종로’라는 공간은 이미 편안함을 잃었다. 광화문 근처 시위 현장은 이미 서울 시민들의 공공장소가 되어버렸다. 지난 몇년간 종로 시위의 결과가 역사책에는 민주주의의 성장으로 기록되겠지만 주민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불편함이라는 결과를 홀로 떠안게 됐다. 이미 시위 이전에도 북촌, 서촌, 한옥마을 등 관광객들이 많은 종로의 다른 동네에서는 이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을까.

 

10월 3일 광화문에 있던 친구들의 말로는 심심찮게 ‘청와대가 뚫렸다.’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한다. 그 시위대의 말처럼 청와대가 뚫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종로구민들의 삶의 터전이 뚫렸을 지 상상할 수 있는가. 당연히 집회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서울 시민들의 공간으로 광화문만한 곳은 없다. 시위를 멈춰달라고 하는 건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성숙한 시위와 집회를 부탁하고싶다. 누군가에게 삶의 터전인 이 공간에 대한 배려와 성숙한 소통을.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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