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어의 단절 - 킬롤로지

글 입력 2019.09.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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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 킬롤로지 티저 포스터.jpg


액션과 리액션의 연속으로 소통이 이뤄진다. 소통 수단 중 하나가 언어다. 나는 언어를 통해 ‘너’를 이해한다. 네 마음과 행동 같은 것들 모두 언어를 통해 설명된다. 네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나는 내가 느끼는 바와 일치하는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들어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대화한다. 대화하여 너를 규정하거나 또 다른 대화를 통해 너에 대한 규정을 수정한다. 대화는 너를 이해하는 시도다.


그러나 언어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언어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엔 협소한 그릇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작 ‘사랑한다’는 언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들이 조합돼 수많은 맥락을 만들고 그러므로 내 의도와 다르게 이해되는 일이 발생한다. 우리는 표현의 제약을 느낀다. 때때로 오해하는 일도 있다.



킬롤로지 공연사진7.jpg
 

<킬롤로지>엔 대화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나오는 인물이 3명뿐인 것과 별개로 러닝타임 대부분이 독백이다. 기껏해야 나오는 대화는 극단적 상황에서 분출되는 감탄사 위주거나 등장인물의 상상에서 치러진다. 관객은 이들의 마음을 짐작한다. 그러나 서로는 모른다. 언어가 오해를 촉발하는 부족한 소통수단이어도 그 오해의 과정이 중첩되며 관계가 두터워지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타인에게 이해되기 위해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와 대화는 필요하다. 그것 말고 다른 수단이 없다. 인물들은 소중한 사람이나 애증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자기 마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못하는 게 아니라 지레 포기하는 것에 가깝다.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단정하는 듯하다.



킬롤로지 공연사진5.jpg
 


폴은 아버지를 가상으로 죽이기 위해 게임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폴과 대화하는 방식은 훈계다. 폴의 의도나 마음은 묻지 않는다. 금지, 명령, 꾸중이 대화의 태반이다. 어쩌면 통제의 욕망 이다. 그에게 아들은 자기 아들이기 이전에 집이나 차 같은 자기 소유의 것들 중 하나다.


폴은 아버지에게 자기 마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 입에서 그럴듯한 위로의 언어가 나오는 순간은 언제인지. 당신에게 나는 무엇인지 묻고 싶어도 묻지 않는다. 대화 대신 그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아버지를 뭉갠다. 폴에겐 체념과 분노가 있다. 그걸 아버지에게 풀지 못하여 게임을 만든 셈이었다. 폭력이 그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방식이다.


알란은 아들인 데이비가 18개월 때 가정에서 도망친다. 그는 자기 한 몸 지탱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 이상을 책임지기 싫었다. 혈연과의 단절을 결정한 이유가 또 무엇이 있겠는가. 알란이 가정을 떠난 어쩔 수 없는 사연 같은 건 극 중에서 소환되지 않는다.


알란의 독백에서 역시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14년 넘는 시간동안 얼굴 본 적 없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책임지려 하는 건 죄책감 때문이다.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했더라도 곁에 서 있었다면 데이비는 어떤 인간이 돼 있었을까. 부모의 부재가 데이비를 죽게 만들었다는 감각이 분명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자책하고 반성하는 것 대신 명백한 가해자를 찾는다. 자기 책임을 지우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데이비는 입을 닫는다. 폭력이 즐비한 세계에서 자기를 지키는 방식은 폭력뿐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스스로 밝힌다. 그는 강자에게 비굴해지고 약자에게 큰 목소리를 취하는 형식으로 세계에서 살아남았지만, 두려움이 있다. 위악적 태도가 그가 택한 처세의 한 방편이다.


그렇게 굴어도 두려움은 남아있지만 적어도 남들은 내 두려움을 모른다. 만약 데이비가 그 때 괜찮냐고 묻던 선생에게 의자를 집어던지는 대신 무섭다고 울었다면 그의 궤도는 수정됐을까.


<킬롤로지>가 독백으로 극을 구성한 건 고립된 개인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말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으니 고립은 심화된다. 고립된 이들은 폭력의 여파를 관계에서 해소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분출하려 든다. 비극이다.






킬롤로지
- Killology -


일자 : 2019.08.31 ~ 2019.11.17

시간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30분
월 공연 없음

*
8/31(토), 9/1(일) 6시 30분 공연만 있음
9/12(목) 3시, 6시 30분
9/13(금) 4시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0,000원

제작
(주)연극열전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25분 (인터미션 : 15분)




  

[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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