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번 햄릿은 초면입니다. –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공연]

글 입력 2019.09.28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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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뤄 누구나 햄릿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 담긴 명작이라는 설명이 항상 따라다니는 고전 <햄릿>이다. 이 연극에서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배우지 못했던 햄릿을 만났다. 햄릿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볼 수 있었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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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연극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는 햄릿 역의 남자배우, 오필리아 역의 여자배우, 그리고 그들을 무대 위 햄릿, 오필리아로 만들어주는 분장사가 공연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진행된다.

햄릿 역의 배우는 이 고전 작품 속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대입해보고 이 사회에 견주어 보면서 내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해 치열하게 햄릿처럼 고민한다.

그리고 오필리아 역의 배우는 열심히 연기를 배우고 노력하는 젊은 여자로 오필리아라는 캐릭터와 이 작품을 자신의 환경에 빗대어 설명한다. 자신의 역할이 너무나 싫은 이유와 거부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분장사는 이 연극을 무대에 올려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결정적인 분장을 담당하면서 허무함에 대해 말한다. 누구보다 먼저 나와 배우들을 준비시키고 멋진 극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하지만 아무도 그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극이 끝나면 배우들은 자신이 공들여 만든 인물들을 의미도 없이 빨리 지워버리는 모습을 보며 허망함을 느끼며 연극의 끝, 죽음에 대해서도 말한다.

나는 3명의 등장인물 중에 오필리아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고 뇌리에 박혔다. 이 연극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그녀의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인상 깊었다.



오필리아를 바라보는 그녀


오필리아 역의 배우는 여자의 입장에서 ‘오필리아’라는 캐릭터와 이 작품을 바라보며 남자배우에게 말하는 듯 이야기한다. 그녀가 바라본 <햄릿>은 내가 알고 있던 <햄릿>이 아니었다. 남성들이 대부분인 연극에서 자신이 나오는 장면은 딱 5개라고 말한다. 그 장면들이 어떤 장면인지 설명하고 오필리아의 시선에서 극을 바라보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를 연기하는 배우가 바라본 오필리아와 햄릿의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겪고 있는, 세상의 모든 여성이 겪고 있는 억압과 한계, 부조리, 모욕감, 절망 등 모든 감정을 차례차례 분출한다.

그녀를 보면서 나도 숨 막힘을 느꼈다. 그녀의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도 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는 인간이었다.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숭고한 죽음이라고 배웠던 나에게 오필리아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려준 그녀의 독백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단막 극 속 여자 배우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현실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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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의 등장 장면은 1막 3장, 2막 1장, 3막 1장, 3막 2장, 4막 3장. 햄릿이 쉬는 장면과 오필리아가 나오는 장면 개수가 비슷할 정도로 연극 <햄릿>은 정말 햄릿에 대한 이야기다. 철저히 햄릿이 거쳐 간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자 수단으로 여겨진 오필리아였기에 작품 제목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짧은 장면에서 오필리아는 한 번도 자신의 주장을 내뱉지 않는다. 오필리아의 대사 앞과 뒤의 대사는 대부분 남자 어른들의 ‘~~해라, ~하고 있어라, 아니다,’ 등 명령, 지적과 훈계이다. 이에 거절하지 않고 항상 아버님 분부대로 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남자와 사회에게 상처받고 자살한다. 그렇게 맥도 없는, 절망적인 오필리아의 죽음이 이 단막극을 통해 어쩌면 지금 살아있는 자들에게도 유효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1막 3장


햄릿과 사랑에 빠진 오필리아는 레어티즈와 폴로니어스에게 햄릿과 친해지지 말라는 조언을 듣는다. 조언을 빌미로 한 훈계인 셈이다. 햄릿이 자신에게 진심의 사랑을 건넸다고 말하는 오필리아에게 아버지 폴로니어스는 계집애 같은 소리라며 좀 더 비싸게 굴라고 혼낸다. 그의 마지막 대사도 ‘명심해, 명령이니. 자, 가자.’이고 오필리아는 이에 ‘분부 따르겠어요, 아버지.’라며 순종한다.



2막 1장


역시나 아버지 폴로니어스와 함께 나와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3막 1장


아버지의 귀신, 유령을 본 햄릿은 미친 척하며 복수를 꿈꾸고 오필리아에게 폭언한다. 오필리아는 사정을 모르고 큰 고통을 느낀다. 햄릿은 자신은 오필리아를 사랑하지 않았다며 수녀원으로 가라고 한다.


‘결혼을 꼭 할 작정이라면 바보랑 해. 현명한 사내들은 당신네 여자들이 사내를 뿔난 괴물로 만든다는 걸 익히 잘 알거든. 가, 수녀원으로 어서 빨리.’



심한 폭언들을 듣고 오필리아는 달콤한 종소리 같던 저 고상했던 햄릿이 광기에 미쳐버린 모습을 보고 엄청난 상심과 비참함을 느낀다. 오필리아가 사랑의 설렘과 행복을 느낀 건 너무나 짧았다.



3막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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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는 햄릿이 자기 무릎에 눕는 것을 허락한다.

폭언한 햄릿 역의 배우는 다시 또 그녀의 무릎에 눕고 싶다고 말하며 그녀의 다리를 주무르며 성희롱한다. 오필리아 역의 배우는 조언을 가장한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선배 배우의 행동에 힘들어하고 역겨운 입 냄새를 맡아가며 구역질을 느낀다.



4막 5장


3막 4장에서 햄릿은 폴로니어스를 죽인다. 자신이 죽을 만큼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고 오필리아는 햄릿의 광증이 계속 심해져 가는 줄 안다. 오필리아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 달해 결국 오필리아도 미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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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결정적으로 이 4막 5장에서 자신을 뽐내야 하고 발악하며 관객들에게 자신을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오필리아에게 이목이 쏠리는 순간이 오직 이 순간이기에. <햄릿>에서 오필리아라는 등장인물에 관심이 쏠리는 순간이 그녀가 미쳐가 죽음으로 스스로 걸어가는 장면이라는 게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여자가 해야만 했던 것은,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것뿐이다. 자신을 버린 남자에게 다가가 최대한 섹시하게 대해주기, 자신을 꽉 쪼이고 또 쪼이고 몸매 뽐내기.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은 자살이다. 여자가 미쳐서 죽어야만 하는 결말이다. 나는 처음으로 4막 5장에서 엄청난 불편과 화를 느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다양한 꽃들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강으로 향한다.

오필리아는 결국 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청순가련함. 연약함. 희생, 순종의 이미지.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배웠던 그런 이미지로 마무리된다.

배우는 이 오필리아를 연기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는 기존의 <햄릿>을 읽을 때 내가 읽어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오필리아는 자신만의 의견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화려한 옷을 입고 잔뜩 치장하며 남자들에게 마음에 들도록 외면을 만들어낸다. 마치 드레스가 자신의 입이 되어주는 것처럼 만들지만 결코 입이 될 순 없다. 배우는 드레스를 벗고 싶어 발악하지만, 드레스는 혼자서는 제대로 벗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여자를 꽉 조이는 존재다.

그리고 그녀는 연극 작가, 연출, 배우 모든 것들이 오필리아를 죽게 했다고 외친다. 작가가 현실에서 하지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욕망을 담아 여자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필리아처럼 서서히 죽어가는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오필리아가 빠진 강물은 수많은 그녀들의 눈물일지 모른다. 현실 속에서 죽음으로, 자살로 끝난 여자들. 눈물과 땀을 흘리며 열연하는 그녀를 보며 나도 이에 흠뻑 빠져 스며들었다.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단막극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폭력과 억압의 대상으로서의 오필리아는 아직도 존재한다. 끝까지 드레스를 벗지 못하고 결국 햄릿의 부속물로 끝난다. 햄릿은 그녀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장례식을 지나가다가 알게 된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 속 햄릿이라지만 그녀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하고 바라보아 준 적이 있냐고 그에게 물어보고 따지고 싶었다.



단막극


햄릿을 연기하는 남자 배우, 오필리아를 연기하는 여자 배우, 그리고 분장사까지의 이야기를 단막극 안에 충실히 잘 넣어 전달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오필리아가 너무나 기억에 남는다. 오필리아를 말하는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으며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통해 표현한 것이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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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자들의 말을 들려주고자 한다. 이것이 연극의 목표라면 정말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죽은 자들의 말을 무대를 통해 전달받은 살아있는 내가 말을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햄릿의 마지막 남은 것은 침묵뿐이다. 이 침묵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있으므로 침묵을 깨고 말을 해야 한다고 깨닫게 된다. 배우라는 직업도 이 사명을 가진 직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살아있는 관객들에게 재현하고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를 증명하고 말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배우를 포함한 공연예술이라는 장르가 이 단막극을 통해 다시금 나에게 정말 소중함을 느꼈다. 나를 깨게 해주고 겉으로 포장된 거짓을 벗기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고전 작품 <햄릿>은 셰익스피어 시대 다른 극들과 비슷하게 셰익스피어라는 작가 한 명이, 즉 개인이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해낸 결과물이 아니다. 오랫동안 올려졌던 연극 등 자료를 창조적으로 재활용하고 변용한 작품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 역사가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역사>의 암레스 이야기는 햄릿의 플롯과 굉장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이렇게 <햄릿>은 단순히 한 시대의 한 명의 작가가 완성해낸 작품이 아니라 시대의 다양한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래서 현재도 <햄릿>을 변용한 이야기, 모티브로 한 영화, 소설, 예술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다가온다.

이번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극도 새로운 시선에서 햄릿의 이야기를 재탄생시킨 극이다. 이번 햄릿은 초면이지만 수많은 햄릿 기반 작품 중에서 나에게 가장 좋았던 햄릿으로 자리 잡았다. 단막극에서 전개해나간 <햄릿>은 더 이상 내가 이 작품을 단순히 햄릿의 시점에서만 바라보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말하고 싶게 만들었다. 말을 하고자 한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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